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과 정치인들도 국민을 웃기는데 일조했다고 하면 정치를 지나치게 비하하고, 희화화한다는 비난이 따른다. 그렇지만 정말 올해도 우리 정치와 정치인들은 국민을 숱하게 웃겨왔다. 비록 그 웃음이 폭소나 미소가 아닌, 냉소와 실소의 연속이었지만….

우선 올해 정치판 유머는 ‘바람시리즈’라고 할 만하다.

지난해말의 ‘환풍’ (외환위기), 올해 정권교체후의 ‘북풍’ (권영해씨 등 안기부의 97년 대선개입 의혹)에 이어 국세청장이 대선자금을 모아주었다는 ‘세풍’, 그리고 몇몇사람이 북한사람들과 만나 ‘판문점 총격사건’ 을 요청했다는 ‘총풍’ 이 그것이다. 바람시리즈의 위력이 대단해서인지 성교육전문가 구성애씨의 ‘아우성’(아름다운 우리들의 성을 위하여)은 정치와는 상관이 없는데도 ‘성풍’이라는 이름이 붙어 유행했다.

정치권 싸움때문에 올 상반기 국회 원구성이 늦어지자 민의의 전당은 ‘식물국회’ 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화가난 시민·사회단체들이 들고 일어나 ‘국회의원 퇴출’ 을 외치는 시위를 벌일 정도로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비난이 극에 달했다. 이 냉소와 비난은 저녁 술자리까지 이어져 정치인들이 ‘안주감’ 으로 씹히곤 했다.

국민들의 냉소를 더욱 짙게 한 것은 바람시리즈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사람들이 반성은 커녕 더 날뛰고 있는 모습이다. 외환위기의 주범들인 정치인과 공무원들은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네탓’ 만 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에서 6,000달러까지 내려왔다면 그 주범들은 스스로 월급을 40%나 내리고 국민들에게 사죄해야 한다. 그런데도 공무원들은 10%의 퇴출은 커녕 체력단련비를 깎는데도 저항하고 있다.

물어 뜯기에 정신없는 ‘바람’ 앞의 정치권

정치권은 더욱 복잡하다. 환란위기에 대한 여야의 책임공방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북풍, 세풍, 총풍에 대한 검찰의 수사진행이나 발표내용으로 봐서는 누가 ‘숫까마귀인지 암까마귀인지’ 국민들을 정말 헷갈리게 하고 있다.

97년 대선때 ‘북풍조작’ 의 책임자인 권영해 전안기부장은 수사도중 연필깎는 칼로 ‘자살’ 을 기도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려 했던 것도 국민들을 썰렁하게 만들었다. 전 국세청장과 국세청 차장이 한나라당 대선자금을 모아준 것은 명백한 ‘위법행위’ 임에도 “개인적인 차원이어서 국세청의 조직적인 개입은 아니다” 라고 피해나간다. 최고책임자들의 행위가 조직의 행위가 아니라니 ‘서천 소도 웃을 일’ 이다.

‘총풍’ 에 와서는 더 할말이 없다. 선거에 도움을 받기위해 북한에게 판문점에서 총격사건을 일으켜 달라고 요청한 것은 분명히 국가사범이다. 그런데 갑자기 수사과정에서의 고문시비에 휘말리더니 ‘안보와 인권’ 의 경중에 대한 공방이 시끄러워지자 여·야가 부담스러웠던지 ‘무승부’ 비슷하게 끝을 흐렸다. 안보는 안보대로 취급하고 인권유린은 그것대로 따져야 하는데도 한데묶어 ‘섞어 찌게’ 를 만들어 국민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다. 청와대가 다시 나서 검찰에 전말을 가리라고 지시하자 여당은 다시 “남의 자식들을 향해 총쏴달라고 해놓고 사과도 않는가” 고 목청을 높였고 야당은 “검찰이 마음대로 죄를 만들어내는 무슨 마법사인가” 고 반박했다. 앞으로 재판과정에서 어느정도의 진실이 드러날 지 알수 없으나 그간 선거때마다 북한의 도발에 국민들의 ‘놀란 가슴’ 은 어디서 위안을 받아야 할지.

가관인 것은 이들이 슬며시 국가위기의 책임을 ‘국민전체’ 에 돌리고 있는 점이다. 환란이나 부정부패는 총체적인 문제이므로 국민모두가 반성해야 한다는 논리다. 얼핏 들으면 ‘공자말씀’ 같다. 이러한 논리에 물든 국민들도 국가부도에 대한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지않고 ‘여야가 똑같다’ 든지 ‘정치가들은 그 놈이 그놈’ 식으로 목청을 높여 한묶음으로 매도한다. 이런 식의 접근은 자칫하면 총체적 정치불신이나 무관심만을 조장할수 있다.

그러나 책임의 순위를 명확히 하지 않고는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없다. 정치권이나 관료들은 이 나라를 이끌어 온 존재들이다. 따라서 국민전체가 고통을 겪고 있는만큼 고통분담을 해야한다. 더이상 이런 냉소보다는 “정치인들 믿을만하다” 는 흐뭇한 미소를 줄 수는 없는지.

남영진·주간한국부 차장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