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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1999] 한국경제는 '헛똑똑이'

한국,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누구나 알고 있다시피 이들 5개 나라는 97년 외환위기로 국가 경제가 파탄지경에 빠졌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불과 2년여가 흐른 지금 한국 경제는 통화가치, 주가, 금융개혁 등 다방면에서 나머지 국가들을 압도하고 있다.

외환위기로 한때 달러당 1,800원까지 폭락했던 원화의 가치는 이제 달러당 1,100원선까지 회복했고, 연 30%를 넘나들었던 시중금리도 10%선 아래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은 통화가치가 금융위기 이전의 66~70%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금리 역시 아직까지는 외환위기 이전수준으로 안정되지 않고 있다.

주식시장의 활황세 역시 한국이 압도적이다.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의 경우 최근 들어 증시가 활황 국면에 접어들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금융위기 이전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 상태이다.

반면 한국의 주가지수는 금융위기 발생이전의 120%에 도달해 있다. 금융개혁에 있어서도 한국은 가장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99년 2월 현재 각국 은행의 부실채권 비중을 비교하면 한국은 부실채권의 비중이 7.4%인 반면, 태국과 인도네시아는 각각 43%와 65%에 달할 정도로 심각하다.



경기 회복 뒤엔 엄창난 '재정적자'

한국 경제가 똑같이 외환위기를 겪었던 나머지 동남아 국가들보다 먼저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같은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근면한 국민’이나 ‘탁월한 지도자’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싶겠지만 불행하게도 이는 진실과는 거리가 먼 대답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 경제가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보다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이유는 이들 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천문학적 규모의 공적자금이 투입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의 경우 외환위기 초기에는 태국보다 금융부실 문제가 심각했지만, 64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이 투입되면서 2년만에 부실채권 비율을 태국의 ‘5분의1’수준으로 낮출 수 있었다.

결국 한국 경제가 단기간에 급속도로 회복한 배경에는 태국(98년 GDP대비 재정적자비율·2.6%), 말레이시아(1.8%), 필리핀(1.9%)의 2~3배에 달하는 ‘재정적자’가 이뤄졌기 때문이다(한국의 GDP대비 재정적자비율은 4.2%).

그렇다면 2년만에 한국 경제를 되살린 ‘재정적자’는 부작용이 없는 만병통치 약인가.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말처럼 ‘재정적자’는 결코 만병통치 약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적자재정에 따른 재정지출로 경기회복이 앞당겨지고 금융위기로 인한 사회적 고통이 완화된 측면이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앞으로 5~6년 동안 국민들은 재정적자의 후유증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채무증가, 물가상승으로 이어질 듯

이와 관련 금융연구원은 “재정적자, 즉 단기간에 걸친 채무증가는 곧바로 물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금융연구원의 최공필 박사는 최근 발표한 관련 보고서에서 “재정적자에 따른 채무증가는 통화금융면에서의 부담을 가중시키는데, GDP대비 재정지출의 1%포인트 증가는 4년 동안 물가를 3%포인트 상승시키는 압력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98년의 재정적자 규모(4.2%)를 감안하면 앞으로 4년동안 물가가 12% 오르게 된다는 얘기인 셈이다. 최박사는 또 “채무수준이 (정부의 주장대로) 중장기적 경제능력면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 할지라도, 단기적 경기운용에서 재정정책을 통한 조정이 필요할 때 그 여력이 한계에 다다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금융연구원과 최박사는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빚을 내서 투입한 막대한 공적자금이 물가를 자극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금융연구원이 이처럼 재정적자에 따른 물가상승 가능성에 대해 유난히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물가상승, 즉 인플레이션이 갖고 있는 위험성 때문이다. 일반인들에게 단순히 물건값이 오르는 것으로 알려진 인플레이션은 사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총든 강도’보다 무서운 존재이다.

즉 물건 값은 ‘가난한 자’와 ‘가진 자’를 구별하지 않으므로, 인플레이션은 ‘가난한 자’의 부를 ‘가진 자’에게 배분하는 역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최악 상황 가지 않을 것" 전망도

인플레이션의 폐해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고종때 발행된 당백전(當百錢)이다. 1864년 아들인 고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권력을 쥐게 된 흥선대원군은 1866년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경복궁의 중건에 착수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 조선 왕조의 재정은 바닥이 나 있었다. 결국 흥선대원군은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당백전을 발행하게 된다.

당백전은 상평통보의 100배라는 법정가치를 설정했으나 실제가치는 상평통보의 5~6배에 불과한 악질화폐였다. 당연히 쌀 한되에 한 푼이던 쌀값이 20푼까지 치솟는 등 물가가 폭등했다. 당백전의 발행으로 순식간에 20배가 오른 물가로 서울 장안에는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했으나, 그같은 혼란을 통해 조성된 재원을 바탕으로 흥선대원군은 경복궁을 중건할 수 있었다.

2005년에는 171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 국가채무. 결국 경기회복에 따른 과실을 ‘가진 자’들이 향유하는 동안 막대한 재정적자와 그에 따른 인플레이션의 피해는 힘없는 서민들이 감당해야 하는 형국인 것이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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