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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1999] 훈장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

훈장을 수여하는 주체는 국가다. 대통령에게 결정권을 부여한 것은 대통령이 국가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는 수반의 자격과 한시적인 정권을 대표하는 자격을 동시에 갖고 있다. 이 두가지 자격 사이의 경계선은 때때로 모호했다. 그런만큼 훈장도 국가보다는 정권에 대한 공헌에 근거해 수여된 경우가 없지 않았다.

훈장은 아울러 정치·경제적 곡절을 반영한다. 이런 면에서 훈장은 사회변화를 비추는 거울 역할도 한다. 국민의 정부가 출범 1주년을 맞은 지난해는 85년 이후 훈장이 가장 많이 수여됐던 한 해였다. 국민훈장 6,498개와 근정훈장 4,860개가 수여된 것이 큰 몫을 차지했다.

여야 정권교체가 사실상 반세기만에 이뤄진 터라 그동안 외곬 야당인의 길을 걸어온 민주화 운동 인사들에게 국민훈장이 대거 주어졌기 때문이다. 근정훈장이 많이 수여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국난이라는 IMF 비극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구조조정의 와중에 옷을 벗은 장기근속 공무원들에게 무더기로 훈장이 주어졌다.

김영삼 정권의 마지막 각료들은 훈장과 인연이 없었다. 장·차관을 지낸 사람들에게 관례적으로 수여되던 청조근정훈장과 황조근정훈장이 그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IMF금융위기를 초래한 정권의 고위 관료들에 훈장을 주는 것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기 때문일까. 국민의 정부는 앞선 문민정부의 최후 각료들에게 훈장을 유보하고 있다. 환란 책임자로 지목된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를 수훈자에 포함시킬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지 못해 다른 각료들도 미뤄지고 있다고 한다.



정책 들여다볼 수 있는 훈장 종류

국민의 정부에 들어와 장·차관을 지낸 사람들 역시 지금까지 아무도 훈장을 받지 못했다. 퇴임과 함께 훈장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직은 속단할 수 없다. 하지만 옷로비 사건으로 김태정 전 법무장관이 구속돼 문제가 꼬일 가능성이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훈장으로 망신을 당했다. 96년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명예대표(당시 공동대표) 이효재 명예교수가 국민훈장 석류장을 거부한 것. 이 교수는 “5공 인물들과 나란히 훈장을 받을 수 없다”며 훈장을 받지 않았다.

‘역사 바로 세우기’를 외치며 12·12와 5·18을 군부 쿠데타, 광주민주화 운동으로 규정했지만 훈장의 품격을 바로 세우지는 못했다. 유죄선고를 받아 훈장치탈 요건을 갖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등의 훈장을 몰수하지 않는 바람에 강력한 비난을 받았다. YS는 또 94년 국군의 날을 맞아 하나회, 율곡비리 관련자 등에게도 훈장을 수여해 군내부까지 헷갈리게 했다.

훈장과 관련해 체면을 손상당한 것은 국민의 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월간 사상계 발행인이었던 고 장준하씨에 대한 훈장 등급 번복사건이다. 정부가 은관문화훈장을 추서키로 했다가 유족들이 반발하자 금관으로 격을 높여 스스로 훈장의 품위를 떨어뜨린 것이다.

훈장은 또 정책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창구 노릇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체육훈장과 새마을훈장이다. 체육훈장은 86년에 462개, 88년 371개가 수여돼 다른 해에 비해 현격히 많다.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했던 86 아시안게임, 88 서울 올림픽 개최의 성공을 반영한 것이다. 새마을 훈장은 박정희 정권부터 85년까지 1,933개가 수여됐지만 그후 13년간은 755개에 머물렀다. 박정희 정권이 새마을 운동에 걸었던 관심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배연해·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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