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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먹거리 주도권을 잡아라"

‘가깝고도 먼 이웃’ 한국과 일본이 ‘먹거리’를 놓고 치열한 자존심 대결을 벌이고 있다.

서로 다른 음식 문화를 지니고 있는 양국이 이처럼 사활을 건 먹거리 전쟁을 펼치는 이유는 2001년 7월 열리는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총회에서 대량 수출과 유통이 이뤄지고 있는 식품에 대한 국제 규격이 정해지기 때문. CODEX 총회에서 식품 규격이 확정될 경우 163개 가입국(98년 10월 기준)은 이 규격 기준에 맞춰야만 국제간 교역을 할 수 있다. 자칫하면 수출 활로까지 막힐 수도 있다는 얘기다.

현재 한·일간의 열띤 물밑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식품은 김치, 라면, 간장 등 3종류. 어느 것 하나 양보할 수 없는 필수 식품들이다.

한 식품이 CODEX 규격으로 확정되는데는 통상적으로 8단계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1.하부(지역)분과위원회에서 작업 개시 승인→2.CODEX 사무국서 초안 검토→3.회원국과 국제기구에서 초안 검토 및 의견 수렴→4.CODEX의 관련분과위원회에서 초안 심의→5.총회나 집행이사회에서 규격안 채택여부 결정→6.회원국과 국제기구에서 규격에 대한 의견 수렴→7.하부 분과위원회에서 규격안 재심의→8.CODEX 총회에서 최종 심의 결정 등의 과정이다.

현재 김치는 우리 정부의 주도하에 CODEX 규격 지정을 상당 부문 진행시킨 상태다. 그러나 현재 1단계를 진행중인 라면과 간장은 일본에게 선수를 빼앗겨 우리가 열세에 놓여있다.

김치

농림부는 96년 3월 CODEX 아시아지역위원회에 규격화 필요성을 제안, 3년여동안의 논의 과정을 거쳐 ‘김치는 소금에 절임한 배추를 주원료로 양념류를 혼합, 저온에서 젖산 생성을 통해 발효된 제품’,‘명칭은 Kimchi로 한다’는 규격안을 완성시켰다. 종주국으로서 일찌감치 국제 규격화에 이니셔티브를 잡은 것이다. 경쟁국인 일본 정부도 이 규격안에 찬성, 우리 농림부 주관으로 공동작업을 펼쳐 현재 6단계를 함께 진행중에 있다. 2000년 9월에서부터 시작되는 제20차 가공과채류본과위원회에서 7단계를 통과한 뒤 2001년 7월 제24차 CODEX총회에서 최종 승인을 받는다는 계획이다.

현재 규격안은 김치의 필수 원료로 배추 고춧가루 마늘 생강 파 무 소금, 선택성 원료로는 과실류 채소류 참깨 견과류 젓갈류 찹쌀풀 밀가루풀, 식품첨가물로는 젓산 구연산을 쓸 수 있다고 규정해 놓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일본의 민간업체들이 아사즈께도 김치에 포함시켜야 한다며 여론몰이를 하고 나서면서 갈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본쪽의 주장에 대해 농림부는 아사즈께는 발효가 안된 겉절이 일뿐 김치가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신맛을 내기 위해 구연산을 첨가하고 우리의 김치 규격안에서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천연색소 파프리카와 간장을 사용하기 때문에 김치의 범주에 포함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치는 우리가 주도권을 잡고 있는 식품이라 우리 의견대로 갈 확률이 매우 높다.

생산과 수출 등 물동량에 있어서도 김치는 우리나라가 세계 시장을 좌우하고 있다. 올 8월말 현재 김치 수출은 4,641만1,000달러어치로 지난해 실적 4,374만3,000달러를 이미 뛰어 넘었다. 이런 추세라면 연말까지 7,000만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수출 물량으로 봐도 올해 8월말까지 1만5,100톤을 수출해 일본의 기무치(1,648톤)를 9.2배나 초과했다. 지난해 6.2배보다 한·일간의 격차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일본내에서도 한국산 김치가 다이어트에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한국산 김치 수입량이 95년 9,634톤에서 97년 1만826톤, 98년에는 1만5,015톤으로 증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직접 김치를 구입하는 일본인 관광객들도 눈에 띄게 늘어나는 추세다. 김치 소비붐에 따른 일본의 기무치 생산량도 95년 9만3,0304톤, 97년 12만560톤, 98년 18만147톤으로 매년 급증하고 있다.

한국식품개발연구원이 지난해 10월부터 1년동안 미국인 남녀 355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0%가 김치를 먹어본 경험이 있고 27%는 볶음밥 등 간접적으로 김치를 먹어봤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김치의 국적에 대해서는 48%만 한국이라고 응답했고 일본(14%), 중국(6%)이라고 답하거나 ‘모른다’(33%)고 답해 국산 김치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김치제조업체는 460여개로 영세 중소기업이 주류를 이뤄왔으나 94년 중소기업 고유업종에서 해제된 이후 대기업들이 대거 진출해 있는 상태다. 두산의 ‘종가집 김치’, 동원산업의 ‘양반 김치’가 국내 시장 1,2위를 다투고 있고 92년 농협이 가세, 3파전을 이루고 있다. 최근에는 대상과 제일제당도 시장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청주과학대학은 국내 처음으로 정원 40명 규모의 ‘김치식품과학과’를 신설, 2,000학년도 신입생을 모집한다. 이 대학은 건강발효식품으로 인정받고 있는 김치를 과학적으로 연구할 전문가를 육성, 김치 세계화에 기여한다는 계획이다.

라면

수출에서 열세에 있는 일본이 먼저 선수를 치고 나오면서 경쟁에 불을 붙였다. 일본은 97년 자국이 중심이 된 세계라면협회를 설립, 종주국으로서의 주도권을 뺏기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내비쳤다.

일본이 이처럼 선수를 치는 것은 라면의 향후 수출 성장 가능성이 엄청난데다 최대 경쟁국인 한국의 기세가 워낙 강력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현재 라면은 전세계적으로 연간 434억2,000봉지(98년 기준)가 소비되고 있다. 이중 중국이 160억봉지로 최대 소비국이고 인도네시아(86억봉지), 일본(53억2,000만봉지) 한국(38억9,000만봉지) 등 4개국이 전체의 소비량의 77.8%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수출은 한국이 연간 4억6,600만 봉지로 일본을 제치고 독주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종주국인 일본으로서는 자존심이 크게 상하는 일이다. 일본은 수년전부터 한국 라면에 포함돼 있는 식품 첨가물인 폴리소르베이트(polysorbate)를 문제 삼아 대일본 수출을 견제하고 있다.

한국 라면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보다 독특한 맛에 있다. 한차례 우지 파동을 겪은 뒤 한국과 일본 라면의 질적 차이는 거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따라서 현재의 경쟁력의 차이는 맛에서 결정난다고 할 수 있다.

국산 라면의 특징은 다른데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추 성분의 매콤한 맛을 들 수 있다. 이에 반해 일본 라면은 간장 된장 소금 돈골(돼지뼈)이 주원료여서 느끼한 맛이 난다. 이런 맛의 차별화로 국산 라면은 종주국이자 경쟁국인 일본으로의 수출이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300만달러를 수출했고 올해에는 이보다 66% 늘어난 약 500만달러(약 2,000만봉지)를 수출할 것으로 예정이다.

국내 라면업계 1위인 농심이 생산하는 신라면의 경우 전세계 45개국에서 수출되는 등 단일 제품으로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일본은 인건비 문제로 자국내 생산품은 거의 수출을 하지 못하고 주로 인도네시아, 중국, 태국 등 현지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도네시아와 태국 등이 저가 공세를 펴며 한국을 위협하고 있으나 유통망이나 품질에서 아직 한국에 경쟁 상대가 안된다.

현재 한·일간의 라면 CODEX 규정 설정에 있어서는 우리가 약간 열세에 있다. 일본은 최근에도 우리나라를 비롯해 9개국을 순방하며 전방위 로비전을 펼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는 올해초에야 식품의약품안정청의 식품안전과와 민간 업체들이 함께 대비에 나서 한발 뒤쳐져 있다. 하지만 현재 라면의 국제 규정안은 아시아지역조정회의 수준인 1단계에 있어 우리가 중국 인도네시아 등과 연합 전선을 구축할 경우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보고 있다.

간장

지난해 3월 일본이 제19차 CODEX 가공과채류분과위원회에 규격화를 제안, 선공에 나섰다. 그해 6월 제45차 CODEX 집행이사회에서 규격화의 필요성이 인정돼 현재 1단계를 통과한 상태다. 농림부에서는 간장의 중요성을 인식, 현재 규격제정시 한국을 워킹 그룹에 참여케 해달라고 제의해 놓고 있는 상태다.

일본도 우리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지난해 12월 주일농무관을 통해 우리측에 검토 의견을 요청했다. 농림부는 일본 초안을 가지고 생산업계 학계 등 관련기관 규격심의회를 거쳐 의견을 수렴한 뒤 올해 3월 일본측에 우리측 안을 통보해 놓고 있는 상태다.

현재 한·일 양국은 사용 균주 규정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해 있다. 일본은 단일 균주를, 우리나라는 복합 균주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의 전통간장은 콩으로 메주를 쑨 뒤 이를 곰팡이로 자연 발효시켜 소금물에 넣고 숙성시킨 다음 고형물은 된장으로 먹고, 소금물은 달여 간장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일본간장은 메주를 쑤지않고 압착한 콩에 곰팡이를 배합해 숙성시킨 다음 여과시켜 간장을 만든다. 일본은 천연양조간장 단기양조간장 일반양조간장 비양조간장 혼합간장 등 5종류로 구분하자는 입장이나 우리는 양조간장 비양조간장 혼합간장 3종류를 주장하고 있다. 품질요소에서도 일본은 색깔 향미 짠맛외에 향미 강화제인 우마미를 넣을 것을 주장하는데 반해 한국은 우마미의 삭제를 요구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국내 개량간장 업체들이 일본식으로 간장을 생산하고 있으나 CODEX 규격 제정에는 전통간장 제조법이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hre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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