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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

우리나라 기업인들의 최대 이익기구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역사는 우리의 굴절된 정치사와 궤를 같이 한다. 30여년의 군사독재정권은 재벌기업들과 상당부분 공동의 이해관계를 갖고 서로 협력해왔다. 한국전쟁이후 최대의 국난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를 맞으면서 재벌들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전경련도 기업인들이 아닌 재벌오너의 이익만을 대변했다는 비난속에 변신을 요구받고 있다. 97년초부터 노사정협상, 빅딜 등 굵직굵직한 현안이 터질 때마다 회원사간 의견조정과 대정부 협상 등 전경련의 실무업무를 온몸으로 해결해온 전경련 손병두 부회장(58)을 집무실에서 만났다. 손부회장은 엄청난 업무량을 반증하듯 얼굴에 피로한 표정이 가득했지만 각종 현안에 대해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전경련 김각중 회장대행이 오늘(11일) 전경련의 그동안 행태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했는데.

“전경련도 변해야 한다는 거지요. 기업활동의 환경이 변하니까요. ‘발전위원회’에서 구체적인 작업을 합니다. 그러나 명칭에서도 나타나듯이 개혁이 아닌 점진적인 발전입니다. 개혁은 타율적이고 명령의 성격이 짙지만 발전은 자발적인 겁니다. 올연말이나 내년초 새회장 선출때까지는 결과가 나옵니다.”

-현대그룹 정몽구회장이 전경련회장으로 거의 확정됐다가 막판에 바뀌었는데 정부의 압력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그런건 아니고 정회장께서 전임 회장(김우중 회장)이 불명예스럽게 물러났고 현대의 구조조정문제도 있고 해서 고사한 것 같아요. 전경련도 올연말까지 대기업 빅딜문제도 남아있고 부채비율 200%건도 있고 해서 일단 직무대행체제로 가기로 결정한거지 압력은 없었습니다.”

-김우중 전회장에 대한 사법처리설이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세상인심이 야박하다는 생각입니다. 김회장은 샐러리맨들의 우상이었고 한국을 세계에 알린 사람입니다. 그동안 국민들이 세계경영을 얼마나 칭찬했습니까. 게다가 김회장은 자기가 호위호식한 것도 아니고 오직 일밖에 몰랐습니다. 제가 전경련 회장으로 모시고 있을 때 일인데요. 한번은 무슨 일이 있어서 함께 아이디어를 짜내다 새벽 2시30분쯤 헤어져 집으로 돌아와 잠이 들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까 김회장이었어요. ‘여기 전경련 회장실인데 지금 나올 수 있냐’고 해서 시계를 보니까 새벽 5시30분입디다. 그러니까 그분은 거의 잠도 자지 않은 거예요. 일밖에 모르는 분입니다. 그동안 정부에서 상당수 부실기업을 김회장에게 강제로 떠맡기다 시피했고 김회장은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과 근면성으로 이 기업들을 일으켰습니다. 동유럽에서는 김회장을 징기스칸 이후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기억할 정도입니다. 물론 법을 어겼다면 처벌을 받아야겠지만 경영상의 실패를 처벌한다면 기업하기가 힘들어집니다. 김회장을 매도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허물은 가능한 덮어주면 좋겠어요.”

-하지만 대우가 국가나 국민들에게 준 엄청난 부담은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IMF라는 어려운 상황이 크게 작용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대우가 어렵긴 했지만 정부쪽에 있는 분들이나 여러사람들이 너무 ‘대우가 어렵다’는 말을 자주하다보니 더욱 더 어려워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우가 원래 해외에 외상으로 수출했다가 나중에 받는 방식으로 영업을 했는데 소문이 악화하니까 돈을 받지 못하고 부실채권이 급격히 늘어나는 거지요. 정부에서 꼭 그렇게 처리할 수 밖에 없었는지 아쉽습니다. 김회장도 한번은 저에게 그러더라고요. 자기가 시장점유율같은 것만 신경쓰고 자금회전부분을 너무 소홀히 했다고요.”

-재벌들이 그동안 너무 무분별하게 차입경영에 의존했기 때문 아닌가요.

“제가 취임한 직후인 97년 4월에 전경련에서는 기업구조조정 특별법안을 만들어서 정부에 건의했습니다. 그러니까 IMF가 오기전이지요. 기업이 구조조정을 하려면 세법 등 무려 12개 법의 규제를 받아요. 그래서 몇년간 법규제를 유보하고 구조조정을 촉진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습니다. 정부에서는 개별법에 반영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그 때 구조조정이 제대로 됐으면 IMF를 조금 늦출 수 있었지 않았나 아쉽습니다.”

-연말까지 부채비율 200%를 맞추겠다고 약속했다가 다시 어렵다고 하는 것은 문제 아닙니까.

“약속을 했으니까 가능한 지켜야지요. 그런데 일괄적으로 적용하기에는 부작용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종합상사나 건설업, 해운쪽은 업종 특성상 부채비율이 높습니다. 이런쪽은 약간의 융통성을 달라는 겁니다. 부채비율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고 낮아지는 추세이니까요. 일본도 부채비율을 500%에서 200%로 줄이는데 20년이 걸렸습니다.”

-아주 어려운 시기에 전경련에 들어오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입니까.

“정말로 힘든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노사정합의, 빅딜 등 하나하나가 모두 쉽지 않았습니다. 빅딜을 합의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납니다. 지금도 그 날짜를 잊지 않는데 작년 7월4일 청와대에서 김대통령께서 주관하신 정재계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보통 점심먹고 보고하고 토론하는 식이었는데 그날 마침 오후 1시30분에 제 딸 결혼식이 있었어요. 청와대 간담회가 워낙 중요한 사안이어서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할 형편이었는데 대통령께서 보고를 빨리 들으시더니 결혼식에 가라고 배려하셔서 겨우 딸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 때 빅딜방침이 결정됐습니다. 그후 제가 빅딜간사를 맡아 롯데호텔에서 1개월여를 묶으면서 회원사들의 의견을 조정하고 정부측과 협상하면서 가까스로 빅딜의 윤곽을 그려냈습니다. 너무 힘이 들어서 인근 명동성당에 가서 기도도 많이 했습니다.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올해 연말이면 빅딜이 모두 마무리돼 뿌듯합니다.”

-1년여간 경제개혁이 한 당사자로 참여하셨는데 정부정책의 방향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 정부의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철학이 분명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여건이나 토대가 열악해 정부내 개입주의자들의 발언권이 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앞으로 시장이 스스로 작동할 수 있도록해야 합니다.”

"나도 IMF 희생자"

손부회장은 자신도 IMF의 희생자라고 말한다. 97년 말 사업을 하던 사위가 부도가 나면서 가족을 데리고 손부회장의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선경아파트로 들어왔다. 노모까지 손부회장의 식구는 모두 11명으로 늘어났다. 지금은 아들과 딸이 각각 출가해 식구가 9명으로 줄었지만 실평수 40여평인 아파트 밀도는 아직도 높은 편이라고 말한다.

▲경남 진양생 ▲경복고 ▲서울대 상대 경제학과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 경영관리담당 이사 ▲한국생산성본부 상무이사 ▲전경련 부설 한국경제연구원 대표이사 부원장 ▲전경련 상근부회장

송용회·주간한국부 기자 songyh@hk.co.kr

김명원·사진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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