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신인류] "컴퓨터는 나에게 자유를 준다"

2000 01/05(수) 18:25

“N세대는 겁이 없는 세대입니다. 컴퓨터를 대하고, 컴퓨터를 통해 새로움을 찾는데 두려움이 없다는 말이죠. 컴퓨터를 만지는데 겁부터 내는 어른과 우리는 다릅니다. 하지만 N세대를 나이와 결부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컴퓨터를 두려움없이 대하고, 컴퓨터에 몰입한다면 누구든 N세대 입니다.”

김동준(22)군.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97학번이다. 올해 3학년이 된다. 그의 아침은 휴대폰 알람으로 깨어나 컴퓨터를 켜는 일로 시작된다. 대개 6시30분에서 7시. 컴퓨터 스위치를 누른 뒤 부팅이 될 때까지 재빨리 양치와 세수를 끝낸다. 밤새 온 이메일이 있는지 확인하고 과모임과 동우회 사이트로 들어가 새소식을 알아본다.

김군이 컴퓨터와 친해진 것은 이제 만 2년. 고교시절까지만 해도 컴맹이었다. 그런 그가 N(네트워크)세대가 된데는 전공선택과 무관치 않다. 학과 동아리 ‘가디언(GARDIAN)’에서 활동하면서 가속도가 붙었다. 가디언은 해킹방지, 즉 컴퓨터 보안을 연구하는 모임이다. 그의 단체활동은 가디언이 거의 전부다. 운동권은 활동방식 등이 마음에 안들어 참여 않는다. 운동권을 연상시키는 사물놀이 동아리 등에도 관심이 없다. 컴퓨터 만지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 김군의 말이다.

방학이나 쉬는 날이면 온종일 컴퓨터에 붙어 산다. 식사와 외출은 그에게는 ‘불가피한’외도로 여겨진다. 덕분에 한달 전화비가 10만원이 넘는다. 전화선을 통해 컴퓨터가 접속돼 있기 때문. 전화비는 아르바이트로 벌어 충당한다.

컴퓨터는 옛날에 쓰던 헌 것을 업그레이드해 사용한다. 모니터와 키보드, 프린터를 제외한 본체를 업그레이드 하는데 든 비용은 약 80만원. 전자상가에서 산 부품들을 직접 조립했다.



게임·채팅으로 대부분시간 보내

김군은 요즘 게임에 푹 빠져있다. 컴퓨터 전자오락 ‘스타크래프트’다. 보급과 수송, 고차원적인 작전이 망라된 전쟁게임이다. 첨단무기와 특수부대까지 동원해 머리싸움을 벌여야 한다. 컴퓨터와 보내는 하루시간 중 30% 이상이 게임시간이다. 김군은 “네트워크의 발달로 게임은 이제 컴퓨터와 벌이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 저쪽의 또다른 사람과 싸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게임을 중계하는 사이트로 들어가 제3자들이 싸우는 모습과 결과를 살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 그는 게임 중 대화를 통해, 그 인연으로 상대방을 직접 만나 친목을 쌓기도 한다. 컴퓨터와 친숙하다는 공통점 하나가 낯선 사람을 친숙하게 만든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게임 다음으로 시간을 투자하는 분야는 채팅. 컴퓨터에 앉은 시간의 20% 정도를 채팅으로 보낸다. 채팅의 내용은 새로운 컴퓨터 관련 정보에서부터 신상 이야기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다. 김군은 처음 채팅을 시작했을 때가 제일 좋았다고 한다.

채팅으로 밤낮을 지새다 깨달은 것이 ‘채팅의 허무’였다. ‘스치는 1회적 만남’에 허무와 회의를 느낀 뒤부터는 채팅시간이 크게 줄었다. 하지만 채팅을 통해 이뤄지는 실제 만남, 이른바 ‘번개’를 인연으로 애인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 김군의 부러움 섞인 이야기다.

인터넷을 이용한 영화, 음악감상과 컴퓨터 프로그래밍 등도 필수. 세계의 다양한 명화와 음악, 그림을 구경할 수 있게 하는 컴퓨터와 네트워크에 그는 무한한 찬사를 보낸다. 김군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밤 12시가 넘어서다. “너무 늦기 전에 그만 자라”는 부모님의 말씀이 있고 난 뒤다.



컴퓨터는 필요악

김군은 컴퓨터를 필요악이라고 본다. 건강과 정신(음란물을 지칭)을 해치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유를 준다는 것이다. 실제적인 대면(對面)접촉 기회를 줄이지만, 또 한편 정보의 바다로 사람을 안내하는 기능을 한다는 주장이다.

필요에 따라 네크워크에 접속했다가, 싫으면 닫아 버리는 경박함은 정신적인 면에서 좋지 않다는 점도 잘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컴퓨터가 주는 자유와 정보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화재위험이 있다고 해서 인간에게서 불을 뺏을 수 없듯이 부작용 때문에 컴퓨터를 빼앗아 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그는 컴퓨터가 대학생들의 취미생활을 변화시켰다고 말한다. 친구들 사이에서 ‘게임하러 가자’는 이야기는 더이상 당구장을 의미하지 않는다. 컴퓨터방에 가서 스타크래프트를 한판 붙어 보자는 뜻이다. 덕분에 주변에서 당구를 잘치는 또래는 찾아보기 어렵다. 어떤 친구는 게임에 빠져 아예 “애인이 필요없다”고 떠벌리기도 한다.

김군도 아직 애인이 없지만 “게임 때문에 애인이 없는 건지, 애인이 없어 게임에 열중하는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고 털어 놓았다.

인터넷을 이용해 자료를 찾고, 이메일로 교수에게 과제물을 제출하는 것은 이미 옛일이 됐다. 하지만 도서관의 중요성이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아직 책을 빌려볼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분량이 많은 경우에는 눈이 피로하고, 또 집중력에도 한계에 있기 때문에 여전히 인쇄된 책을 이용한다.



전통문화와 공유하는 부분 많아

김군은 학교교육이 비록 컴퓨터 시대와 안맞는 면이 있지만 도외시할 수도 없다고 본다. 커리큘럼이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것 같지는 않지만, 공부과정 자체가 인내력을 배양하고 마음가짐을 돈독이 해주는 기능을 한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그는 “네트워크 시대라 해서 옛날과 모든 것이 단절되지는 않는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한국의 전통문화는 그에게는 배타적으로 고수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단지 세계의 수많은 문화 중에 하나이고, 다른 문화를 접함으로써 수정·보완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은 강하다. “IMF를 극복하는 과정으로 봐서도 우리 문화는 적응력이 뛰어난 것 같다. 새로운 네트워크 시대의 주도적인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믿는다.”

그는 전공을 살려 장래 컴퓨터 관련 일을 할 작정이다.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나 관련 벤처기업에서 일하는 것이 희망이다. 그는 그가 속한 N세대에게 “운동을 열심히 하자”고 강조한다. 컴퓨터에 빠지면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자연히 건강을 해칠 수 밖에 없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그래서 그는 담배는 아예 시작하지 않았고, 술도 별로 마시지 않는다.

김군은 기성세대가 N세대들을 관심있게 지켜봐 달라고 주문한다. 책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더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기성세대의 관념으로만 일방적으로 판단하지 말고, 세계로 진출할 자신감과 가능성을 가진 부류로 봐달라.”

그는 이 말속에 아버지 세대와 N세대가 결코 정신적으로 모순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으려는 듯 했다.

배연해·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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