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을 햇빛속으로 끌어내다

12/30(목) 11:36

◇ 포르노를 해부한다/김성호 지음/한림미디어

탤런트 서갑숙이 상업적 배경이 짙게 깔린 자신의 성경험을 다룬 책을 출간하면서 한동안 온 나라가 성(性)에 대한 담론 때문에 웅성거렸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 보면 과연 여배우가 책을 펴낸 일이 우리의 성 기반을 그토록 흔들어 놓을만큼 깜짝 놀랄만한 일이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길가에 널려있는 도색잡지, 고가에 거래되는 포르노 비디오, 포르노 영화와 연극, 성적인 것을 은연중에 암시하는 각종 CF. 이제 포르노는 은연중에 단순히 흥미를 넘어선 문화의 한 흐름으로 인식돼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포르노를 해부한다’는 책을 펴낸 김성호씨는 이같은 판단을 전제로 “이제껏 음울한 지하에서 허욱적거리며 그 생명만을 유지하던 포르노를 현실 속으로 참여시키며 자연스럽게 표현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따라서 자신의 책은 단순히 시류를 의식하고 낸 책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포르노의 공론화를 유도하고 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위해 준비해온 책이라고 얘기한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볼 때 성은 선사시대가 지금보다 오히려 더 대담하고 노골적이었다. 벽화나 유물 등에는 남성 및 여성간의 동성애, 복장도착, 자위행위, 집단성교 등 오늘날 비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거의 모든 성행위들이 표현되어 있다.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에서는 난교, 후배위 등을 상세히 묘사한 그림들이 성행했는데 오늘날은 이것을 최고의 예술품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같은 고고학적 증거들은 이제까지 특정계층의 전유물이 되어 왔고, 대중에게는 감추어져 왔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지옥소장본(Collecion de l'Enfer)’과 영국 대영 도서관의 ‘비공개서가(Private case of British Library)’가 그것이다. 92년까지만 하더라도 지옥소장본을 열람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이유를 기재해야 했다.

이처럼 포르노의 역사는 일반대중을 계몽의 대상으로 여기고 인간의 본성을 고결한 것으로 미화시키려는 특정 계층의 ‘선의’에 의해 규제되어 온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포르노를 은밀한 장소에서 주고받는 비디오나 현혹적이고 자극적인 포스터로 관객을 사로잡는 영화의 한 장르로만 알고 있는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포르노를 해부한다’는 포르노의 역사와 현대 포르노물에 관한 방대한 자료와 각종 미디어에 나타난 자료를 종합, 다각적인 측면에서 분석한 의미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에는 지금껏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유명 화가들의 성 표현물(춘화도)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포르노 분석을 내세운 또다른 포르노 책이 아니냐”라는 비판도 있겠지만 동·서양의 포르노 문화를 비교 분석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학술적으로 제시했다는 측면에서 의미있는 책임에 틀림없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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