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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1999] 성, 어둠을 걷어내다

영국 작가 DH 로렌스가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완성한 것은 1928년. 지금부터 71년 전이다. 이 소설은 로렌스의 생애 중에는 빛을 보지 못했다. 그가 죽은 2년 뒤인 1932년 문제부분들이 삭제된 영국정부 공인(公認) 삭제판이 출판됐다.

무삭제 완전본은 60년에 와서야 출판이 가능했다. 쓰여진 지 32년만에 온전한 형태로 독자들에게 읽혀지게 된 것이다.

이 소설의 플롯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여성이 불륜을 통해 불완전한 결혼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문제는 대담한 성묘사였다. 그것도 귀족부인과 하층민 사이에 벌어진….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당시 영국에서 외설과 예술의 경계선에 관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이 논쟁이 반세기 뒤 한국에서 다시 불거졌다.



마광수교수에서 서갑숙까지

89년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필두로 ‘가자, 장미여관으로’‘권태’‘광마일기’‘즐거운 사라’를 연이어 내놓은 마광수씨가 기수를 자임했다. 96년 장정일씨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와 서갑숙씨의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등이 99년까지 연속 홈런을 때려냈다.

개척자는 때로 ‘순교자’가 되는 것인가. 마광수씨는 법정에서 실형을 받아 한때 교단을 떠나야 했고, 장정일씨도 법정구속까지 갔다. 서갑숙씨의 경우는 순교자가 아니라 ‘전도사’로 입지를 다지는 듯 하다. 그녀는 검찰의 내사를 받으면서 그리 높지 않았던 연기자로서의 삶을 ‘할 말은 하는’용기있는 성담론가로 전환시키고 있다.

외설 논쟁은 사회적 가치에 대한 시각차이를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똑같은 묘사를 놓고 한쪽은 ‘대담한(또는 선구적인) 성적 담론’이라고 주장하고 또 한쪽은 ‘노골적인(낯뜨거운) 성행위 장면 묘사’라고 풀이한다. 양자 가운데 어느 쪽이 옳은지 판단할 잣대는 무엇인가.

97년 5월 장정일씨에 실형을 선고한 서울지법의 이야기. “장 피고인의 소설은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원색적이고 상스러운 표현을 사용하고 있으며, 절반 이상이 변태적이고 노골적인 성행위 묘사로 돼 있는 등 음란성이 충분히 인정된다.

이런 스타일의 소설을 쓰는 다른 작가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실형을 선고한다.” 장씨는 “포르노 외장을 갖춘 것은 스타일 상의 문제로 핵심 주제와 상관없다”고 항변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이는 목적만 정당하면 수단은 어떻든 관계없다는 안이한 생각이며, 목적 또한 의심스럽다”고 답했다.



잣대는 무엇인가

문학을 법의 잣대로 재단하는 게 과연 타당한가. 이 문제에 관한 논란은 오히려 문학작품의 음란성 여부에 대한 논쟁보다 더 근본적인 화두를 던진다. 법적 판단의 대체재로 거론되는 것이 ‘시장의 힘’이다. 독자들이 읽어 보고 판단할 문제라는 얘기다. 문학작품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독자다.

독자를 염두에 두고 나온다는 점에서 작품의 지향점은 시장이다. 여기서 이르면 논쟁은 또 미궁으로 빠져든다. ‘시장은 완전한가’라는 의문이다. 시장이 검찰의 판단보다 항상 낫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는가.

소설가가 성애를 주제로 한 소설을 쓸 때 염두에 두는 것은 무엇일까. 누구 말처럼 ‘케케묵은 봉건적 윤리의식’을 타파하기 위해서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비록 전자에 속하는 소설가라 하더라도 상업성과 완전히 결별할 수는 없을 지 모른다. 우리는 신자유주의의 이념적 홍수속에 살고 있다고들 하니까.

현재는 컴퓨터 마우스만 클릭하면 포르노물 홍수에 빠질 수 있게 된 20세기 석양. 활자의 음란성 운운하는 것은 어쩌면 제방에 난 구멍을 팔뚝으로 막고 있는, 시대착오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일 지도 모른다.

배연해·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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