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용준 헌법재판소장

2000 01/05(수) 18:55

국민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지면서 헌법해석의 최고기관인 헌법재판소의 위상도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여성 등 소외계층이나 소비자들의 권리찾기가 소송이나 헌법소원 등을 통해 진행되는 건수가 점점 늘어나 헌법재판소는 더욱 바빠질 것으로 보인다. 헌재의 결정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또한 커지고 있다.

최근 제대군인 가산제도에 대한 헌재의 위헌결정도 헌재의 영향력을 가늠해주는 사례다. 김용준(61·고시9회) 헌법재판소장은 94년 9월 취임인터뷰 이후 지금까지 공식 인터뷰를 극히 꺼리다가 새 천년을 하루 앞둔 99년 12월31일 기자와 2시간 가까이 만나 현안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최근 제대군인 가산제도 위헌결정으로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어느정도 예상은 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파장이 큰 것 같습니다. 입장에 따라 이해관계가 상반되기 때문에 반대견해나 비판은 있을 수 있습니다만 일부는 헌재의 결정을 정확히 이해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반발하는 것 같아 유감입니다.

청춘을 국가를 위해 바친 사람들이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데는 공감합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7급, 9급 공무원의 채용시험에서 3~5%의 가산점을 주는 것은 헌법적으로 용인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사건을 심리하면서 행정자치부를 통해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98년도 7급 일반행정직 공무원 합격자 99명중에서 가산점없이 합격할 수 있었던 사람은 3명에 불과했습니다. 군복무를 할 수 없는 여성이나 장애인 등의 취업기회를 사실상 박탈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방식으로 보상하는 것은 위헌의 소지는 없는 것입니까.

“결정문에 잘 나와있습니다. 언론도 싸움을 부추기지 말고 정책대안을 제시함으로써 헌재가 던진 문제점을 발전적으로 해결했어야 하는데 아쉽습니다. 헌재의 결정은 호봉제라든지 연금 등 국가에서 세금으로 적절히 보상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라는거지 제대군인 지원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부인한 것이 아니예요.

그러나 공무원채용시험에 있어서 가산점제도는 합리적 방법에 의한 지원책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7급이하의 공무원채용에만 가산점을 주도록 돼 있고 행정·사법·외무고시 등 5급이상 채용에는 적용하지 않는 것도 자의적입니다.”


-헌재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지만 국가기관들중에는 아직 헌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사례가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헌법재판소가 탄생한 것이 이제 만 11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2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연방대법원이나 50년이 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와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짧은 기간에 비해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헌법질서를 지키는 기관으로서 역할은 어느정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헌재가 없는 일본의 법조인들도 한국에 오면 헌재를 방문해 자료를 받아갈 정도입니다. 우리국민들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고 헌재에 대한 인식도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좋아질 거라고 봅니다.”


-비슷한 맥락이지만 한때 논란을 빚었던 대법원과 관계정립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고 봉합된 상태인데요.

“헌재나 대법원이나 모두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의무가 있는 헌법상의 기관입니다.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고 협력하면 됩니다. 몇몇 구체적인 사건에서 의견차이가 있었지만 큰 문제는 없습니다. 얼마전 최종영 대법원장이 취임한 후 한번 만나서 심도있게 이야기했는데…,아무튼 제 임기만료(9월)전까지 잘 해결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헌재가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시간을 너무 끌거나 헌법불합치 등 애매한 결정을 내린다는 비판도 많습니다.

“최대한 빨리 결정을 내리려 하고 있습니다. 특히 관련자가 많은 사건이거나 법원에서 재판에 계류된 사건은 가능한 빨리 처리한다는 것이 저의 방침입니다. 그래서 95년 이전 접수사건은 모두 처리했고 96년사건도 이달, 늦어도 내달까지는 모두 끝낼 겁니다.

올해에는 연구관 10명을 충원하는 등 인원도 늘려 사건처리기간을 줄이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헌법불합치결정 등으로 눈치를 본다는 비판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헌법불합치결정은 몇 건되지도 않을 뿐더러 위헌결정을 내릴 경우 너무나 큰 혼란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불합치결정은 가능한 줄여나갈 방침입니다.”


-재임중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무엇입니까.

“5·18특별법 위헌제청사건이었습니다. 국민들중에서는 외압 때문에 결정이 힘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건 절대 아닙니다. 법률적인 쟁점이 너무 많고 복잡한데다 헌재 재판관들은 물론 연구관들 사이에서도 너무 의견이 달라 애를 먹었습니다.

재판관이나 연구관들의 나이에 따라서도 의견이 달라 세대차이를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토론에 토론을 거듭했지만 합의점을 찾기가 너무 힘들어서 결국 다수결로 갔는데 5명이 위헌이라고 판정했지만 법정정족수에 한명이 모자라 결과적으로 합헌결정이 됐지요.”


-뿌듯했던 결정은 없습니까.

“동성동본금혼조항 헌법불합치결정이나 영화검열위헌결정 등 많이 있지요. 얼마전 미국에 갔더니 동성동본금혼조항 때문에 미국으로 이민온 교포들도 많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일부에서 오해하듯이 이 결정이 친족간의 결혼까지 허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행 민법상 8촌이내 친족간 혼인은 여전히 원천무효입니다.”


-재임중에 정치권 등에서 압력받으신적 없습니까.

“(웃으면서)누가 법관에게 압력을 가해요. 대통령이나 청와대 등에서 ‘나한테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가 한번 외부에 알려져봐요, 난리가 날 게 뻔한데 누가 그렇게 하겠어요.”

송용회·주간한국부 기자 김명원·사진부기자 songy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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