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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탐구] 신지식인으로 선정된 우편 집배원 장형현씨

우편집배원 장형현(54·여의도우체국)씨는 요즘 자랑할 게 참 많다. 만나자마자 첫 인사도 “신문에 내 기사 난 것 읽어보았나, 모 회사 사보에 내 얘기실린 것 봤느냐, 모 케이블 방송에도 얼마전 나갔다”였고 그의 집으로 가고자 차에 올랐을 때도 최근 근정포장 받은 얘기, 초청강연을 받아 지방까지 방문한 이야기를 들려주느라 자칫 그의 집으로 드는 골목을 놓칠뻔까지 했다.


5년동안 컴퓨터와 씨름, 집배정밀지도 CD롬 제작

일종의 사전 브리핑이었을까. 집에 들어섰을 때도 마찬가지. 곧장 컴퓨터가 있는 방으로 직행, 연신 마우스를 움직여가며 나이 50에 ‘울면서’ 만들었다는 역작, CD롬 수록 ‘집배 정밀지도’를 보여주었다.

바로 지난해 그가 신지식인으로 선정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작품이기도 하다. 바탕화면부터가 김대중 대통령과 악수를 하는 장면. 음악도 꽤 신경썼다. ‘아저씨 아저씨 우체부아저씨’로 시작되는, 거의 체신청 로고송 같은 동요에다 코리아나의 신곡까지 멋지게 입혔다. 이 CD롬은 주로 우체국의 신참 집배원들을 교육하거나 기타 관공서등의 참고자료용 용도로 쓰이는 것들.

무엇보다 초등학교 졸업이라는 빈약한 학력에 종일 우편집배업무로 인한 피로도 불사하고 5년동안 영어일색의 컴퓨터를 상대로 얼마나 대단한 싸움을 벌여야 했을지, 화면마다 그가 흘렸을 땀과 시간이 역력히 보이는 작품이다.

“우리 집사람은 나더러 당신같이 이상한 사람도 없을거라고 해요. 맨날 밤늦게 집에 들어와서도 컴퓨터만 쳐다보고 살았으니까요. 한번은 ‘당신은 컴퓨터를 더 사랑하느냐, 가족을 더 사랑하느냐’고 심각하게 말한적도 있지요. 제 대답이요? 아뭇 소리 안했어요. 나는 그것도 좋은 뜻으로 하는 소리인줄 알고 넘겨버렸지요. 이걸 하느라 텔레비전 뉴스 한번 보지도 못하고, 사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것도 모르고 살아요.”

방안을 점거한 두 대의 컴퓨터와 스캐너, 프린터, 다소 어설프게 쌓인 주변의 컴퓨터 관련 CD들. 한 벽면에는 91년에 만든 보석글 1.5판 ‘초기작’ 지도도 기념비처럼 걸려있다. 역시 장씨가 25년간 붙박이처럼 지켜온 신길동 일대 약도다.

그에 비하면 그가 최근에 완성한 정밀 집배지도는 실로 대단한 약진이다. 말그대로 정밀하고 친절한 이 영상지도의 화면을 열면 빨간 모자를 둘러쓴 집배원 표시가 각 집의 호수가 꼼꼼이 표시된 동네 골목길을 구석구석 빠짐없이 옮겨다니며 집배에 편한 순로를 보여준다.

현재 그가 완성한 것은 자신이 맡은 구역 총 17코스의 1,700여 가구. 숫자나 평면그림지도의 밋밋함을 보완하려 직접 사진을 찍어 만든 슬라이드나 동영상까지 가미해 입체적인 효과도 즐길 수 있다.


집배원생활 25년째, 할일많고 보람큰직업

집배원생활만 25년째. 재직중 모범공무원으로 받은 표창만도 약 30회에 이르는 그는 작년 12월에도 체신정보상을 받는 외에 신지식인으로 선정되는 영예까지 안았다. 또 이달에는 행정자치부에서 주는 근정포장을 수상, 두루 상복이 터졌다.

“신지식인이라고는 하지만, 앞으로 정말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습니다. 신지식인으로 알려진 다른 분들을 보니 다들 저보다 훨씬 공부도 많이 하고, 유명한 분도 많고, 상대적으로 제게 부족한 점이 느껴지더라구요. 나름대로 열심히 제 길을 걸어오긴 했지만, 아직도 한참 더 공부할 게 많구나, 더 절실히 느끼게 됐지요.”

집배원 이상의 직업도, 이하의 직업도 생각해본 일이 없는 그다. 74년 임시직으로 발을 들여놓은 이후 그는 평생 집배원 일만을 천직으로 알고 한 눈 한번 팔지 않고 살아왔다. 따분하고 지겨울 틈도 없다.

우편물 배달을 하다가도 동네 하수도가 터진 걸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해 직접 구청에 민원을 올려 고쳐놓기도 하고, 홀로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심부름을 하거나, 워낙 동네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터라 지역의 각종 상 수상자를 선정할 때마다 자신이 아는 사람들을 추천하기도 하는 등, 그에겐 여간 할 일도 많고 보람이 큰 직업이 아니다.

일과는 새벽부터 시작된다. 새벽 6시반에 집을 나서 7시쯤 여의도우체국에 도착하면 바로 우편물 구분작업에 들어간다. 그러다보면 금새 11시. 곧바로 가방을 둘러메고 신길동으로 향한다. 평소같으면 하루 평균 1,700통쯤 배달하면 충분하지만 요즘같은 연말이면 3,000통이 기본이다.

따져보면 평균 1분에 1통씩 꼬박 저녁까지 돌려야 밤 9시 퇴근이라도 대충 맞출 수 있는 셈. 연말엔 아예 일요일도 없다. 하루 몇시간이 걸리든 아침에 들고 나온 우편물은 전량 배달해야 비로소 해방되는 것이다.

운동도 이런 운동이 없다. 그 흔한 빨간 오토바이도 한번 가져보지 않은 그는 하루 24㎞정도를 걸어 다닌다. 바쁘면 끼니도 빵과 우유로 떼우기가 예사. 살이 찔 새가 없다. 감기몸살이 들어도 집에 드러눕기보다는 오히려 일하러 나가는 편이 훨씬 회복이 빠를만큼 몸이며 정신이 이미 집배원으로서의 생활리듬에 완벽히 길들어져 있다.


휴일마다 동네 누비며 손으로 약도그려

처음엔 그도 동네 지리가 눈에 익지 않아 휴일인 일요일마다 따로 돌아다니며 직접 손으로 약도를 그려 모으기도 했다. 그렇게 만든 몇권의 노트가 지금까지 요긴한 기본자료가 된 셈.

그렇게 신길동 붙박이 터줏대감으로 자리해오는 동안 울고 웃은 기억도 다양하다. 아직도 가슴속에 생생한 어느 가슴 아팠던 사연.

“군대로 부쳐졌다가 반송된 책이 있어서 그걸 돌려주러 한 집에 갔는데, 그 집 할머니가 되돌아 온 책을 보자마자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시는 겁니다. 알고보니 얼마전 군대에 간 손자에게 책을 부쳤는데 바로 그 얼마뒤 그 손자가 복무중 사망했다는 통보를 받은 거지요.

결국 손자가 사망자가 됐으니 다시 반송된 책을 보고 ‘이 책도 못 보고 아이가 죽었다’며 어찌나 구슬프게 우시는지, 저까지 마음이 아파서 원래 받아야 될 반송우편요금도 차마 못 받고 그냥 나왔습니다. 우편배달하다보면 이런 일 숱하게 겪지요. 좋은 일도 많지만, 그런 슬픈 소식을 전할 때 가장 마음이 아픕니다.”

워낙 지리에 밝다보니 본의 아닌 동네가이드 역할도 숱하게 맡는다. 일전에도 ‘신길동 모 미장원 아무개’이라고만 달랑 적힌 종이를 들고 엉뚱한 동네에서 길을 헤매던 한 시골 할머니를 만났다. 마침 다른 집배원에게 사정이 있어 대신 그의 구역을 봐주던 중이던 그를 할머니가 발견한 것. 이름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공교롭게도 자신의 구역안에 사는 사람임이 생각나 앞장 서 길을 찾아주었고, 다음날 그 가족으로부터 열렬한 감사의 인사를 들었던 장씨다.

하긴 옛날에도 그같은 일은 많았다. 예전엔 대개 그 할머니처럼 ‘남산 김서방’식으로 편지를 쓰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때문에 편지 한 통을 배달하는데도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목청껏 소리를 질러 주인 이름을 부른 적도 많다. 세월이 지난 요즘은 그 대신 또다른 골칫거리가 있다. 수취인 부재 문제.

특히 맞벌이 가정이 많은 탓에 낮엔 빈 집이 태반이다. 그럴땐 쪽지라도 남겨놓고 온다. 우편물이 와 있으니 나중에 연락하라며 장씨는 작은 도착통지서 종이에다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적어둔다.

그렇게 하루종일 돌아다니며 우편물 가방을 모두 비우고 나면 대략 오후6시. 다시 우체국으로 돌아가 다음날 작업을 위한 준비를 하고나면 대략 밤 10시쯤에서야 일에서 풀려난다. 연말이면 밤 11시, 혹은 새벽 1~2시에 끝날 때도 적지 않다. 그제서야 귀가, 하루가 빠듯하다.


뒤늦게 배운 컴퓨터, 이젠 ‘도사급’으로 발전

그리고 이때부터 장씨의 특별한 ‘이중생활’이 시작된다. 컴퓨터 집배원으로 소문난 그는 정밀영상집배지도외에도 자신의 홈페이지(http://user.chollian.net/~tgwp)를 개설, 인터넷 고객관리도 시작했다.

처음 컴퓨터를 만지게 된 것이 91년. 큰 아들에게 286컴퓨터를 사주면서 호기심 삼아 자판을 두드려 본 게 시작이다. ‘ㄲ’과 ‘ㅒ’를 쓰기위해선 반드시 shift 키를 눌러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데도 한참이나 걸렸던 그는 결국 맏아들로부터 어렵게 보석글을 배웠다. 그리고 그것으로 당장 신길동 약도부터그리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치명적인 장애는 영어문제. 짧은 학력에다 이미 나이 50줄에 접어든 그는 영어 알파벳조차 능숙하지 않았던 상태. 간단한 단어 하나를 몰라 같은 일을 사흘동안 되풀이 해 본 일도 있고, 영어 때문에 울기도 많이 울었다. 젊은 사람들이라면 단 한달 안에 끝내고 말 일을 그는 다섯달, 여섯달이 걸려서야 간신히 마쳤다.

이미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한 신길동 바닥을 단순히 컴퓨터로 옮기는 작업만 하는데도 말이다. 지도제작에 5년이나 걸린 것도 그런 사정 때문이다. 그래도 그 힘겹고 지루했을 작업을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그는 응당 신지식인 대우를 받을만 한 것이다.

“이제는 포토샵, 프리미어, 그래픽워크샵 등 웬만한 건 다 압니다. 그간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하는데 쏟아부은 돈만 그랜저 두 대 값이 넘습니다. 모르는게 있어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나보다 나이가 어린 우체국 공익요원이나 주변의 컴퓨터를 아는 사람들, 전문가들을 찾아 귀찮을 만큼 수시로 묻고 직접 책도 찾아 공부하며 그저 열심히 하다보니 결국 통하게 되더군요.

이제는 컴퓨터 안에 쓰이는 영어도 웬만한 건 다 압니다. 사실 아들 둘 다 군에 입대한 상태라서 누가 옆에서 도와줄 사람도 없지만, 이젠 걔들 없어도 끄떡없습니다. 오히려 얘들이 제대하면 제가 가르쳐줘야됩니다. 걔들이 모르는 그래픽을 나는 벌써 할 줄 알거든요.”


신지식인 자부심 대단, 연하장제작에 열성

요즘은 자신의 연하장을 만드느라 ‘제작의 산고’를 겪는 중이다. 고객관리에다 신지식인으로서의 인사차 연하장을 보내야 할 곳이 약 200군데. 밤마다 그 카드디자인 연구에 장씨는 또 밤을 새고 있다.

그가 얼마나 소박하면서도 욕심이 있는 사람인지 그가 만드는 연하장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온갖 문자와 그림들로 빽빽히 들어차 여백이 빠듯한 카드. ‘포스트맨은 정보를 타고 온다’는 문구를 필두로 우체국 로고와 새천년 홍보문안, 자신의 이름 아래 사진도 넉넉히 두 장이나 실어두었다. 생각같아선 정부가 추진하는 ‘제2의 건국’ 관련 표어도 넣고 싶고, 평소 광고지를 모으며 눈여겨 봐둔 예쁜 그림들도 한켠에 장식하고 싶어하는 그다.

그렇듯 자신이 받은 상장이며 CD롬, 연하장 등을 열심히 설명해주던 그가 언제부턴가 자꾸 시계를 흘끔거리기 시작한다. 좌불안석의 장씨. ‘오늘 또 늦겠네.’ 사실상 배달을 하다말고 달려온 장씨다.

알고보니 맡은 양의 채 절반도 마치지 못한 상태였다. 더 붙들고 있다가는 정말 철야 우편배달을 시킬 것 같아 슬슬 자리를 정리할 수 밖에 없었다. 마감하는 순간까지도 “2000년대는 놀라운 정보통신시대가 개막될 것”이라며 마치 정통부 홍보직원처럼 열심히 말하던 장씨. 그는 떠나는 길에 자신이 만들고 있는 연하장 표본들을 몇가지 쥐어주었다. 속지에 담긴 그의 인사말. 평범하긴 하지만 그에겐 금세기에 만들어 낸 마지막 송년작품이다.

주간한국으로서도 1999년 마지막으로 만난 행복한 집배원 장씨의 마음을 독자들에게 그대로 돌려드리는게 좋을 듯 싶다. “다가오는 경진년에도 원대한 소망 이루시고 가정에 행복과 건강이 늘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새천년 새아침, 여의도 우체국 신지식인 장형현 배상 ”

정영주·자유기고가 김명원·사진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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