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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감탐구] "내가 귀신 쫓는데는 귀신이지"

어느 가정집 안방. 한 스님과 30~40대로 보이는 주부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뭐하러 여기 와서 자꾸 나를 힘들게 해? 어서 나가.” 삐딱하게 앉아있던 주부가 할머니 말투로 쏘아붙인다. 이른바 ‘귀신이 씌었다는’ 빙의환자다. 스님 손에 들린 요령을 뺏으려고도 한다. 그러자 스님이 소리친다. “뭐야! 귀신이면 귀신답게 굴어! 귀신이 어디 감히 스님한테 이래? 귀신주제에.” 요령을 또 뺏으려 달려들자 더 소리를 높인다. “가만 있지 못해?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해 보여?” 잠시 기세에 눌려 그녀가 움찔하자 일장연설. 다시 ‘귀신이면 귀신답게 굴어라’는 요지다. 그리곤 자세를 가다듬으며 한마디 더. “좋은 말로 할 때 빨리 가! 나중에 쫓겨나기전에.”

귀신을 쫓는다는 퇴마승 성안스님(법륜종. 안산 원효정사). 그를 만나러 안산으로 가던 날, 차안에서 내심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은 해 지기전에 돌아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귀신을 만난다는 사람과 헤어진 뒤 캄캄한 밤길을 홀로 돌아올 자신이 서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엔 퇴마승을 만나러간다고 하자 평소엔 무심하던 주변사람들까지 나서서 구태여 귀신 목격담을 강제주입시키는 바람에 온갖 으시시한 ‘참고자료’가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완전한 기우였다. 퇴마승과의 면담은 오히려 즐겁고도 유쾌했다. 처음으로 귀신이 만만해 보이는가 하면, 심지어 내공(?)만 쌓인다면 직접 대적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이런 얘기를 성안스님이 듣는다면 또 그는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 “스님이 그렇게 쉬워 보여? 이거 아무나 할 수 있을거 같애? 글쟁이면 글쟁이답게 굴어. 글쟁이 주제에.”

“알고보면 귀신은 나약한 존재”

맞는 말이다.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닌건 틀림없다. 원래 불교의 정통의식중 하나로 자리잡힌 것이 구병시식(救病施食). 흔히 우리가 귀신이라 말하는 불교용어상 ‘영가’들을 다스려 아픈 사람을 낫게하는 공식화된 의식이다. 따라서 불가안에서도 이 구병시식을 행하는 스님들은 많으나 그 가운데 성안스님처럼 기도차원을 넘어서 직접 퇴출에 나선 스님은 극히 드물다. 92년부터 지금까지 그가 만난 신병(神病)환자만 1,000여명, 귀신은 수천여명에 이른다. 환자 한명에 귀신 서넛씩 붙는 것은 보통이고, 많을땐 18명의 귀신까지 붙은 사람도 보았다.

“제 경험에 따르면 귀신이 오는 이유는 대개 두가지입니다. 너무 갑작스런 죽음을 당해서 뭔가 억울한 일이 있다든가 혹은 저승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귀신이라곤 하지만 행동이나 능력은 인간일 때와 같습니다. 죽기전 생시의 습관과 행동, 심지어 생전에 앓던 병까지 그대로 나타나지요.”

귀신의 행태도 여러가지. 술 취한 사람처럼 중얼중얼 거리며 욕을 하거나 소란을 피우기도 하고, 혹은 게걸들린 듯 밥과 고기국을 찾는 귀신도 있다. 또 흔히 말하는 신기(神氣)를 가진 귀신은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계속 앞일을 맞히며 떠들어대는 것이 특징. 그런가하면 갑자기 발가벗고 방안을 돌아다니거나 스스로 머리를 벽에 찧는 등 자해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무슨 짓을 하든 그는 바위처럼 맞선다. 오히려 더한 담력과 배짱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나선다. 언젠가 자신의 얼굴을 피범벅으로 만들어 주위의 간담 서늘케하던 여고생이 있었는데, 그때도 그는 피식 웃어주었다. 그러자 그때부터 상대는 기가 죽어 고분고분 말을 듣더라고.

“알고보면 귀신들도 참 나약한 존재입니다. 단지 사람들에게 겁을 주려고 과장되게 행동할 뿐이지, 그게 통하지 않는 사람에겐 아주 약합니다.”

“경험상 귀신은 있다”

정말 귀신이 있는가. 그는 “경험상 귀신이 있다”고 말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죽은 사람 자신만이 알수 있는 사실들을 귀신들이 말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유도질문이나 대화를 통해서 나타난다. 귀신에 씐 환자에게 끝도 없이 질문을 퍼붓는 것이 그의 특기. 가령 “당신이 정말 죽은 시어머니 귀신이라면 아버지 이름을 대보라”든가 “죽을 때 어떻게 죽었나?” “여기엔 뭐하러 왔냐”등등. 그리고 그 답은 곧바로 주위에 있는 가족들에게 확인, 정신병자나 귀신의 장난질을 사전봉쇄한다. 그리고 진짜 귀신이라는 판단이 서면 그때부터 조용히 물러갈 것을 설득, 정 안되면 강제로라도 몰아낸다. “귀신들도 저승이나 지옥에 대한 두려움이 많지요. 그러면 ‘지옥이나 천당이 따로 없다. 우리가 사는 여기가 바로 천당이고 지옥이다. 어서 저승에 가서 다음생을 받아 업을 씻고 좋은 삶을 누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한번도 순순히 물러나는 법이 없다. 그래서 웬만큼 귀신과 이야기를 나눈 뒤엔 떠나갈 시간을 정한 뒤 그 시간안에 나가도록 못 박는다. 그래도 안되면? 그때 쓰는 ‘약’이 있다. 쇳소리나 팥, 지압, 쑥 연기 등을 이용하면 귀신들은 엄청난 고통을 느낀다는 것. 일반인들에겐 그저 다소 성가신 소음이나 연기에 불과하지만, 귀신에겐 효과가 크다. 귀신을 쫓는 능엄경과 더불어 이것을 반복적으로 하다보면 결국은 지쳐서 물러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형식적인 퇴치법만으론 절대 쉽게 물러나지 않습니다. 귀신이 가져온 병까지 완전히 사라진 것이 확인될 때까지 강력하고 반복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팥을 던지는 것도 흉내만으론 하나마나입니다. 팥 던지는 걸로 치면 저는 박찬호보다 더 많이 던질겁니다. 6일동안 쉬지않고 많으면 하루 40명씩 던져대니까요.”

귀신마다 무서워하는 것 다 달라

참으로 엄숙, 경건한 작업같지만 실제상황은 그 반대. 얘기만 듣고 있어도 웃음이 터질 만큼 화기애애한 상황이다. 이것은 성안스님 특유의 분위기이기도 하고, 그 탓에 귀신들까지 제멋대로다. “얼마전엔 누구 귀신이냐고 물었더니 이주일 귀신이라며 이주일 흉내를 냈다가, 다음엔 또 박명수 귀신이라고 장난을 치는 겁니다. 하도 기가차서 ‘야, 다음 타자!’라고 외치자 ‘다음 타자는~(야구장 장내 방송 흉내)’그러면서 또 다른 귀신이라고 속이는거예요. 나, 참, 이건 정신병인지 신병인지,저도 헷갈리더라니깐요.”

때론 더 심한 강적도 있다. 한번은 어떤 환자에게 팥을 던지자 대개의 귀신이라면 부들부들 떨거나 도망을 다닐 상황에서 갑자기 그 환자는 바닥에 떨어진 팥알을 담박 주워들더니 그 딱딱한 낱알을 앞니에 물고 오드득 오드득 씹더니 “더 던져 봐, 더 던져 봐”라며 덤비고 나왔다. 그땐 그도 처음으로 소름이 오싹 끼쳤다. ‘아, 천하무적 팥알의 위력도 결국 수명을 다 했구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었다. 귀신마다 무서워하는 것들이 다 달라서 알고보니 그 귀신의 경우 팥 대신 쇳소리가 천적이더라는 것. 더 재미있는 것은 그때 모 방송사에서 그의 치료장면을 촬영하고 있었는데, 귀신이 어느 순간 카메라맨을 발견, 그 카메라맨앞으로 바짝 다가와서는 ‘이 아저씨를 어디서 봤더라’하고 겁을 줬던 모양. 그렇잖아도 무서움에 떨던 카메라맨은 더욱더 파랗게 질려버렸고, 그나마 직업의식 때문에 간신히 버티고 있던 차에 갑자기 카메라 렌즈가 움직이지 않는 이변이 벌어졌다. 그러자 거의 기절 직전의 공포에 이른 카메라맨,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건 귀신의 조화가 아니라 스님이 던지던 팥알이 렌즈사이에 끼어 움직이지 않았던 것. 어쩌면 귀신보다 더 무서운 건 인간의 상상력이 아닐까.

시어어니 귀신 씐 주부 치료하다 퇴마전문 돼

속세에선 서울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그는 사실상 그 자신도 귀신이 있을거란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오히려 불가와의 인연만 없었다면 지금쯤 어디선가 드러머가 되었거나 혹은 고급 오토바이 폭주족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출가전 학창시절엔 헤비메탈 록밴드에서 활동, 드러머를 꿈꾸며 중고시절을 보냈고, 괴짜 기질이 다분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13세부터 오토바이를 타기 시작, 아직도 드럼과 오토바이와 인연을 끊지 못했다.

스님으로 출가한 건 자신에게도 뜻밖의 일. 어느날 수안보 온천으로 여행을 가신 아버지가 갑자기 뇌일혈로 쓰러졌다는 전화를 받으면서 모든 길이 바뀌었다. 의사는 “3일을 넘기기 어렵다”며 집에 돌아가 아버지의 임종을 맞으라고 권했다. 그런데 그 3일동안 하루 8시간 이상 아버지에게 매달려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며 간호하자 아버지의 기력이 차차 돌아왔고, 그때부터 더 적극적인 치료를 위해 기 치료법을 공부, 실제로 아버지를 회복시키는 놀라운 효과를 보았다. 기에 대한 믿음이 생기면서 정신세계와 종교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한때 ‘나이롱’ 기독교신자이기도 했고, 몰몬교나 남녀호랑계교 등 온갖 종교를 다 기웃거려보았다. 그러던 중 배타적인 대부분의 종교와는 달리 석가가 죽기전 “나를 믿지 말라”(내가 아닌 진리 자체를 믿어야 한다)고 했다는 불교경전을 보고 충격을 받아 불교공부를 시작했다. 아버지의 건강이 웬만큼 회복되자마자 어머니의 반대도 무릅쓰고 출가, 7년전 안산의 한 암자에서 수계를 받았다. 한때는 무리한 구도 욕심에 며칠이고 잠 한숨 안자고 기도를 올리다 심각한 녹내장에 걸려 실명직전까지 이른 적도 있다.

본격적인 퇴마에 나선건 어느날 자신이 죽은 시어머니 귀신이라고 주장하는 한 주부신도를 치료하면서부터. 평소엔 책을 펴놓고도 따라읽지 못하던 천수경이나 어려운 금강경까지 줄줄 읊어대는 등등 이상한 일들을 겪으면서 실제로 생전 열성 신도로 불교공부를 했던 그녀의 시어머니임을 믿기 시작, 귀신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 이후 무속단체나 굿판 등을 다니며 골똘히 연구도 했고, 그 와중에 그의 치료사례가 소문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 본의아니게 퇴마 전문이 돼 버린것.

10년만에 돌아온 귀신 쫓으러 일본행

처음엔 종단에서도 좋아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의 은사인 노스님까지도 “스님이 무슨 귀신 쫓는 일이냐”며 호통을 치시는 통에 도망만 다녔다. 아닌게 아니라 그외에도 그에겐 별 난 구석이 더 있었다. 남들은 원문대로 하는 염불을 우리말로 쉽게 바꿔버렸고, 자신이 좋아하는 드럼이나 심벌즈 등 현대악기들을 끌어들여 최근엔 귀신쫓는 랩 음악까지 음반으로 내놓기도 했다. 또 “오토바이에 대해선 뭐라 해도 할말이 없다”며 여전히 오토바이를 놓지못하는 오토바이광. 그런 연유때문인지 포교활동에서도 오토바이 폭주족들에 대한 관심이 특별하고, 실제로도 조만간 그들을 위한 불교음악회를 열어 건전한 오토바이족들을 만들겠다는 구상중이다. 또 “스님은 스님이되 아직 절을 받을 만한 스님이 못된다”며 신도들이 올리는 삼배도 사양. 내년쯤엔 어설픈 종합상가건물 지하에 비집고 앉은 현재의 원효정사도 옮겨 지을 계획이지만 그조차 “신도의 돈으로 절을 지으면 결국 신도의 간섭을 받기 마련”이라며 불사도 거절, 자력으로 돈을 마련하고 있다.

오는 연말쯤엔 일본에도 간다. 표면상 목적은 치료차 방문이지만 스님의 속은 그게 아닌 듯 하다. 그가 볼 환자는 원래 10년전에 발병, 당시 일본의 고승이 고쳐주며 “지금은 간신히 물리쳤지만 10년 뒤(올해) 이 귀신이 다시 찾아올 것”이라 말했다는 환자.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요. 대체 10년만에 돌아오는 귀신은 뭐죠. 그 10년동안 대체 어디에 가 있었을까요. 또 그 노스님은 어떻게 10년뒤에 돌아올걸 알았을까요.” 그의 눈이 유난히 반짝거린다. 이 퇴마스님은 귀신을 쫓는게 아니라 귀신과 게임을 벌이고 있는건 아닐까. 만약 내기를 걸어야 한다면 어쨌든 이 중생은 이 씩씩하고 재미있는 스님에게 표를 걸고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정영주·자유기고가 김명원·사진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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