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쥬리 문의 ‘내가 본 박정희…’

12/22(수) 17:54

‘금세기 대한민국 최고인물’은 누구일까는 세기의 마지막 달에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 월간조선이 그들 편집회의에서 선정한 20명의 최고 한국인을 네티즌에 물은 결과는 좀 당혹스럽다.

10월27일에서 11월14일까지 월간조선 웹페이지에 7,548명이 응답해왔다. 최고의 자리는 웹에 오르기 하루전인 79년 10월26일 피격 절명한 박정희 전대통령이었다. 응답자의 52.1%, 4,090명이 그를 ‘최고인물’로 꼽았다.

2위는 김구 상해 임시정부 주석으로 1,303명(16.6%), 3위는 박 전대통령과 71년 마지막 직선제 대통령직을 겨루고 100여만표 차로 패배한 김대중대통령이었다. 육군소장 박정희가 국군 최고 사령관으로 모셨던 이승만 전대통은 70명이 응답해 12위(0.9%)를 차지했다.

특히 월간 잡지측에 보낸 230여명의 응답자 평가글중 10명중 7명이 박정희 전대통령을 다뤘다. 응답자는 대부분 그의 18년 재임기간중 태어나지도 않앗거나 청소년이었던 10~30대 였다는 점에서 여러가지를 생각케 한다.

이들 네티즌들 평가의 글은 “독재를 했다는 점은 잘못이지만 굶주림에서 나라를 구하고 지금의 경제발전을 이룬 공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로 집약된다. 그러나 이런 10~30대 네티즌과는 전연 다른 시각으로 박 대통령을 보는 눈이 있다. 글이 있다. 책이 있다.

그중 하나가 지난 11월12일에 나온 문명자(유에스 아시안 뉴스 서비스 대표·현역 백악관 출입기자중 고참순위 2위)가 쓴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이라는 책이다. 문기자는 미국언론에는 쥬리 문으로 통한다. 1930년에 태어나 1961년 5·16이 나던 해 워싱톤에 ‘조선일보’초대 특파원으로 갔다고 자필 이력서는 밝히고 있다.

이런 그녀가 박정희(문명자 기자는 책에서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사용 않고 있다. 박 전대통령은 1917년생이며 그녀의 사촌오빠와 대구사범 동기며 같은 경북 태생이다)와 처음 악수를 나눈 것은 1961년 11월13일. 박정희가 케네디를 만나고 주미 대사관에서 열린 만찬회장에서였다.

“박의장님 반갑습니다. 그런데… 색안경을 쓰고 다른 나라 국가원수를 만난 것은 큰 실례인데요. 자신감이 없어서 그렇게 한 것 아닙니까.” “문명자 기자님 이라고 그러셨죠? 고맙습니다. 제가 깜박했습니다. 그렇게 실례가 됩니까?”라는 대화가 두 사람 만남의 시작이었다.

벌써 이날의 만남전에 문기자에게는 워싱턴 내셔널 공항에 내린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 인상은 흐려있었다. “검은색 선글라스를 쓴 깡마르고 까무 잡잡한… 바지선도 세우지 않은 후줄근한 차림으로 서울 온 촌놈같이 잔뜩 경직된 모습”이었다.

문특파원과 박대통령의 두번째 만남은 케네디 장례식에 대통령 당선자로 참석한 63년 11월24일. 그녀는 조문온 대통령을 환영하기위해 동원된 태극기 물결에 눈쌀을 찌푸리며 기사를 보냈다. “61년 11월 최고회의 의장 자격으로 이곳 미국에 와서 정권을 민정으로 이양하고 자신은 군의 본분을 지키겠다고 약속한 그였다. 그런데 그런 약속을 받은 케네디는 저격으로 서거했고 그런 약속을 한 사람은 대통령 당선자로서 그의 장례식 참석차 덜레스공항에 도착한 것이다.”

덜레스공항에서 그녀에게 비쳐진 박대통령은 “한국의 민주주를 군화발로 짓밟은 조그마한 사나이”였다. 그보다 전에 그녀는 63년 10월께 박대통령이 윤보선과 선거전이 한창일 때 미국 CIA 요원이었던 래리 베이커가 “박정희가 북의 밀사 황태성을 반도 호텔에서 세번이나 만났음을 알아내 추방되었다”는 기사를 보낸 조선일보 특파원이었다. 비록 이 기사는 실리지 않았지만.

쥬리 문기자와 박대통령의 세번째 만남은 66년 10월31일 방한한 존슨 미국 대통령을 수행한 후 육영수여사가 마련한 청와대 저녁식사 자리에서 였다. 박 대통령은 “주일대사, 유엔대사는 어떠냐, 경북지사는 해볼 생각없느나”는 소리까지 했다.

그녀는 ‘대통령 각하’라는 말 대신 ‘보이소’, 스요,으요’라고 경상도 사투리로 대통령을 부를 정도로 친숙했다. 그러나 그녀의 이날에 본 박대통령에 대한 결론은 첫 만남에서 진전된 게 없다.

문기자의 그날의 소감은 “수줍음을 타는 성격이면서 대중앞에 서면 박정희의 목소리는 우렁우렁했다. 내성적이며 더할나위 없는 독종. 이것이 내가 관찰한 인간 박정희의 면모였다.”

문 특파원은 3선 개헌에 나서는 박대통령에게 육영수여사가 듣는 속에 ‘죽는 길임’을 전하기도 했다. 73년 8월 김대중씨 납치사건이후 그녀는 미국에 정치망명을 했다. 그후 소위 ‘반한인사’로, 백악관 출입기자로 박동선사건, 코리아게이트, 김형욱의 프레이저위원회 증언 등을 그녀 나름대로 세계에, 한국의 언론에 알렸다.

문기자의 세계는 현재의 10~30대가 책으로 느낀 박정희 시대의 세계와는 다르다. 그녀는 그를 추종하고 배반하고 숭배했던 숫한 인사와 취재기자로서 친숙한 사이로 만났다. 그녀의 책을 내는 박정희 전대통령에 관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와 어두운 면도 많다.

박정희 시대를 21세기에는 역사의 박물관에 보내야만 한다. 그러기에 앞서 쥬리 문의 ‘내가 본 박정희’는 검증을 거쳐 주요 자료가 되어야 할 것이다. [박용배 통일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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