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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21세기로 가는 편지들

2000년 새 천년, 21세기 새 세기를 맞으며, 편지, 편지쓰기에 대해 생각해 본다. 편지쓰기, 편지는 1999년이 끝나도 최소한 사랑을 전하는 인류의 수단으로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며 현직 언론인인 쾨사 그룬월드와 스티븐 애들러 부부는 지난 11월 ‘세기의 편지들-미국:1900-1999’라는 서간집을 발간했다. 그들은 서간집을 발간하면서 “역사라는 것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같구나 하는 느낌을 가질 때 편지는 역사의 목소리다”고 말했다. 463편의 편지가 담긴 이 서간집에는 보통시민에서 대통령까지 역사를 직접 본 이들이 느낀 ‘즉각(卽刻)의 목소리와 눈’이 있다.

노벨상 수상작가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스코트 피치게럴드(‘위대한 개스비’의 작가)에게 보낸 편지에서 “편지쓰기는 번잡한 일상의 일들로부터 탈피시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감정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1939년 아인스타인 박사는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원자폭탄의 위해성을 알리는 편지를 보냈다. 루즈벨트는 1941년 12월 6일, 진주만 침략직전 일본 히로히토천황에게 일본의 호전적 활동을 중지할 것을 바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그는 아내에게 말했다. “‘인간의 아들’이 ‘천신의 아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를 방금 보냈소.”

이 서간집에는 역사의 현장에서 느낀 당사자들의 역사에 대한 평가가 있다. 또한 위기에 처한 인간의 구원의 수단이 편지쓰기임을 보여준다. 남태평양에서 P·T정이 피격되어 어느 무인도에 상륙했던 케네디는 야자열매 껍데기에 구조를 바라는 편지를 써 바다에 띄웠다.

케네디는 61년 대통령이 되어 우주계획을 맡고 있는 존슨 부통령에게 메모형 편지를 보냈다. “우리는 소련을 두드려 팰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없는가? 우리는 소련을 이길 수 있는 극적인 다른 우주계획을 가질 수 없는가?”고 물었다.

짤막한 편지속에서 경구와 금언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역사의 목소리’를 한데 모은 서간집에는 우리가 팔짱을 끼고 어깨너머로 보았던 최근의, 20세기 역사의 고통과 참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한글로 쓴 두개의 서간집이다. 그중 하나가 ‘김대중 옥중서신-민족의 한을 안고’(84년, 청사출판)다. 또 하나는 그의 부인의 ‘이희호의 내일을 위한 기도’(98년, 여성신문사)다.

김대중 대통령의 편지들은 ‘존경하고 사랑하는 당신에게’로 시작되는 연애편지 같지만 전연 다르다. 한달에 한장의 편지지가 주어지는 교도소에서 쌀알반만한 글씨로 1장에 1만4,000자를 아로새긴 이 편지는 확대경을 통해야 제대로 볼 수 있다. 한번 쓰는데 12~13시간 걸렸다.

이 편지들은 ‘민족의 한을 안고’이를 풀기위한 정치 계몽서다. 그의 종교, 정치, 경제, 역사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이 있다. 차입된 책의 목록, 자식들에게 권한 책들의 이름 만으로도 이 서간집은 볼만하다.

그의 편지의 첫 서두인 ‘존경하고’는 편지의 내용이 지극히 이념적이고 종교적이요, 신념에 가득찼음을 뜻한다. 두번째 서두인 ‘사랑하는 당신에게’에는 부부애, 자식사랑, 손자에 대한 귀여움이 있다. 편지는 1980년 11월21일시작되어 82년 12월5일 제24신으로 끝난다.

이희호 여사의 편지모음 책은 80년 11월 21일 밤에 시작되어 81년 12월 31일 끝난다. 그녀의 편지는 엽서에 매일 적어 보낸 것이다. 그래서 짧다. 조그마한 엽서속에 무엇보다 사람을, 주님의 섬김을, 의(義)를 담고 있다. 김대통령은 감옥에 있던 2년동안 이여사가 매일 편지를 보내 640통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이여사는 편지의 서두를 ‘사랑하는 당신’대신에 ‘존경하는 당신’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존경하는’에는 남편의 정치신념이나 철학에 대한 존경은 아닌 것 처럼 느껴진다. ‘사랑하는’를 ‘존경하는’으로 바꿨을 뿐이다. 이여사는 사랑을 주기위해 편지를 썼기 때문이다.

고속버스를 타고 청주교도소로 차입을 하러가는 81년 3월 18일에 쓴 편지. 차장의 거친 목소리, 버스 운전사의 난폭 운행에 그녀는 이렇게 봤다.

“우리 사회는 사랑이 메말라 있는 삭막한 사회임을 느끼게 됩니다. 사랑과 의(義)가 강처럼 흐르는 사회, 거짓이 없는 그런 곳이 우리가 사는 곳이 되기를 빕니다.”

그녀 남편의 구속 1주년인 81년 5월 17일의 편지. “어느 누구도 다 사랑으로 얼싸안고 감싸주며 뜨겁게, 뜨겁게 마음과 마음을 맞대고 털어 놓을 수 있기를 얼마나 바라는지 모릅니다. 눈물도, 한숨도, 원망도, 미움도, 고통도, 아픔도, 외로움도 다함께 멀리 사라지고 뜨거운 사랑만이 기쁨과 희망을 안겨 주었으면 합니다. ”

20세기 편지들은 새 천년, 새 세기가 ‘사랑할줄 알고 도와줄줄 알며 겸손하게 서로를 섬기며 살아가는 인간사회의 참모습’이 드러나는 세기가 되기를 전하고 있다. 또한 20세기에 못다한 사랑의 편지를 쓰는 즐거움을 21세기의 교훈으로 연결시켜 주고 있다. [박용배 통일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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