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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재 첩첩산중 "검찰은 울고싶어라"

검찰이 헌정이후 최대의 위기에 몰렸다.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서울지검의 한 검사의 말처럼 서초동 검찰청사는 긴장감이 팽팽하다. 숨이 막힐 정도다. 현재 국민적 관심속에 진행되고 있는 서경원 전의원 밀입북사건과 특별검사의 옷로비사건의 추이에 따라 자칫 검찰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경원 밀입북 사건 재수사, 결국 검찰에 상처만 남길 가능성

20일 서울지검 임승관 1차장검사는 기자실에 들러 ‘수사검사 소환관련 협조 요청서’를 내놓았다. “수사검사들을 비공개리에 소환, 조사한뒤 필요한 범위내에서 조사내용을 공개하겠다”는 내용이다. 공개소환해서 조사내용을 공개하겠다던 하루전 약속을 철회한 것이다. 임 차장검사는 “수사검사들에 대한 공개소환은 준사법기관인 해당 검사들의 업무수행에는 물론 일선 검사들의 사기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약속철회이유를 밝히면서 협조를 요청했다.

임차장검사의 발언이 오락가락한 것은 그만큼 검찰내부의 의견이 갈라져 있다는 반증이다.

서울지검의 한 소장검사는 “잘못된 역사는 바로 잡아야 한다는 의견과 현 수뇌부가 권력에 영합해 조직을 무너뜨리고 있다 불만이 팽팽히 갈려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당초 한나라당 정형근의원이 서경원 전의원에게 고문을 했는지 여부를 가리기 위해 시작된 수사가 검찰조직의 뿌리를 흔드는 지경으로 번진 것이다. 89년 안기부로부터 서씨 밀입북사건을 송치받아 보강수사를 벌인 당시 서울지검 공안부팀이 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1만달러 수수혐의를 조작했는지 여부가 초점이 된 것이다.

서울지검은 당시 수사팀이 사건을 짜맞추었거나 최소한 서의원측에 유리한 자료를 고의로 방치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실고 있다. 그 근거로 우선 대검 공안부에 보관된 수사자료에서 찾아낸 2,000달러 환전표.

검찰은 2,000달러가 환전됐다면 당시 서의원이 김총재에게 준 돈은 많아봐야 8,000달러이거나 아니면 김총재측 주장대로 안받았을 가능성이 높은데도 1만달러로 발표한 이유와 기소시 이 환전표를 아예 누락한 경위가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와 관련해 당시 수사 주임검사였던 이상형 경주지청장과 안종택 서울지검 서부지청 형사1부장, 전창영 강릉지청장 등 수사검사들을 비밀리에 조사했거나 조사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들은 한결같이 조작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환전된 2,000달러는 김총재에게 준 1만달러와는 관련이 없는 다른 돈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또 짜맞추려 했다면 2,000달러 환전표를 바보처럼 남겨둘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당시 간부들 소환 불가피

그러나 검찰은 당시 일선 수사팀뿐만 아니라 서울지검 공안1부장이었던 안강민 변호사와 서울지검 1차장검사였던 김기수변호사, 서울지검장이있던 김경회 형사정책연구원장, 검찰총장이었던 한나라당 김기춘의원 등 계선상의 간부들중 일부는 소환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고위관계자는 “당시 수사가 주임검사와 총장간에 직보체제로 운영됐다는 얘기도 있어 일단 당시 상황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지만 휴일인 21일에도 공안1부 검사 전원이 출근하는 등 선배검사조사에 대비하는 분위기였다.

선배검사들의 소환이 임박해지면서 “검사가 이미 기소된 사건에 대해 검사를 어떻게 조사할 수 있느냐”며 내부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박순용 검찰총장이 19일 전국 차장검사회의를 전후로 일선 검사장들에게 내부단속을 당부하는 등 진화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수사팀이 환전표를 언론에 공개한데다 당시 수사검사들인 현직 간부들을 조사한 사실이 알려진 이상 검찰은 한차례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서울지검의 한 평검사는 “과거 정권에서 검찰권 행사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 오히려 장기적으로 검찰조직안정과 국민들의 신뢰를 받는데 도움이 된다”며 “검찰도 편협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초동 주변에서는 국민의 정부 출범과 함께 등장한‘신(新)공안’과 영남 정권시절 승승장구하다 몰락한 ‘구(舊)공안’간 다툼으로까지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이미 조사를 받은 이상형지청장 등은 모두 알아주던 검찰내 공안통이었다가 새정부들어 한직으로 밀려난 인물들이다. 또 안강민 변호사는 대검 공안부장에서 파격적으로 특수검사들이 가는 대검 중수부장에 임명돼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사건 수사를 맡아 스타로 떠올랐다.

그후 서울지검장으로 영전해 검찰총장후보로 꼽혔지만 정권이 바뀐뒤 한직으로 물러났다가 동기가 총장으로 임명되자 사직했다. 안변호사는 이 사건과 관련해 “할말은 많지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외부와 연락을 끊고 있다.

김기수 변호사는 사건 당시 서울지검 1차장검사를 맡았지만 수사지휘선상에서는 사실상 빠져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불과 3년전 검찰총장까지 지냈던 인사가 공안사건 조작여부로 후배들에게 소환될 처지에 놓인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사유야 어떻든 10년전 사건으로 검찰조직이 뒤흔들리는 것 자체가 국민의 신뢰를 잃는 불행한 일”이라며 “서의원 사건은 그전에도 말들이 많았는데 하필 피해자가 대통령으로 있을 때 검찰이 사건규명에 적극적이라는 인상을 주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사직동팀 연씨측서 흘러나와

특별검사팀의 옷로비의혹 수사도 검찰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옷로비수사는 검찰의 최초 수사 당시 축소여부가 초점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특검팀은 22일 배정숙씨에 대한 소환조사에서 김태정 전법무장관의 부인 연정희씨가 사직동 보고서로 보이는 문건을 건네주었다는 진술을 받아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옷로비 의혹이 핵심인물인 연씨가 수사팀으로부터 보고서까지 받았을 정도면 최초 사직동과 검찰의 수사가 축소됐거나 짜맞춰졌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검팀은 이밖에도 정일순씨의 남편에게 ‘이상한 조짐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내용의 팩스가 전달된 점, 또 라스포사 압수수색에서 ‘압수수색에 대비할 것’이라는 메모가 발견된 점 등으로 미뤄 제3의 인물이 조직적으로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배후인물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검팀은 또 관련자들에 대한 진술과 배정숙씨 집에서 발견된 김정길 청와대 정무수석의 부인 이은혜씨와의 통화 녹취록 등을 통해 호피무늬 반코트의 전달및 반환시기가 연씨 등이 검찰수사와 청문회에서 이야기 한 12월26일과 1월5일이 아닌 12월19일과 1월8일이라는 심증을 굳히고 있다. 당초보다 보유 기간이 길어진다는 것은 코트를 받으려는 의지가 있었다는 해석도 가능해진다.

특검팀은 정씨가 옷로비사건 이전인 지난해 11월에 고위층과 친분을 과시하며 신동아그룹 최순영 전회장의 부인 이형자씨에게 옷값대납을 요구한 한 사실을 찾아내고 알선수재혐의로 영장을 재청구할 방침이다.

일부에서는 특검팀이 확인되지 않은 의혹들을 서둘러 언론에 공개하고 특검법의 범위를 벗어나 활동하는데 마땅찮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특검팀이 검찰수사와 달리 사건의 본질과 관련된 새로운 사실을 잇따라 밝혀내자 ‘실패한 로비’‘사기 미수극’으로 결론 내린 검찰의 입장이 곤혹스럽게 됐다. 경우에 따라 검찰이 연씨를 감싸기 위해 축소하거나 은폐했다는 증거가 드러날 경우 그 파장은 심상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일단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이재원 대전지검 특수부장 등 당시 옷로비사건 수사팀은 21일 기자회견을 갖고 “일부 언론에서‘검찰이 정일순씨에게 코트배달시기를 지난해 12월26일로 유도했다’는 보도를 한데 대해 검찰의 명예를 걸고 법적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반발했다.

이부장검사 등은 “검사직을 걸고 단언컨데 당시 수사에서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진술을 조작한 사실이 없다”며 “만일 특검팀에서 그런 사실을 확인해준 사실이 있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겠다”고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이부장검사 등의 기자회견이 개인적인 차원이 아닌 특검팀에 대한 검찰 수뇌부의 불쾌감을 나타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올해는 법조비리사건과 심재륜 전고검장 항명사태, 옷로비사건 등이 숨돌릴 틈도 없이 발생해 검찰이 몸살을 겪더니 아직까지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songy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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