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얌체짓을 조장한다

2000 01/05(수) 19:20

‘뜨거운 난로의 법칙(Law of Hot Furnace)’

사람의 심리와 행동을 연구하는 심리학이나 조직행위론 교과서에 등장하는 용어이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벌을 주어야 한다면 ‘뜨거운 난로’처럼 벌을 내려야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즉 벌을 주려면 ‘뜨거운 난로’처럼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잘못한 즉시 벌을 줘야만 벌받는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수긍할 것이라는 얘기이다. 예컨대 죄를 저질렀는데 높은 사람이라고 봐주거나, 죄를 저지른뒤 많은 시간이 지난뒤에 느닷없이 벌을 가한다면 벌받는 사람이나 죄지은 사람을 바라보는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직하고 규칙 잘 지키면 '손해'

한국 사회에서 ‘얌체’들이 득세하는 이유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 가장 큰 이유는 ‘뜨거운 난로의 법칙’이 통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직하게 규칙을 지키는 보통 사람보다는 법의 틈바구니를 파고 드는 사람들이 결국은 잘 살게 된다는 경험으로 확인된 세태가 얌체족의 기세를 살려주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말 정부가 약속한 ‘밀레니엄 대사면’을 앞두고 각종 경범죄와 교통위반 스티커에 대한 범칙금 수납액이 크게 감소한 것은 얌체족을 조장하는 우리나라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광주지역 한 경찰서의 경우 1999년 11월 한달동안 적발된 경범죄와 교통위반 스티커 발부에 따른 범칙금 수납액은 1억3,200만원이었다. 이는 1998년 11월의 2억400만원에 비해 35%가 줄어든 금액이다. 이같은 현상은 대구지역도 마찬가지.

대구시내 각 경찰서 민원창구에도 교통범칙금 납부자가 사면발표 이전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는데 A경찰서의 경우 평소 1일 평균 100명에 이르던 범칙금 납부자가 지난해 12월말에는 하루 40~50명선으로 줄어들었다.

이 경찰서 관계자는 “대사면을 앞두고 ‘범칙금을 안내도 되느냐’는 전화가 하루에도 5~6통씩 걸려왔다”면서 “일단 연체료를 물고서라도 사면내용이 발표될 때까지 버티고 보자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얌체짓에 상응하는 대가 치르게 해야

금융권도 몸살을 앓았다. 신용카드대금 연체자들의 대금 상환실적이 저조해지는 것은 물론 이미 적색거래자로 분류된 사람들로조차도 “혹시나 대사면의 혜택으로 돈을 갚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으로 이미 약속했던 채무상환을 연기, 은행 직원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시중 은행의 한 관계자는 “새 천년을 맞아 국민화합을 이룬다는 데에는 동감하지만 한때 정치권에서 너무 큰 폭의 사면안을 마련, 일부 악덕채무자들이 큰 기대를 갖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 등이 속으로는 지킬 마음이 없으면서도 필요에 따라 약속해 놓은뒤 약속을 깨버리는 관행도 얌체들의 득세를 조장하고 있다. 50만원을 받아 챙긴 하위공무원은 구속되고 5,000만원을 뇌물로 받은 정치인이나 고위 공무원은 ‘떡값’으로 풀려나는 상황이 2000년에도 계속된다면 한국 사회의 얌체족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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