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아버지 죽음앞에서 흘리는 눈물

12/23(목) 10:30

2년전 이맘 때 쓴 원고를 뒤져보니 “10년 정도는 허리띠를 조여야 한다”는 신문 기사를 인용하며 공황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소개한 것이 눈에 띈다. 그 때는 IMF라는 한마디면 모든 게 설명이 됐다. 월급이 깎이는 것도, 해고당하는 것도, 전세금을 건지지 못하는 것도....

이제 우리는 IMF의 그늘을 완전히 벗어난 것일까? 밀레니엄이라는 근사한 단어에 현혹되어 새로운 천년을 꿈꾸고, 세계적인 빅 이벤트나 어마어마한 조형물에 정신을 빼앗기다가도 한 가닥 불안이 등골을 서늘하게 스치고 지나간다.

오늘의 주인공은 IMF 당시의 우리 처지와 똑같다. 어느 한 구석 의지할 곳 없는 막막한 삶, 엉엉 소리내어 우는 주인공의 통곡은 IMF를 당한 우리 심정을 대변하는 것만 같다.

필더 쿡 감독이 솔 벨로우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1986년 작 <씨즈 더 데이 Seize the Day>(15세 이용가 등급, DMV 출시)의 주인공 토미 윌헬름(로빈 윌리암스)이 사는 시대는 1956년의 미국이지만.

토미는 10년간 열심히 일궈온 영업 구역을 사장의 멍청한 사위에게 빼앗기게 되어 항의를 하는데, 돌아온 것은 해고뿐. 애인 애니(글렌 헤들리)에게 하소연해보나, 지독하게 양육비를 울거내는 부인과의 이혼을 매듭지으라는 독촉이 먼저다.

알량한 주식마저 휴지가 되어 어쩔수 없이 뉴욕의 아버지(조셉 와이즈맨)를 찾는다. 명망있는 의사였던 아버지는 호텔에서 여유있는 노년을 보내고 있지만, 아들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의대 가라고 했더니 배우가 되겠다고 하지 않았냐. 나는 네 나이인 마흔살 때 이미 45만달러가 있었다”라는 것 뿐이다.

토미는 도박판에서 알게된 자칭 정신과 의사 탐킨(제리 스틸러)의 “때를 잘 잡기만 하면”이라는 말에 이끌려 선물 시장에 발을 디디게 된다. 아버지는 탐킨이 허무맹랑한 거짓말을 늘어놓는 위인이라며 조심하라고 하지만, 아버지의 명성과 권위에 눌려 이름까지 바꾸었던 토미는 “고통과 결혼하지 말게나. 자네 아버지의 사랑은 죽은 세포와 다를 게 없네”라는 탐킨의 탁월한 분석과 위로에 점점 마음을 빼앗긴다.

토미의 주변에는 토미를 진정으로 아끼고 도와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 숨 막히는 결혼 생활을 11년씩이나 참다가 집을 나올 때, 토미가 바란 것은 오직 개뿐이었는데 부인은 냉정하게 거절했고, 파산지경에 이른 그에게 “당연한 대가”라고 쏘아붙이며 돈 독촉을 한다.

금방 스타를 만들어줄 것처럼 사탕발림하던 20년 전의 메니저. 애인은 남부끄럽지 않은 결혼식에만 신경을 쓴다. 그리고 아버지.

<씨즈 더 데이>에는 유태인에 대한 묘사가 배타적이고 까다로우며 돈 밖에 모르는 늙은이로 함축된다. 호텔 사우나의 삐쩍 마른 귀신같은 노인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할머니(조반 플리트), 아버지의 친구(윌리엄 히키), 그리고 아버지를 통해 그런 인상을 드러낸다.

그러나 토미가 이제까지의 응어리진 감정을 폭발시켜 엉엉 소리내어 울 수 있는 장소는 장례식이 거행되는 유태인 교회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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