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거함을 넘어 조남철과 마주앉다

12/30(목) 11:32

김인은 당시 5개의 타이틀전에서 3개를 한 허리에 두른 명실공히 한국바둑계의 일인자. 도전자 결정전은 당연히 김인의 승리가 예상되었고, 김인과 조남철이 맞붙어서 구주류와 신주류간의 대결이 또한번 펼쳐질 것으로 전망되던 시점이었다.

서봉수와 김인은 리그전적 6승무패로 마지막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 바둑은 시종 팽팽한 국면을 유지한다. 아무래도 패기로 밀어붙이는 서봉수와 관록을 무기삼아 지구전을 펼치는 김인의 대결은 후반으로 갈수록 김인이 유리해질 것이라는 예상이 대세였다.

그러나 초반에 우세를 잡은 서봉수는 종반이 다가오도록 역전을 허용하지않는 끈질김을 보여준다. 종반 한때 김인은 역전을 이루었으나 곧장 또다시 역전을 허용한 건 김인의 실력이 아니라 서봉수의 괴력이었다.

흔히 구력이 약한 기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우세를 지탱할 힘이 없기 마련이라서 한번 꺽이면 다시금 일어날 저력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역전된 바둑을 다시 역전한다는 건 1승 이상의 값어치를 보여준 대목.

1집반승이었다. 승부의 최소단위는 반집. 그 다음의 미세한 차이로 서봉수는 김인마저 꺾는다. 반집은 운이요, 1집반은 실력이라고 했다. 서봉수는 거함 김인을 실력차이로 극복하고 당당하게 조남철을 노크한다. 파죽의 11연승을 거둔 그는 최고단 8단 조남철 선생에게 타이틀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고 있었다.

초단과 8단의 차이. 지금은 초단이나 9단이나 실력차이가 별로 없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4단에서 6단 정도만 되더라도 고단진에 분류되었고 서봉수같은 풋내기와는 정성에서 두점까지 치수가 벌어지는 실력차이가 존재하고 있었다. 따라서 고단진이란 자체는 실력으로도 고수라는 의미와 일치했다.

그러면 초단 서봉수와 당시로는 최고단이었던 8단 조남철과는 어느정도의 치수차이였을까. 두점과 석점 사이. 즉 세판을 둔다면 한번은 세점, 두번은 두점을 깔아야하는 하수가 서봉수였다. 실제로 승단시합에 나가면 8단과 초단은 그 치수를 가지고 싸워야한다(물론 워낙 단위가 차이나 실제로 만날 수는 없지만).

조남철은 서봉수를 몹시 부담스러워하고 있었다. 직접 지도를 해준 적은 없지만 서봉수는 조남철의 제자와 같은 존재였다. 서봉수가 고교생일 적에 각종 대회에서 단장역할도 맡았던 조남철인지라 엊그제 까까머리 고교생이었던 새까만 ‘아이’를 놓고 도전기를 펼친다는 건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고단자의 권위가 권위로서 의미를 지니던 시기여서 이기면 본전이요, 지면 망신인 그런 시합이 당연히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아니, 걱정스러웠다.

“선생님, 몹시 고생하시겠습니다.”(김인)

“전승으로 올라와서 진다는 생각은 잊은 지 오래입니다.”(서봉수)

“타이틀은 물론이요, 고단자의 권위까지 지켜야한다.”(조남철)

“여기까지 올라온 것도 대견한 일이다. 많이 배우길 바란다.”(정창현)

제4기 명인전 도전기는 이렇게 시작 공이 울리기도 전에 바둑가의 단연 화제작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대세는 조남철에게 있었고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서봉수만 하고 있었던 것이 일반의 시각이다. 그러나 집계하지 않았지만 수십만 팬들은 서봉수의 승리를 점치고 있었다. 아니 소원하고 있었다. 세대교체란 빠르면 빠를수록 센세이션한 것이니까.

49세 조남철과 19세 서봉수의 어색한 도전기는 그렇게 막이 오른다. 한국일보주최 제4기 명인전이었다.



<뉴스와 화제>

이창호 5년 연속 최우수기사에

99바둑문화상 수상자 결정-신인상에 김만수

이창호가 5년연속 최우수기사에 뽑혔다. 12월23일 한국기원에서 실시된 99바둑문화상 최우수기사상 투표에서 이창호는 단일후보로 나서 만장일치로 최우수기사로 뽑혔다. 이창호는 올해 벌어진 삼성화재배 LG배 등 두차례 세계정상에 올랐고 국내전도 5관왕으로 최다타이틀 보유자.

수훈상은 조훈현과 서봉수가 유효투표 14표중 각각 6표를 얻어 동반수상했고, 감투상은 유창혁이 루이 나이웨이와 동률 재투표까지 가는 대접전끝에 6표로 루이를 1표차로 제치고 수상하게 되었다.

한편 중국출신 루이 나이웨이는 총31승6패로 승률부문 1위에 올라있어 승률상을 수상할 가능성이 큰데 이창호와 1%이내의 격차를 보이고 있어 남은 한두판에 따라 결정날 것으로 보인다. 루이가 남은 두판을 모두 이길 경우 승률1위가 확정된다. 올 5월부터 한국활동을 개시한 그녀는 루이는 현재 국수전 도전자결정전에서 이창호와 만나게 되어있다.

최우수신인상은 신인왕전 타이틀을 획득한 김만수에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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