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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중동 정세만큼 복잡했던 수에즈 운하

파나마운하와 함께 지구상에게 가장 전략적인 인공수로는 수에즈운하다. 수에즈운하는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면서 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을 가르고 있다. 길이 168㎞로 유럽과 인도양, 서태평양을 잇는 최단거리 항로다.

파나마운하보다 35년 이른 1869년 완공된 수에즈운하는 19말 이래 유럽열강이 아시아로 진출하는 관문이었다. 그런만치 이 운하는 동양의 운명을 좌우하기도 했다.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의 발틱함대가 일본 연합함대에 패배한 것도 수에즈운하와 관계가 깊다.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일본과 동맹을 맺고 있던 영국이 발틱함대의 수에즈 통과를 불허했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발틱함대는 멀리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와야 했다. 대항해로 기진맥진한 발틱함대를 일본이 대한해협에서 수장시킨 것은 당연지사일 지도 모른다.

수에즈운하가 이집트의 소유로 들어가는 과정은 파나마운하보다 더욱 극적이었다. 파나마운하가 협상을 통해 반환된다면 수에즈운하는 19세기 중반의 냉전 외교와 전쟁을 통해 획득됐다.

이집트 낫세르 대통령이 수에즈운하의 국유화를 선언한 것은 56년 7월26일. 이집트가 소련과 가까워지자 미국과 영국이 보복으로 이미 약속했던 아스완댐 건설비용을 지원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국유화한 수에즈운하의 선박 통행료로 댐건설 비용을 조달하겠다는 것이 낫세르의 공언이었다.

낫세르의 정책은 제 2차 중동전쟁을 불렀다. 이른바 ‘수에즈 위기’다. 전쟁은 운하를 공동소유하고 있던 영국과 프랑스가 이스라엘을 충동질해 56년 10월29일 이집트를 공격함으로써 시작됐다. 11월 초에는 영국과 프랑스도 참전했다.

그러나 전쟁은 오래가지 못했다. 소련이 이집트를 편들어 개입하겠다고 나서고 유엔과 국내 여론이 전쟁반대로 기울자 영·불이 발을 뺀 것이다. 낫세르 대통령은 수에즈운하의 국유화에 성공하면서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올랐다. 반대로 영국과 프랑스는 중동지역에서 행사하던 영향력을 거의 잃고 말았다.

수에즈운하는 건설한 지 130년이 지났지만 그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수에즈운하는 파나마운하와 달리 운하 수면의 높이가 해수면과 같다. 그만큼 건설이 쉬웠다. 하지만 수에즈운하가 식민지 시대를 청산하는 과정은 파나마운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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