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히 알면서도 당할 수 밖에요…"

2000 01/05(수) 19:13

맹자(孟自)와 순자(荀子). 두 사람 모두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대 사상가이다. 맹자와 순자는 인간의 본성을 놓고 크게 대립했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은 원래 선하다’라고 주장한 반면 순자는 ‘사람은 악한 본성을 갖고 태어났다’고 맞섰다. 그리고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은 인(仁)을 강조하는 유가(儒家)로 발전했고, 순자의 성악설(性惡說)은 사람의 못된 행동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법가(法家)로 이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은 착하다’라고 주장하는 성선설을 믿고 싶어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새로운 천년이 밝았건만 ‘편법의 틈’을 노려 자신의 이득을 지키려는 뻔뻔한 ‘얌체족’이 여전히 판을 치고 있다.


반품·환불제도 악용, 연간 수입억 피해

얌체들의 횡포가 가장 두드러진 곳은 유통업계이다. 주요 백화점이나 홈쇼핑 회사들은 소위 ‘진상고객’이라고 불리는 얌체 손님들의 터무니 없는 요구에 골치를 앓고 있다. 특히 홈쇼핑이나 통신판매업체의 경우 ‘물건을 구입한지 1개월내에는 무조건 반품·환불이 가능하다’는 점을 악용하는 얌체들로 연간 수십억원의 손해를 보고 있다.

홈쇼핑과 통신판매업체들을 괴롭히는 얌체 고객들이 사용하는 수법은 크게 두가지. 가장 흔한 수법은 한달만 이용하고 반품하는 것이다. 고급 모피옷이나 보석 등을 주문해놓고 반품 가능기간인 한달 동안만 사용한뒤 반품과 환불을 요구하는 방법이다.

39홈쇼핑 관계자는 “심한 경우에는 자녀의 결혼식에 입고 나갈 옷과 장신구는 물론이고 결혼잔치에 사용할 고급 식기세트를 주문, 사용한뒤 반품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얌체 고객들이 반품한 물건의 경우 다시 판매할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얌체 고객의 또다른 수법은 ‘물건 빼돌리기’. 속옷, 접시 등 세트단위로 판매하는 상품을 주문해 그중 1~2개를 빼돌린뒤 “수량이 맞지 않는다”고 반품을 요구하는 방법이다. LG홈쇼핑 관계자는 “고객이 빼돌린 것이 확실하지만 증거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얌체들의 횡포에 따른 홈쇼핑·통신판매업체의 피해가 결국에는 순진한 보통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LG홈쇼핑과 39홈쇼핑 등 국내 홈쇼핑 업계의 총 매출액과 반품률은 각각 7,000여억원과 20%가량이다.

얌체들의 소행으로 반품되는 제품의 비율을 10%로 추정할 경우 피해규모는 연간 140억원에 달한다. 이같은 피해에도 불구, 1999년 한해동안 LG홈쇼핑과 39홈쇼핑이 각각 150억원과 95억원의 순이익을 냈다는 사실은 얌체들의 횡포를 보통사람들이 감내하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얌체 고객들로 고민하기는 백화점도 마찬가지이다. S백화점에 따르면 최근 경기가 회복되면서 얌체손님들의 뻔뻔한 요구도 똑같이 증가하고 있다. 백화점 관계자는 “1년전에 사간 옷을 들고 와서 ‘구김이 졌다’, ‘보풀이 일어난다’며 환불해 가는 얌체 고객이 하루 평균 3~4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신용카드 사용뒤 허위분실신고

신용카드 업계에도 ‘분실뒤 15일 이내에만 신고하면 본인 책임이 없다’는 규정을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카드업계에 따르면 신용카드 부정사용 후 분실신고가 된 건수는 1999년 한해동안 약 3만건. 이중 10%가 넘는 3,200여건이 본인이 직접 사용한 뒤 허위분실신고를 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 등 가족끼리 미리 짜고 허위분실신고를 하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LG카드 ‘카드사고 처리반’직원들은 지난해 9월6일 K씨로부터 카드분실 신고를 받고 조사에 나섰다. 카드사용 내역을 조회한 결과 8월25일 126만원이 룸싸롱에서 사용된 것을 확인했으나 K씨는 “언제 어디서 신용카드를 잃어버렸는지 생각이 나지 않으며, 분명히 소매치기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LG카드의 조사결과 룸싸롱에서 카드를 사용한 사람은 K씨의 아들이었다.

보험업계도 매년 급증하는 보험사기로 고민에 빠져있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1998년 7월부터 99년 6월까지 1년동안 적발된 보험사기는 총 5,599건으로 1997년 7월~1998년 6월의 5,109건보다 9.6%나 증가했으며, 이에 따라 환수한 보험금도 287억원에 달한다.

손보협회 홍보부 양두석 차장은 “더욱 심각한 것은 보험사기가 소액다발화 경향을 띠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양차장은 “1999년의 경우 사기건수는 9.6%나 늘었지만 적발금액은 오히려 1998년(325억원)보다 11.7%나 감소한 287억원에 머물렀다”며 “이는 외환위기 이후 생활고에 시달리는 일반 개인들이 보험사기를 벌이고 있음을 뜻한다”고 말했다.


대책수립에 고심하지만 역부족

한편 홈쇼핑, 백화점, 카드회사, 보험회사 등이 제각기 얌체족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고 있으나 역부족이다.

홈쇼핑 업체와 카드회사의 경우 얌체 행각을 벌인 전력이 있는 고객들의 명단을 작성, 직원들에게 이들과 거래할 때 특별히 주의할 것을 교육시키고 있으나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손보업계 역시 ‘자동차보험 도덕적위험방지대책위원회’를 만들어 가동하고 있으나 ‘보험사기’는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 천년의 마지막해인 1999년 온나라가 활황 증시로 달아오르면서 국민들의 마음도 ‘돈’으로 술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chcho@hk.co.kr


(C) COPYRIGHT 1999 THE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