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천년, 새 세기를 맞아서도 여전한 몸새를 갖춘 부분이 있다. 그 흔한 소망도 소원도 조용한 목소리속에 있다.

20세기의 마지막 냉전 분단지대인 한반도의 통일에 관한 소견들은 ‘흡수’니, ‘포용’이니, ‘햇볕’이니, ‘평화공존’이니,‘민족통일’이니에 맴돈다. 새 세기를 향한 새로운 구상도, 용어도 없다. 한반도 통일문제는 옛세기의 산물이며 새 세기에도 남겨진 유산이요 교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빠져 나올 수 없는 탄생의 원죄처럼 옛세기의 굴레에 대해 그래도 말들은 있다. 그건 통일의 해법이기도 하고 새로운 소망을 위한 기구이기도 하다. 또 하나의 민족 전쟁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절제이기도 하고 화해하기위한 관용 처럼도 들린다.

남덕우, 강영훈, 노재봉 등 5·6공 전국무총리 등은 21세기를 맞아 경륜과 소명을 갖고 한반도 통일문제를 내다봤다.(월간조선 12월호). 우선 남덕우 전 총리는 “남북 통일에 관하여는 북한을 국제사회로 이끌어 내 점진적 개방과 내부 개혁을 유도하되 감상적이고 안이한 통일론은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영훈 전총리는 한반도를 둘러싼 4대강국의 이해관계는 100년전과 같다는 입장에서 “내부적으로는 우리가 훌륭한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잘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평화통일의 첩경이다. 햇볕정책을 쓰되 무력 도발을 하면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서 현재는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두 전총리의 개방 유도론에 비해 노재봉 전총리는 흡수통일을 주장하지 않았지만 한반도의 통일은 결국 체제통일론이라는 주장으로 이를 돌려 말하고 있다.

노 전총리는 “‘흡수통일’이란 용어를 맨먼저 꺼낸 것은 북한측이다”고 말했다. 1990년 소련의 세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고르바초프의 비망록을 북한에 전했다. “너희식대로 계속가면 동유럽처럼 될 것이다”는 경고였다. 북한은 발표 않기로 한 이 경고를 “우리는 ‘흡수통일’을 절대 반대 한다”고 해석해 일방적으로 성명을 발표했다. 노 전총리는 소련이북한에 대해 “너희가 계속 고집을 피우면 남쪽으로 흡수시킬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해석하고 있다.

노 전총리는 김대중 대통령의 흡수통일을 반대하는 뉘앙스는 3단계 통일론에서 본다면 평화공존론이라고 보고있다. 그는 평화공존론은 레닌과 후루시초프가 사용한 현상유지론과 같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평화공존론이라고 해서 흡수통일을 안한다고 할 때 이것이 현상유지를 위한 것인지 아닌지 확실하지는 않다. 이는 분단의 장기화라는 이야기 이기도 하다”고 비판했다. 노 전총리는 북한의 개방이 통일의 지름길이 아닐 수 있다고 보고있다.

노 전총리는 결론 짓고 있지만 자신은 없다. “통일은 체제의 통일없이는 있을 수 없다.

우리 내부의 합의와 이해가 있어야 한다. 같은 민족이라고 통일이 될 것이다고 생각 하는 것은 잘못이다. 저쪽 체제를 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현재 우리가 가는 방향은 오히려 저쪽 체제를 유지 또는 강화 시켜주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거꾸로 가는 것이다. ”

이런 세 전총리의 주장에 답이나 하듯 대한민국을 ‘조국으로 귀국’한 황장엽 전 노동당 국제담당비서는 망명 2년여가 넘은 후에 통일문제에 그 나름의 의견을 냈다. ‘개인의 생명보다 귀중한 민족의 생명’이라는 긴 제목의 책을 1999년 12월15일 발간했다.

황 전비서는 현재의 북한의 체재는 김일성 봉건세습체제의 2대인 ‘김정일 군사위원장 군사 독재체제’라고 보고있다. 따라서 한국과 북한의 통일은 두가지 다른 체제를 한가지 체제로의 통일일 수 밖에 없으며 그 대안으로, 그 대용어로 ‘민족통일’을 내세우고 있다.

그는 주장하고 있다. “북한의 변화를 알려면 그곳의 개인독재 체제가 변하는 지를 알아내야 한다. 그리고 북한에 있는 민족에게 개방과 수혜와 경제원조가 가도록 해야 한다. 평화공존보다 민족통일을 주장해야한다. ‘흡수통일’이란 말보다 자기의 의사를 타방에 강요않는 ‘민주주의 원칙의 통일’로 바꿔야 한다.

통일문제는 초당적이며 전국가적, 전국민적 사업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헌법재판소급 통일재판소, 통일문제 담당장관을 초당적으로 국회에서 선출해라. 무엇보다 북한의 주민은 민족통일의 대상이지 타도의 대상이 아니다. 완전 통일이 될 때까지 10년간의 과도기에는 거주의 제한이 필요하다. 연방제는 그후에 생각해라. 통일외교는 과거에 구애받지 말고 미래 지향적이어야 한다.”

황장엽 박사의 책에는 북한의 허위와 진실, 북한을 지탱하는 허위의식, 주체사상의 실상이 있다. 통일을 생각하는 이들은 좌우간 그 책을 읽기를 바란다. [박용배 통일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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