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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보통사람들이여 어깨를 펴자"

보통사람들은 새 천년을 별로 희망적으로 느끼지 않는다. 새 천년의 상투적 수사가 된 ‘신인류’‘신지식인’‘정보화 사회’등의 말이 이들에게는 억압으로 와 닿는다. 보통이고 싶은 이들을 ‘보통 이하’로 끌어 내리는 사회적 힘으로 느껴지는 까닭이다. 그래서 새 천년을 맞는 보통사람들은 우울하다.

보통사람은 사회의 기반이다. 중산층과 비슷한 의미를 지니지만, 이보다는 범위가 다소 넓다. 특별하지 못하다는 의미에서 보통사람은 튀지 않고 묵묵히 살아가는 부류다. 낼 세금 꼬박꼬박 내고, 착실히 출퇴근한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도 이들의 주요 특징 중 하나다.

그러나 보통사람 개인의 힘은 미미하지만 전체 보통사람들의 사회적 힘은 크다. 과거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고, IMF 위기 극복에서도 이들이 중추역할을 하고 있다.



보통사람들의 좌절


IMF 2년을 지나오면서 보통사람들을 황폐해 졌다. 앞만 보고 착실히 살았던 이들에게 강요된 변화의 폭이 너무 컸고, 속도가 급했기 때문이다.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면서 ‘착실한 것은 곧 무능력자’로 인식되고 있다. 20대 30대들의 창업과 떼돈을 벌었다는 얘기들에 이들은 퇴물이 되는 느낌을 받는다.

보통사람들의 좌절은 중산층의 좌절과 상통한다.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여겼던 사람들의 상당수가 IMF 이후 하류층으로 전락했다고 느끼고 있다. 99년 초 현대경제연구원이 전국의 기혼남녀 99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일반 가계의 중산층 의식’을 보자. 중산층에서 하류층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19.2%에 달했다. 이들 중 79.2%가 중산층으로 다시 복귀하는데 최소한 3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계층하락의 이유는 소득감소가 50.6%로 가장 많았고, 실직이 12.3%로 뒤를 이었다.

이같은 인식은 통계청이 내놓은 ‘도시근로자 가구의 소득점유율’조사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통계청 조사는 2인 이상 가구(봉급생활자)의 소득수준을 10개 등급으로 나눈 뒤 다시 상위 20%, 중위 40%, 하위 40%로 구분하고 있다. 97년 상위 20%의 평균 월소득은 425만4,800원이었으며 전체 소득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소득점유율’은 37.2%를 기록했다. 99년 3·4분기에는 월소득이 437만9,900원, 소득점유율은 39%가 됐다. IMF를 거치면서 상위 20%의 소득점유율이 1.8% 늘어난 것이다.

중위 40%의 월소득은 같은 기간 234만900원에서 229만7,000으로 약간 줄었다. 소득점유율은 40.9%로 변화가 없었다. 하위 40%는 월소득과 소득점유율이 모두 하락했다. 월소득이 124만9,300원에서 113만2,600원으로 줄었고 소득점유율은 21.9%에서 20.2%로 1.7% 떨어졌다. 결과적으로 하위 40%의 소득하락분이 상위 20%로 이전된 셈이다.

통계청 조사에는 자영업자와 실직자 가구가 제외돼 있다. 따라서 이 조사는 중산층의 ‘체감 지위’와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중위 40%의 소득점유율이 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중산층 19.2%가 하류층으로 전락했다고 느끼는 것은 왜일까. IMF가 중산층의 실질적 지위에 가한 충격보다 의식구조에 가한 충격이 더 컸기 때문이다. 바로 ‘중산층의 불안감과 희망 상실’이다.



중산층의 잃어버린 희망


영남대 사회학과 백승대 교수의 이야기. “IMF로 증대된 사회적 불확실성이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다수 중산층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상향적 계층이동에 대한 열정이 중산층의 중요한 의식형태다. 하지만 고용 불안정 등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착실히 일해 상향적 계층이동을 하는 것은 미련한 일로 여겨진다. 중산층의 좌절에는 희망상실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채창균 박사는 노동시장의 형태 변화에 무게를 두고 접근한다. 실업률이 환란 이전에 비해 2.3배 높은 100만명 이상인 것도 문제지만 고용구조의 변화가 더 심각하다는 이야기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착실한 직장인의 대명사였던 상용직이 94년 713만명에서 99년 603만명으로 110만명 줄었다. 대신 임시직과 일용직은 같은 기간 519만명에서 638만명으로 대폭 증가했다. 최 박사는 이같은 추세는 앞으로 더 심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이같은 중산층의 실질적, 의식적 움츠림이 경제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주된 소비층인 중산층의 쇠퇴는 유효수요 부족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98년 내수위축도 중산층의 내핍이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정치사회적 문제도 크다. 중산층의 위축은 곧 사회안정과 여론선도 계층의 위축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균형추가 제구실을 못하게 되면서 정치과정이 극단화할 수 있다는 우려다.

보통사람들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이 여전히 요구되고 있는데도 보통사람이 침몰하는 것은 모순이다. 그렇다면 보통사람에게는 정말 희망이 없는 것일까. 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 사장의 대답은 “결코 아니다”로 요약된다. 이 사장의 말. “요즘 잘나간다는 사람이 반드시 신지식인은 아니다. 재테크나 투기로 성공한 사람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보통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을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착실한 사람은 성공할수있다

그는 거품을 보고 스스로 비관하거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지금 잘 나가는 분야도 미래는 알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는 보통사람들이 정보통신과 첨단기술이 가속적으로 발전하면서 느끼게 되는 막연한 불안에도 위로를 보낸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이용방법도 그만큼 편리해진다는 것이다.

이 사장은 착실한 보통사람도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모든 산업분야가 고부가 가치화할 수 있다. 업그레이드를 잘하면 소득을 높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기술과 지식을 늘리는 것도 대단한 일로 생각할 이유는 없다. 평소 업무에 좀더 관심을 가지고 아이디어를 개발하면 성공할 수 있다.”

그는 최근의 벤처기업 붐에 대해서도 경계했다. 일부에서 보이는 이른바 ‘화전민(火田民) 문화’행태다. 잘되면 우르르 몰렸다가 안되면 썰물처럼 빠져 버리는 현상이다. 한 우물을 파는 정신이 없으면 부화뇌동하게 되고, 부화뇌동하다보면 실패하기 십상이고, 결국은 상대적 박탈감만 심화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 사장은 그러나 앞으로 각 분야의 경쟁이 격화하면서 보통사람들이 도태될 가능성이 커진 것은 시대적 조류라고 말했다. 도태되는 사람이 변신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문제는 조직이 경쟁에 실패해 퇴출자들이 전혀 생소한 분야를 기웃거려야 할 때다.

그는 “정부가 나서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신규고용을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사회의 기반인 보통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것은 보통사람 자신 만큼이나 국가의 책임이라는 이야기다.

배연해·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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