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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탐구] 신정원 명지전문대 교수 영어교육으로 화려한 조명

“신정원 괄호 열고 나이 얼마, 이거 쓰려고 그러는거지요? 에이, 그냥 나이 안 쓰고 넘어가면 안되나요? 안 그럼 다 탄로나는데…”

눈치 빠른 그녀는 기어코 나이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녀말대로 ‘신정원 괄호 열고 얼마’는 이번에 없다. 사실 그녀에겐 불필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그녀는 도리어 나이를 거꾸로 먹어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독특한 강의 스타일과 화술로 오랫동안 TV와 신문, 강단에서 주목을 받아온 명지전문대 영어과교수 신정원. 이화여대 언어교육원 강사 생활 9년만에 이곳으로 적을 옮긴 뒤 현재도 EBS 영어강좌와 몇몇 신문의 연재칼럼, 그리고 학교를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는 일이 워낙 많아 그렇잖아도 작고 여린 체구에 식사를 건너뛰기도 예사. 그러면서도 갈수록 더 젊고, 더 행복한 표정은 어디서 나오는걸까?

“아마 제 속에 있는 것들이 그대로 배어나와서 그렇게 보이는게 아닌가 싶어요. 저는 제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가 참 높습니다. 그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항상 열심히 일했고, 또 그렇게 열심히 사는 만큼 늘 자신감이 있지요.

이제까지 단 한번도 제 미래나 제 능력에 대해서 불안해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그런 의욕이나 자신감 때문에 제가 항상 활기차고 행복한 사람으로 보이나 봅니다. 얼마전엔 한 친구에게 처음으로 저의 힘든 얘기를 털어 놓았었는데 듣던 친구가 ‘어머, 너랑 너무 안 어울린다,얘!’라고만 하는 거예요. 이젠 어디가서 힘든 내색도 못할 것 같습니다.”

아프다가도 강의실만 들어서면 ‘펄펄’

교수라곤 하지만 근엄과는 거리가 먼 교수다. 반내숭파에 잔정도 많은 그녀는 대외적인 지명도와는 상관없이 학생들에겐 영어 잘 하는 이웃집 누나같은 존재. 그녀의 목표부터가 ‘영어정복’이 아닌 ‘영어와 친하기’다. 강의실에 들어서서도 그녀의 분방한 기질은 금새 발동한다.

학생들과 분단선처럼 놓인 교탁 앞은 도무지 갑갑해 오래 서있지 못한다. 모인 인원이 열명이든 백명이 든 강의실에만 들어서면 일단 학생들 틈으로 파고드는 ‘강림형’. 수업조차 강의반, 웃음반이다. 공부에 도움만 된다면 자신의 비밀이든 뭐든 미주알고주알 다 털어줘버린다.

그 때문에 매 학기가 끝날 때면 연애편지 같은 제자들의 편지가 수두룩 답지. 아무래도 신교수는 학교에서 더 젊어지는 것 같다. 그녀를 직접 픽업했던 이 학교 이사장은 언젠가 그녀의 수업을 지켜본 뒤 ‘신이 들린 것 같다’고까지 말했다던가.

“수업만 시작되면 완전히 몰입돼서 다른 생각이 아무것도 안 나요. 거의 최면에 걸린 것 같다고 할까요. 지난 석달동안에도 너무 심하게 아파서 출근도 간신히 할 정도였는데, 신기한건 막상 강의실 문만 열고 들어서면 순간적으로 정신이 바짝 드는게 저도 모르는 힘이 솟는거예요. 출석 부를 때부터 서서히 기운이 솟기 시작해서 강의가 시작되면 완전히 말짱해진채 살아났다가 다 끝나고 교실문만 딱 닫고 나서면 그때 다시 ‘휴’ 싶은게 몸이 다시 으슬으슬 아프기 시작하지요.”

그러나 만만한 선생님으로 알다간 ‘다치기’ 십상이다. 평소 정많고 자상하기로 소문난 그녀지만, 한편으론 깐깐하고 학점 짜다는, 치명적인 함정이 있다. 진을 빼가며 가르친 수업이니만큼 평가에도 에누리가 없다는 것. 수시로 결석하고도 시험때 벼락공부로 떼우려 들거나 컨닝을 시도하려는 학생들은 어김없는 낙제대상 1호다.

시험문제부터 그 내용중 5분의2는 수업을 들어야만 알 수 있는 교재외 내용으로 불성실파를 철저히 견제. 특히 한국 대학생들의 공공연한 관행처럼 행해지는 컨닝은 그녀가 ‘범죄’ 취급하는 종목이다. 당연히 학생들에겐 언감생심이다. 웬만하면 동정심에서라도 D학점은 족히 주었을 3학기 연속 단골결석의 낙제생에게조차 가차없이 F학점을 주었던 일도 학생들 사이엔 잘 알려진 ‘성적괴담’.

학생들엔 이웃집 누나같지만 세아들에게는 엄격

학교 일보랴 집안 살림하랴, 가뜩이나 약한 몸에다 완벽주의가 아닌 자칭 완벽추구주의자로 매사 깔끔한 성미인 그는 무엇보다 끝없이 쌓이는 집안일이 가장 큰 스트레스다. 처음엔 파출부를 불러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마저 그녀의 성격 때문에 오래가지 못했다. 완벽추구자인 그녀가 파출부를 피곤하게 했냐고? 그 반대다. 도무지 ‘사모님’흉내를 내기 싫은 그녀가 그 특유의 붙임성을 보이며 가족처럼 대하자 파출부들이 정말 한가족처럼 게을러져버린 것이다.

개인적으론 싫은 소리도 잘 못해 다른 핑계로 내보낸 뒤에도 속도 모르는 그 아주머니들만 계속 일하고 싶다며 바리바리 전화를 걸어올 정도.

그러나 가정교육에 있어선 그만큼 엄한 모성도 드물다. 중3, 중2, 초등 6학년생 등 아들 3형제를 둔 그는 오히려 보수적인 엄마에 가깝다. 아무리 사랑스런 아들들이라도 그들의 방청소 한번 대신해 준 적이 없다. 무엇이든 스스로 해결하도록 철저히 내버려둔다. 1년 인상폭이 고작 1,000원인 용돈도 큰아들부터 1주일당 각각 6,000원, 5,000원, 4,000원이 정액. ‘돈 잘버는 인색한 엄마’ 소리를 들어도 할 수 없다.

언젠가 한 아들의 자모회의에 참석했을땐 이런 일도 있다. ‘자식들에게 한술이라도 더 많은 밥을 주기위해 자신의 밥공기 속엔 다른 그릇을 미리 엎어두고 윗부분만 살짝 밥을 얹은 한 희생적인 어머니’의 헌신담을 보여주며 소감을 적으라는 학교측 주문을 듣고 돌아와 밤새 장장 10쪽이나 되는 감상문을 그녀가 적어낸 것이다.

내용인즉 ‘그런 헌신이 오히려 자녀들로 하여금 그들의 어머니는 평생 아무렇게나 먹어도 되고 힘들게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자기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인간으로 살도록 만들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부모의 무조건적인 보호와 희생이 오히려 자녀의 타인에 대한 배려를 눈 멀게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변함없는 생각. 바로 그 원칙에 따라 자신의 세 아들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자칫 이를 두고 그녀를 유난스런 페미니스트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사실은 그 반대다. 현재 그녀는 어머니 노릇외에 가장노릇까지 떠맡고 있다. 3년전인 96년 7월 위암과 직장암으로 남편을 잃으면서 그녀는 그사이 많은 혼란과 생각의 변화를 겪었다.

남편의 투병과 사별, 가장 고통스러웠던 기간

“그전엔 여자가 남자만큼 배우지 않은 것도 아니고, 저나 나나 다를게 뭐 있냐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직접 가장이 되고보니 그게 아니더라구요. 물론 헌법이 주는 남녀의 권리는 당연히 같아야하지만, 궁극적으로 남녀는 두 종류의 다른 인간이더군요. 저도 결국은 남편이 있었기에, 남편의 울타리속에서 살아온 것이었습니다. 그의 위치에 대신 서고보니 남편의 위치란게 얼마나 힘든건가, 생전의 그의 행동이나 고충을 다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남편의 암선고후 6개월간의 투병기간은 그녀가 세상에서 겪은 가장 지루하고도 고통스런 시간이었다. 아니 너무도 엄청난 충격에 정신이 멍한 상태라 처음엔 고통이랄 것도 없었다. 진짜 힘든건 남편이 떠난 뒤 2년간 서서히, 날카롭게 찾아왔다.

그것이 작년 여름까지의 일이었다. 그 힘겨운 터널을 지나는 동안 가장 힘이 되었던 것이 학교의 수업. 앞서 말한대로 그 시간만큼은 그녀의 온 세포가 수업 한가지만 집중하도록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가지 ‘This too shall pass’(이것 또한 (언젠가는) 지나가리라)라는 말이었다. 어떤 시련이 닥치든 내내 그대로만 머물지 않으리라는 것은 얼마나 큰위안인가. 인생의 가장 큰 슬픔을 일찍 치른 그녀는 한편 이러한 말도 들려준다.

“하느님이 뭔가 사람들에게 고통을 줄 때, 계속 이 길로 나가야되는데 갑자기 그 문이 딱 닫혀버렸을 때, 그건 그 사람이 갈 길이 그 길이 아니기 때문일겁니다. 그가 가야할 곳은 그 문이 아니라 대신 다른 문이 기다리고 있는 것 뿐이지요. 당장이 아니더라도 조금만 더 기다리면 또 다른 문이 열릴겁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요즘은 중학교 2학년생인 둘째가 사춘기 시위중이라 고민이다. 하루가 다르게 훌쩍 자라는 아들들. 벌써부터 엄마의 힘만으론 감당할 수 없는 벽을 느끼고 있다. 얼마전엔 한 패스트푸드점에 갔다가 아들로부터 핀잔을 듣기도 했다. 가만히 듣고보니 자신이 어린시절 부모님들에게 투덜댔던 바로 그 소리였다. 그리고 또한번의 충격을 받았다.

새바람 일으킨 ‘신정원식 생활영어’

“평소엔 같이 손을 잡고 다니던 아들녀석이 이젠 창피하다고 어느샌가 제 손도 뿌리치고 혼자 가더라구요. 어떤 아이들이 들어오길래 쟤들 네 친구들아니냐고 말했더니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런다고 핀잔을 주는거예요.

그날 제가 느낀게 뭔지 아세요? 아! 이젠 정말 내가 내 인생을 살아야 될 때가 됐나보다. 자식들이란 결국 이렇게 떠나갈 애들이구나. 이렇게 서서히 부모곁을 떠나가는 발돋움을 하는거구나. 그때 가슴에 콱 박히더라구요.”

그녀도 그렇게 떠나왔을까? 서울이 고향인 그녀 역시 6녀1남중 총명한 네째딸로 부모님의 귀여움을 받고 자랐다. 공부도 잘했고, 어린시절엔 ‘상록수’니 ‘잔다르크’를 읽다말고 ‘그래! 이게 나야!’를 외치며 짐짓 구국의 운명을 걸머진 듯 애국심에 불타오르던 엉뚱한 소녀이기도 했다.

중학교때 미국으로 유학, 한때 미특허청장을 지낸 바 있는 유명정치가 큰언니 신디 도브 여사(한국명 신신자)의 집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수학과 기계공학 박사학위까지 마친 뒤 결혼을 하면서 귀국, 교수가 되겠다던 꿈도 잠시 접었다.

그리고 첫 아이를 낳고 둘째 아이를 가진 상황에서 이화여대 영어강사 채용공고를 보고 응시. 임신 8개월의 만삭의 몸으로도 당당히 합격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남다른 자부심과 열성을 보이면서 ‘최고로 성공한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 없어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했음은 자신한다’는 그녀.

사실상 독특한 스타일의 신정원식 생활영어가 나오면서 기존의 경직된 관용숙어 일색이던 동일성격의 칼럼이나 강좌들이 일제히 새 바람을 탄 것이나, 한동안 ‘오락채널도 아닌 교육방송에서 어떻게 스타가 나올수 있냐’는 감탄까지 들으며 인기강사로 화려한 조명을 받았던 그녀다. 그럼 이제 올만큼 다 온걸까?

“아직도 내 인생은 이게 전부가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인생에서 꼭 해야 할 어떤 일인가가 따로 있는 것 같아요. 뭔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직도 그건 나오지 않은 것 같아요. 아직두요.”

욕심이 많다고 말하려다 문득 그녀의 얼굴을 보니 자못 비장해보인다. 행여 어렸을적에 감지했다는 ‘구국의 사명’을 말하는건 아닐까? 이번 방학땐 3년반만에 처음으로 미국에 있는 친정에 다녀올거라는 그녀는 하루종일 서점에서 살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들뜨는 모양이었다. 헤어질 무렵, 한마디 더 물어봤다.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하세요?”“아뇨. 완전히 여려터졌다니깐요.” 정말 그녀의 나이는 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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