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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현의 길따라 멋따라] 경북 포항 장기곶

2000년 1월1일 서울은 텅텅 빌 예정? 해를 보러 동해안으로 떠나기 때문이다. 새천년준비위원회는 물론 북쪽 끝 강원 고성군부터 시작해 남녘의 부산까지 동해바다와 붙어있는 시·군이 빠짐없이 새천년 해맞이축제를 계획하고 있고, 관광업계의 상품도 대부분 동해의 일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첫 아침의 의미에 대한 개개인의 생각도 각별해 동해를 찾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할 듯하다. 잠잘 곳은 벌써 거의 동났다. 차 안에서라도 밤을 새면 어떤가.

그중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릴 곳은 육지의 최동단. 경북 포항시 장기곶에서 구룡포에 이르는 10여㎞의 해안이다. 겨울철 해가 약간 동남쪽에서 떠오르기 때문에 사실 육지에서 일출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은 울산 앞바다이지만 최동단이라는 장기곶의 의미를 넘지는 못한다. 그래서 새천년준비위원회는 이 곳에서 떠오르는 햇빛으로 ‘영원의 불’을 채화한다. 그날 오전7시31분 이 곳에 수천 혹은 수만명이 모여 새 천년을 실감할 예정이다. 이 땅의 의미를 안다면 그 아침은 더욱 값질 듯하다.

장기곶은 호미곶이라고도 한다. 조선 명종때 지어진 ‘산수비경’에서 한반도는 ‘호랑이가 연해주를 할퀴는 형상’으로 백두산은 호랑이의 코, 장기곶은 그 꼬리에 해당하는 곳이라 했다. 고산자 김정호는 최동단을 확인하기 위해 이 곳과 울진군 죽변곶을 일곱차례나 오갔고 결국 대동여지도에 이 곳을 더 동쪽에 그려 넣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말살하려 했던 일본인들은 한반도를 토끼로, 장기곳을 토끼꼬리로 둔갑시켜 놓았다. 또 조선말기에는 암살된 개화파 김옥균의 왼팔이 이 곳 앞바다에 버려졌다. 일본과 가까운 이 바다에 그의 팔을 수장해 반도에 가득한 ‘역모의 기운’을 잠재우겠다는 의도였다.

한반도에서 가장 크다는 장기곶등대도 많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1903년 12월 국내에서 두 번째로 불을 밝힌 이 등대는 팔각형 연꽃모양으로 6층 건물의 높이이며 동양에서 세번째로 큰 규모이다. 우뚝 서서 불을 밝히자마자 이 등대는 일본이 한반도를 침탈하는데 좋은 길잡이 노릇을 했다. 등대 옆에는 국내 유일의 등대박물관이 있다. 84년 문을 연 이 박물관은 등대의 역사 등 우리나라 등대의 모든 것을 지니고 있다. 아쉽게도 현재 보수중이고 2000년 12월에나 재개관한다.

장기곶에서 그림같은 해안도로를 타고 10여분을 남하하면 구룡포. 이 항구는 대규모 어항으로 수천척의 고깃배가 수시로 들락거린다. 항구 가득한 비린내, 출어준비에 바쁜 뱃사람들의 표정, 항구 앞으로 줄을 이은 각종 식당…. 포구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구룡포에서 31번 국도를 따라 감포, 나정을 지나면 대왕암이 나온다. 신라 문무왕의 “화장을 해서 동해에 뿌려달라”는 유언에 따라 그의 유골은 동해의 한 바위에 뿌려졌다. 그 옛날에도 얼마나 왜구의 침탈이 심했으면 죽어서도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마음을 먹었을까. 대왕암 주변에는 유난히 안개가 많이 낀다. 짙은 해무와 검은 바위의 사이로 아침해가 떠 오르는 광경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권오현 생활과학부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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