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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1999] 명암 엇갈린 재벌 삼국지

‘끝없는 확장, 처절한 몰락, 수성속의 번영…’

99년을 각각 재계 1, 2, 3위 기업의 총수로 맞았던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불과 1년뒤 위상이다. 정 명예회장은 여든을 넘긴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현대그룹의 운명이 걸려있는 대북사업을 진두에서 지휘하고 있으며, 이 회장은 반도체 등 삼성그룹 주요 업종의 호황으로 훈훈한 연말을 보내고 있다.

반면 김우중 전 대우회장은 ‘국가 경제를 망친 부실 경영자’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채 유럽에서 쓸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렇다면 불과 1년동안 벌어진 재계 총수 3명의 확연히 구별되는 몰락과 번영은 총수 개인의 사생활에 그치는 것일까. 물론 당연히 ‘아니다’가 정답이다. 김 전회장의 몰락과 현대 정명예회장, 삼성 이회장의 승승장구는 지난 30년 한국 기업들이 성장과정에 담겨있는 명암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빚으로 세운 대우왕국의 ‘예고된 몰락’

우선 김우중 전 대우회장의 몰락은 대우처럼 빚으로 외형을 불려온 회사는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줬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김 전회장의 몰락은 시간이 문제였을뿐 결말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던 것이다.

올해 63세인 김우중 회장의 99년 1월은 희망에 차 있었다. 98년 11월15일, 갑작스런 뇌수술(만성 뇌경막혈종)로 서울대 병원에 일주일 가량 입원해 세상을 놀라게 했지만 김 전회장은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의욕넘친 모습으로 99년을 맞았다. 98년 9월 전경련 회장에 공식 취임한 김 전회장은 전직 총리·부총리 등 원로인사 10여명으로 구성된 ‘원로 자문그룹’을 발족시키는 등 전경련과 대우그룹의 일을 동시에 추진해 나갔다.

하지만 ‘행복한 99년’은 99년 상반기로 끝이 났다. 98년말부터 조짐을 보이던 금융권의 자금압박이 6월 들어서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6월말에는 금융권의 하루 상환요구 금액이 2조~3조원을 넘어설 정도였다. 7월19일, 김 전회장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10조원의 담보를 내놓을테니 자금 회수를 자제해 달라’고 정부와 채권단에 SOS를 쳤다. 그리고 10년전 대우조선을 회생시켰을 때와 마찬가지로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으로 달려가 ‘백의종군’의 모습으로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더 이상 옛날 방식이 통하지 않았다. 87년 대우조선을 일으켜 세울때 그를 지켜줬던 권위주의적 정권도 없었고, 이미 IMF의 쓴 맛을 본 금융권도 김 전회장의 충정을 이해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11월22일 유럽에서 보낸 ‘임직원과 대우가족 여러분께 드리는 글’이라는 작별편지와 함께 자신의 표현대로 ‘날개를 접어야’ 했다.

“한없는 미안함을 가슴에 담고 오늘 저는 대우가족 여러분께 마지막 작별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과 함께 했던 꿈과 이상 또한 이제 가눌 수 없는 고독이 돼 제 여생의 반려자로 남게 됐습니다.
구조조정의 긴 터널을 지나오는 동안 빚어진 경영자원의 동원과 배분에 대한 주의소홀, 용인되지 않는 방식으로 접근하려 했던 위기관리 등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초래된 경영상의 판단오류는 지금도 가슴 아프게 느껴집니다…(중략)…대우가 살아온 지난 세월에는 국가와 명예와 미래를 지향하는 꿈이 항상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랑스러웠던 여정은 오늘 국가경제의 짐으로 남게 됐으며 우리의 명예는 날개가 꺾이고 말았습니다”

김 전회장의 ‘슬픈 편지’ 함께 서울역 앞 대우빌딩 25층의 20여평 크기의 회장 집무실도 11월25일 폐쇄됐다. 대우에 남아있던 ‘인간 김우중’의 흔적이 물리적으로도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이제 김 전회장은 분식회계와 그에 관련된 자금유용 문제로 형사처벌이 거론되면서, 귀국을 미룬채 유럽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게다가 그는 지병인 심장질환까지 악화,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건강상태도 좋지 않은 상황이다.



정주영 명예회장 ‘황혼의 전성기’ 구가


반면 정주영 명예회장은 ‘황혼의 전성기’라고 표현할 정도로 바쁜 한 해를 보냈다. 정 명예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은 기아자동차 인수, 대북사업 독점권 확보, 현대반도체 인수 등 굵직굵직한 일들을 성사시켰다.

정 명예회장의 99년은 ‘포스트 정주영’시대의 구도를 확정짓는 것으로 시작했다. 정 명예회장은 3월6일 기아자동차 인수를 계기로 덩치가 불어난 자동차 부문을 장남인 정몽구 회장에게 넘기는 결단을 내렸다. ‘포니 정’으로 불리며 현대자동차의 성장을 주도했던 정세영 현대자동차 명예회장에게는 ‘보상빅딜’차원에서 현대산업개발을 내주었다.

정 명예회장은 기아자동차, 현대반도체 등 ‘국민의 정부’이후 현대가 인수한 기업들의 회생에도 앞장섰다. 그는 3월29일 ‘엔터프라이즈 리무진’을 타고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을 방문, “기아를 지금보다 2배이상 키우고 여러분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차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또 현대가 LG로부터 인수한 현대반도체의 경영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명예회장은 9월28일 자신이 10년넘게 추진해온 대북사업의 완결판을 내놓는다.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의 구속 등 국내외 여론이 악화되는 상황에서도 정 명예회장은 ‘대규모 방북단’을 이끌고 방북, 북한측으로부터 금강산 사업의 30년 독점사업권을 확보하는 한편 2,000만평 규모의 서해안 공단개발에 합의했다. 이같은 눈부신 활약덕분인지 정 명예회장은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지에 ‘20세기 아시아인 10걸’로 선정됐다.

그러나 정 명예회장의 ‘끝없는 확장’이 긍정적인 평가만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금융권 특히 외국 금융기관들을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즉 현대가 주력업종인 자동차 부문에서 외국 주요 메이저 업체와의 제휴에서 한발 뒤쳐져 있으며, 대북사업 역시 아직까지는 성공을 속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 내실 다지며 ‘정중동’

김우중 전회장, 정주영 명예회장과 비교할때 좀체로 언론에 등장하지 않지만, 계열사 사장들에게 권한을 과감히 위양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99년은 많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이 회장은 삼성생명 상장, 삼성자동차 포기 등 일부 분야에서 고전한 것이 사실이지만 4대 그룹중 가장 먼저 부채비율을 200%이하로 낮췄다.

삼성그룹은 또 그룹의 전반적 경영사정이 다른 재벌과 비교할때 가장 양호한 상태이다. 요컨대 ‘문민정부’시절 고집스럽게 자동차 진출을 추진하는 바람에 5조원이 넘는 자금을 탕진했던 이 회장이 경영스타일을 바꾸면서 삼성의 경영사정이 나아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99년 한해동안 한국 경제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몰락에서는 ‘차입경영의 한계’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승승장구에서는 ‘실력있는 기업만이 살아남는다’라는 교훈을 얻은 것이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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