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아듀 1999] 증시 열풍, '그들만의 잔치' 였다

‘묻지마 투자’, ‘아줌마 부대’, ‘왕대박’, ‘쌍끌이 장세’…

올 한해 전국을 휩쓴 주식투자 열풍과 맞물려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유행어다. 이같은 유행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99년 주식투자 열풍은 과히 광적이었다. 직장인들은 직장에 출근하자마자 인터넷을 통해 시세표를 보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고 일과 시간중에도 상사의 눈을 피해 주식투자에 골몰했다. 한 벤처기업은 회사일을 보면서도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지속적으로 주식시세를 볼 수 있도록 PC한켠에 시세표를 띄어놓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 투자자들의 환영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세상이 시끄러울수록 영웅호걸이 많이 등장하는 것일까. 99년 온 나라가 증시로 들뜨면서 유례없이 많은 영웅들이 증시에 등장했는데 이익치, 김석기, 김형진 등은 그 대표적 인물들이다. 이들 3명은 98년말까지만 해도 지수 300선에서 턱걸이 하던 한국증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칭송과 함께 ‘증시를 투기장’으로 만들었다는 비판도 함께 받고 있다.


‘바이코리아’도 주식시장에 불당겨

우선 ‘바이 코리아’라는 선동적 구호로 증시열풍에 불을 지른 이익치 회장. 컴퓨터의 정교함과 불도저의 추진력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뜻의 ‘컴도저’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이회장의 99년은 한국 증시의 움직임과 궤(軌)를 같이한 한 해였다. 이 회장은 올해 초 IMF체제로 고양된 국민들의 애국심과 정부의 저금리정책을 교묘히 연결시켜 희대의 베스트셀러인 ‘바이코리아 펀드’를 선보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저금리로 은행을 탈출한 시중의 부동자금이 연일 ‘바이 코리아’로 몰려들면서 순식간에 펀드규모가 10조원을 넘어섰다. 연말에는 주가지수가 1,700을, 3년후에는 2,000을 돌파한다는 이회장의 주장은 투자자들의 마음을 한껏 들뜨게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9월1일 이회장이 현대전자 주가조작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면서 종합주가지수가 폭락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증시 전도사’로 통하는 이회장의 운명도 끝이 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한국 증시와 이익치 회장의 생명력은 예상외로 끈질겼다. 800선까지 하락했던 주가지수는 11월에 들어서면서 다시 1,000선을 위협하기 시작했고, 이 회장 역시 11월3일 구치소에서 석방됐다. 11월8일 현대증권에 첫 출근한 이익치 회장은 여전히 “내년에도 주가는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며 ‘증시전도사’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증시의 풍운아 김석기·김형진

김석기 중앙종금 사장과 김형진 세종증권 회장도 99년 활황 증시가 키운 ‘풍운아’들이다. 김사장과 김회장은 맨주먹으로 주식, 채권시장에 뛰어들어 남들이 상상도 못하는 기발한 투자방법으로 수천억원을 벌어들였다. 그리고 이들은 증시에서 벌어들인 자금을 바탕으로 각각 중앙종금과 세종증권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물론 김사장과 김회장은 증시와 채권시장에서 수천억원의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사용했던, 탈법과 편법을 오가는 교묘한 투자방법이 문제가 돼 검찰에 끌려가기도 했다.

한편 99년 하반기에 들어서는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방침과 전세계를 휩쓴 인터넷 열풍으로 코스닥 증권시장이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코스닥이 뜬다’는 말만 듣고, 돈에 혈안이 된 투자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코스닥 시장으로 몰려들면서 졸부들이 속출했다. 박정희 전대통령의 아들인 박지만씨의 경우 그가 대주주로 있는 회사(㈜GE)가 코스닥에 등록, 주가가 폭등하면서 170억원의 평가차익을 남겨 화제가 됐다.


기관·외국인만 배불린 증시

그러나 이익치, 김석기, 김형진, 박지만 등 ‘증시 영웅’들의 등장은 개미군단의 일방적 희생위에 가능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개인들의 경우 광적인 주식투자 열기에도 불구하고 항상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눌려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경제연구원의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개인 투자자들의 평균 주식투자 수익률은 4.6%에 불과했다. 이는 정기예금금리에도 미치지 못하는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더구나 50대 투자자의 경우 9.2%나 손실을 입은 것으로 나타나는 등 화려한 외형에 비해 실속은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99년 한국 증시는 확실히 화려했다. 그러나 그 화려함은 ‘빛 바랜’ 화려함에 불과했다. 일부의 증시영웅들이 ‘돈 잔치’로 한해를 마감하고 있는 반면 대부분의 개인 투자자들은 ‘원금 보전’에 급급할 따름이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chcho@hk.co.kr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카카오
배너
2020년 06월 제2830호
  • 이전 보기 배경
    • 2020년 06월 제2830호
    • 2020년 05월 제2829호
    • 2020년 05월 제2828호
    • 2020년 05월 제2827호
    • 2020년 05월 제2826호
    • 2020년 04월 제2825호
    • 2020년 04월 제2824호
    • 2020년 04월 제2823호
    • 2020년 04월 제2822호
    • 2020년 03월 제2821호
  • 이전 보기 배경
저번주 발행호 다음주 발행호
  • 지면보기
  • 구독안내
  • 광고문의
  • * 지면문의
    전화 : 02-6388-8088
    팩스 : 02-2261-3303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 온라인 광고
    전화 : 02-6388-8019
    팩스 : 02-2261-3303
    메일 : adinfo@hankooki.com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많이 본 기사

주간한국 유튜브 채널

서진의 여행 에세이

삼척 초곡항…파도 넘나드는 기암괴석 해변 삼척 초곡항…파도 넘나드는 기암괴석 해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