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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세상읽기] 고 최무룡 빈소 조감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넘쳐나지만, 정승이 죽으면 조문객이 없다. 권력을 쫓아가는 인간의 속성을, 그런 세태를 빗댄 말이다. 그 정승은 덕망이 없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권력을 이용해 관직을 팔거나 재산을 모은 탐관오리일 것이다. 아부를 칭찬으로 듣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사람이 죽었다. 그 순간 권력도 사라졌다. 권력을 잃어버린 곳에 사람은 없다. 권력은 이처럼 무상하고 권력 밑의 인심은 구름처럼 허무하다.

인기의 속성도 권력과 같다. 대중문화는 스타가 만든다. 때문에 스타주변에는 사람이 모인다. 그를 이용해 돈을 벌고, 그가 번 돈을 챙겨보려는 사람들이다. 그의 결혼식장은 미어터진다. 영화배우라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를 자신의 작품에 출연시키려는 제작자, 감독들이 눈도장 찍기에 바쁘다. 매스컴도 그를 이용해 관심을 끌려한다. 첫 아이라도 낳아 돌잔치를 해도 법석을 떤다. 심지어 그가 아끼는 강아지까지 화제거리로 만든다. 그 인기를 타고 스타는 구름 위를 떠다닌다. 언제나 인기, 곧 권력이 자신에게 머물 수 있다고 착각한다. 남에게 베풀기를 잊어 버린다.

덕(德)은 눈과 같다. 아무도 보지 않는, 밤사이 소리없이 쌓인다. 한 두번 내리고 그치면 금새 녹는다. 여러 날을 두고 차곡차곡 쌓여야 단단해진다. 하루아침에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인기와는 정반대 속성을 지닌다. 그래서 인기스타에 덕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그 인기가 시들고 나면, 왕년의 스타는 더욱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는지도 모른다.

원로 스타들의 빈소는 언제나 쓸쓸하다. 애도의 화환이나 문상객이 적어서만은 아니다. 권력자들은 “그를 안다” “그와 한때 친했다”는 표시로 우람한 국화 꽃다발을 보내지만, 그 뿐이다. 그게 세상인심이다. 화려한 과거는 있었는지 몰라도 현재가 없기 때문이다. 인기는 있었는지 몰라도 덕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1월11일. 한국영화계는 또 하나의 큰 별을 보냈다. 54년 ‘피아골’로 데뷔해 80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최무룡씨. 젊은 시절 수많은 여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고, 수많은 염문을 뿌리고 다녔던 풍운아였다. 한때 그의 아내였던 김지미씨(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는 “그는 나운규, 김승호를 잇는 한국남자배우 큰 기둥이었다”고 회고했다. “배우로서 긍지와 자부심, 타고난 예술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한때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자신의 인기를 다른 방향에서 증명하기도 했다.

상주(喪主) 역시 90년대초 전국을 ‘모래시계 열풍’으로 들끓게 했던 스타 최민수씨다. 2대가 한국영화에 끼친 업적을 생각하면 모든 영화인들이 고인의 타계를 애도하고 아쉬워하는 마음을 가질만하다. 그러나 빈소의 분위기는 그렇지 못했다. 젊은 후배배우들의 조문은 뜸했고, 고인과 한때 영화를 만들었던 원로 영화인들은 자신의 이름을 쓴 화환만 보냈다. 그의 공로를 인정해 정부가 추서한 훈장이 오히려 쓸쓸하다. 영화인장(葬)이라기엔 너무나 초라한 한 스타의 마지막 가는 길. “지금 우리사회의 전반적인 현상”이라고 하면서도 김지미씨는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김승호씨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20대였다. 그런데도 제일 먼저 달려갔다. 한국영화의 혼을 지켜온 선배였기 때문이다. 그속에 내가 있기 때문이다. 선배를 존중해야 나중에 나도 인정받는 존재가 된다. 그것을 무시하는 후배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다고 후배들만 욕할 수 있을까. 과연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덕과 사랑을 베풀었나. 어느 것이 먼저인지 모르지만 지금 한국영화계는 ‘무시와 미움’이 존경과 아낌을 대신하고 있다. 고인 역시 그것이 안타까워 생전에 화합과 단결을 당부했다. 그만큼 영화인들은 소중한 과거와 미래는 물론 작은 미덕까지 잃었다. 한 노배우의 허전한 장례식이 스타에게는 인간적인 미덕(美德)쌓기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젊은 영화인들에게는 곧 부메랑처럼 돌아올 이기심의 비극적 상처를 경고한다.

이대현·문화부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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