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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황혼의 승부사들 "아직 죽지않았다"

어떤 충격에도 미동도 하지 않을 ‘이창호 왕국’에 긴장감이 쌓이고 있다. 황혼의 승부사들이 재기의 칼날을 세우며 잃어버린 고토(古土)를 향해 맹반격에 나섰기 때문이다.

조훈현 서봉수. 올해 47세로 지천명을 눈앞에 둔 그들이 의기투합, 이창호의 아성에 흠집내기를 선언했다. 서봉수는 11월 5일 LG정유배에서 유창혁을 3:2로 꺾고 7년만에 무관에서 탈출하여 노장은 죽지 않았음을 알렸다. 조훈현은 9일 끝난 바둑왕전에서 이창호를 2:0으로 셧아웃, 아예 93년 이후 이창호에게 빼앗긴 일인자의 자리까지 엿볼만큼 활황세다.

불과 지난달까지 국내 타이틀개수에서 이창호 7개, 조훈현 2개, 유창혁 1개로 나뉘어졌던 영토분포가 현재 이창호 5개(명인 왕위 기성 천원 최고위) 조훈현 3개(국수 패왕 바둑왕) 유창혁 1개(배달왕) 서봉수 1개(LG정유배)로 바뀌었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건 조훈현과 이창호의 타이틀수 분포이며 유창혁과 서봉수의 3인자 쟁탈전이다.

조훈현은 실제로 올들어 이창호와 대등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상대전적에서도 이창호에게 4승2패로 앞서갈 뿐 아니라 연초 춘란배에서 이창호를 잡은 것이 그에게 큰힘으로 자리잡았다는 분석이다. 여지껏 이창호의 뒤를 따라만 가도 잘한다는 자부심에서 이젠 전성시절처럼 그와 대등한 갯수싸움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다.

특히 이번 바둑왕전에서 조훈현이 이창호를 이김으로써 속기전에서는 유독 이창호에게 강한 면모를 과시한 것은 조훈현의 감각바둑이 아직 녹슬지 않았다는 증거다. 따라서 아무래도 국제전에 비중이 더 높은 현실에서 조훈현이 과거와 같은 성가를 드높힐 여지는 충분하다.

조훈현의 경우 실제로 이창호에게만 상대적으로 약간의 약세를 보일 뿐이지 다른 기사에겐 거의 지는 법이 없다. 따라서 유독 이창호와의 대결만이 관심사인데 지금처럼 확률을 높힌다면 그가 새천년에도 여전이 이창호와 쌍벽을 이루는 실력자로 우뚝 솟을 가능성이 크다. 누가 뭐래도 이창호를 잡을 가능성이 가장 큰 기사는 조훈현이기 때문이다.

유창혁은 지난달까지 외화내빈의 세월을 보냈다. 노총각 딱지를 떼고 행복한 결혼생활로 접어드는가 했으나 때 아니게 서봉수에게 일격을 맞으면서 3인자 자리도 위태롭게 됐다. 과거같으면 서봉수가 당연히 유창혁에게 밀릴 처지. 그러나 그도 무섭게 늦바람을 내며 천원전 LG정유배에서 챔프전까지 진출 제2의 전성기를 예고하고 있었다. 유창혁도 배달왕전 하나만 허리에 두른 상태라 정상권유지가 위태롭던 시절. 그도 LG정유배와 왕위전에서 챔프를 꿈꾸고 있었다.

유창혁의 결과는 둘다 실패로 끝났고 서봉수는 이창호에게는 2:0으로 밀리고 있으나 유창혁에게 3:2로 천금같은 승리를 거두고 이미 절반의 승리를 확보한 셈이다.

유창혁은 이번달부터 조훈현을 상대로 자신이 보유한 배달왕전 도전기를 갖는다. 만일 조훈현이 이겨낸다면 유창혁은 무관으로 빠져들게 되며, 조훈현은 이창호와 타이틀 수에서 5:4까지 바짝 추격하게 된다.

‘고개숙인 남자’가 되어도 시원찮을 40대 후반에 다시금 전성시절을 열어젖힌 조훈현과 서봉수. 한번쯤 타이틀을 맛보아서 향수나 일깨워주는 수준이 아니다. 숫제 세계정상급인 이창호 유창혁을 상대로 결코 기죽지않고 있다는 점은 그들이 황훈의 승부사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는 증거다. 그들이 버텨줄 때까지 버텨주는 한 우리바둑계는 기름질 수 밖에 없다. 나이가 어리다고 무조건 희망적으로 보지말아 달란다. 힘보다는 기(氣)가 더 승부사에겐 중요한 덕목임을 조훈현 서봉수는 몸으로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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