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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1999] "훈장은 받을사람이 받아야 한다"

김영삼 정권 말기에 김숙희 전 문교부장관에게 1등급 청조근정훈장이 수여됐다. 원로작가 황순원씨는 은관문화훈장 수상을 거부했다.

김씨는 당시 국방대학원 특강에서 “6·25전쟁은 동족간의 명분없는 전쟁”이며 “월남파병은 용병으로의 부끄러운 참전”이라는 망언을 해 해직되고 참전군인들로부터 고소까지 당한 문제의 인물이었다. 정부가 그러한 무자격자에게 훈장을 수여한 것도 잘못이지만 그것을 늠름하게 받은 당사자의 작태도 한심하다.

그러나 황씨는 “특별한 이유는 없으나 개인적으로 받기 싫은 것일 뿐”이라는 짤막한 거부 의사를 밝히고 수상을 사양했다.

최근 한국전 참전 용사를 비롯한 서훈자들이 잇따라 훈장을 반납하고 있다. 이는 한마디로 그동안 논공행상으로 남발한 훈장이 그 희소가치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진열장 속의 박제품 취급을 받을 정도로 훈장 인플레 현상이 심해져 국가위신을 크게 추락시킨데 대한 반발이다.

훈장은 받을 만한 사람이 받아야 하고, 또한 훈장이 훈장다워야 그 가치가 있는 법이다. 훈장은 국가권위의 상징이며 명예의 표상일 뿐 아니라 국가가 애국과 충성을 다한 국민에게 내리는 최고의 보상이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훈장 수여는 쇠붙이나 장난감 전달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일 정도로 심각하게 그 본연의 취지가 훼손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훈장은 무궁화대훈장을 비롯해 11종으로 나눠진다. 이중 군인에게 주어지는 무공훈장은 적과 교전하여 전공을 세우거나, 장기근속하여 국가안보에 혁혁한 공을 세운 자를 가려 엄정한 심사와 절차를 거쳐 수여되는데 그 희소가치나 영예는 매우 높다.

태극, 을지, 충무, 화랑, 인헌 순의 훈격으로 돼있는 무공훈장 가운데 태극무공훈장은 당사자의 일대 뿐 아니라 자손만대에 걸친 영광으로 간직될 수 있을 것이다.

건국 이후 태극무공훈장 수상자는 모두 320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한국전쟁과 월남전쟁의 영웅들이다. 하지만 일부 수상자 중에는 적과의 교전현장에 있지 않았던 지휘관들도 의례적으로 포함돼 그 본래의 뜻이 희석되고 있다.

특히 10·26사태 후 국가보전에 공헌했다는 가식된 공적으로 전두환씨가 신군부세력의 수장으로서 스스로에게 태국무공훈장을 수여했다. 비록 그가 반란수괴, 내란목적살인 등의 혐의로 실형을 받고 그후 정치적으로 사면됐다지만 아직 훈장이 치탈되지 않고 있음은 언어도단이다.

여타 무공훈장의 남발도 두드러지고 있다. 98년말 현재 21만2,577명이 무공훈장을 받았다. 이는 한국군의 규모와 역사, 기간에 견주어 볼 때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이다. 세계 도처의 전쟁에서 많은 승전 기록을 가진 미군의 경우 가장 인명피해가 많았던 2차대전에서 최고훈장인 영예훈장(medal of honor)을 탄 사람은 433명에 지나지 않는다. 월남전에서도 239명에 불과했다.

미군이 200년 이상의 역사를 통해 최고무공훈장을 받은 사람은 2,556명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우리는 건군 반세기 동안 단 두번의 전쟁밖에 치르지 않았는데도 태극무공훈장 수상자가 320명이나 된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더욱이 한국전쟁 유공자 163명, 월남전쟁 유공자 16명을 제외한 나머지 141명은 비전투 유공자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훈장은 국가권위의 표상이자 국민의 살신보국에 대한 국가적 시혜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부하는 현실은 국가기강과 질서의 심각한 해이를 드러내는 것이다. 하루 속히 문제점을 바로 잡아야 한다. [이선호·한국군사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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