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당호는 흐르지 않는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팔당호는 한강에 높이 29㎙의 댐을 막아 만들었기 때문이다. 가끔 수문을 열어 물을 방출하기도 하지만 양은 극히 미미하다.

그러나 환경부는 지금까지 이토록 자명한 명제를 부정해왔다. “팔당호는 어디까지나 강이지 호수일 수는 없다” 는 것이다.

‘강이면 어떻고 호수면 어떠냐’ 고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사실 이는 수질을 관리하는데 있어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강이냐, 호수냐에 따라 기본적인 수질평가기준부터 음용수로 처리하는 방식까지 모든 것이 달라진다.

환경부는 팔당호를 강으로 보기때문에 생물화학적산소요구량(BOD)으로 수질을 평가한다. 10월 한달간 팔당호의 BOD 평균값은 1.5㎎/ℓ로 여과같은 간이정수처리만 거쳐 마실 수 있는 1급수(1㎎/ℓ이하)에는 못미치지만 일반정수처리후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2급수(1~3㎎/ℓ)에 해당한다.

그러나 대다수 학자들의 지적대로 팔당호가 호수일 경우 화학적 산소요구량(COD)을 적용받게 된다. BOD나 COD는 모두 물 속에 포함돼 있는 유기물질을 측정하는 것이지만 전자는 5일간 자연상태에서 분해시킬때 사용되는 산소량이고 후자는 인위적으로 산화시킬때 소요되는 산소량이다. 때문에 정체된 물의 경우 COD가 평가기준으로 더 유용하고 실제 우리나라 법규에도 강은 BOD, 호수는 COD를 적용하도록 정해져 있다. COD로 보면 팔당호는 3.2㎎/ℓ로 고도정수처리를 필요로 하는 3급수(3~6㎎/ℓ)로 분류된다.

흐르지 않는 팔당호, 고도정수처리해야

2,000만 수도권 시민은 환경부가 팔당호를 강으로 본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고도정수처리가 필요할 수도 있는 물을 그냥 일반정수처리만 한뒤 마시고 있는 셈이다.

사실 팔당호가 호수라는 점은 환경부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다. 11월6일 환경부는 올해 발효된 호소수질관리법에 따라 3~5년 간격으로 수질·수리조사를 벌이는 ‘환경조사대상 호소’ 로 90개 호수를 신규 지정했다. 당시 팔당호는 전형적인 호수인 화진포호 등과 함께 ‘환경조사대상 호소’ 에 포함됐다.

그러나 환경부 관계자는 이날 보도브리핑을 마치자마자 “팔당호 물의 체류기간이 2.3일로 호소보다는 하천에 가깝기 때문에 앞으로도 수질평가기준은 계속 하천을 평가하는 BOD를 활용하게 될 것” 이라고 덧붙였다.

이같은 발표가 있자 환경전문가들의 비판이 잇따랐다. 환경부의 여러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는 C대 L모교수는 보도자료를 통해 “팔당호 물의 체류기간이 2.3일이라면 20㎞를 지나가는데 이만큼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인데 이같은 속도는 일반적인 한강하류 강물 속도보다 2~3배나 느린 것” 이라고 지적했다. 방현수 수리지질연구소장도 성명을 내고 “팔당호의 저수량이 2억여톤에 달하기때문에 일부 표층수의 물이 2.3일만에 빠져나갈 수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물은 짧게는 1~2주일, 길게는 수십년동안 가둬져 있다” 고 반론을 폈다.

팔당호가 강이라는 억지는 더 이상은 불가능해 보인다. 환경부가 취해야 할 행동도 명백해졌다. 팔당호 수질평가기준을 COD로 바꾸고 고도정수처리한 뒤 식수로 공급해야 한다. 문제는 이렇게 될 경우 연간 수조원의 돈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점이다. 환경부가 팔당호를 강이라고 강변하는 진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딜레마 속에서 최근 팔당댐을 ‘흐르는 댐’ 으로 개조하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1년동안 고도정수처리에 소요되는 돈만 투자하면 댐에 파이프를 설치하거나 터널을 뚫어 1억여톤의 심층수와 2,900여톤의 오니를 방출, 수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물이 흐르기 때문에 수질평가기준으로 BOD를 적용해도 무방하게 된다.

댐에 파이프·터널 이용 “물 흐르게 해야”

댐개조론의 대표주자인 서울대 안수환(토목학과) 명예교수는 철제파이프의 일종인 사이폰관을 댐 바로 안쪽 호수바닥에서 댐 상층부를 거쳐 바깥쪽으로 연결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댐 기저부에 구멍을 내는 것이지만 이는 댐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만큼 사이폰관을 댐 위로 넘겨 연결하면 수압에 의해 심층수와 오니를 댐 바깥쪽으로 내보낼 수 있다는 논리다.

국책사업 전문연구기관인 동서문명연구원(원장 이성구)은 올해초 터널을 뚫어 오니와 심층수를 뽑아내는 팔당댐 개조안을 만들어 특허를 출원했다. 이 방안은 호수 바닥에서 출발해 댐 바로 옆 바위산 내부를 통과, 바깥으로 연결되는 터널을 만들어 심층수와 오니를 빼낸뒤 PVC파이프를 통해 구리 등 인근 하수처리장까지 보내자는 내용이다.

민간의 논의가 이같은 수준까지 진전해 있는 반면 정부가 11월20일 환경부안을 토대로 밝힌 한강수질개선 종합대책에는 ‘팔당호가 호수이니 현재로서는 고도정수처리를 한뒤 마셔야 한다’ 는 솔직한 반성이 전혀 없었다. 계속 하천으로 밀고나가려는 것이다.

환경운동연합의 한 관계자는 “일단 팔당호가 고도정수처리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모든 수질개선대책을 우선한다” 며 “현실을 인정하기만 하면 현재로서는 수조원의 예산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여러 대안들이 논의되면서 팔당호를 살릴 대책다운 대책이 나올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팔당호의 물만큼이나 정체돼 있는 환경부의 사고가 언제쯤 바뀔지 지켜보는 눈이 적지 않다.

이은호·사회부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