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각 분야가 의약 분업을 앞두고 살아남기 위한 변신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의사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거리로 나섰고, 병·의원들의 무효화 투쟁과 로비는 멈추지 않을 기세다. 제약회사들은 변혁의 수혜를 선점하기 위한 새로운 마케팅 구축에 뛰어들었다. 약국들도 대형화, 집단화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 당국은 이들 이익집단과 국민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양상이다. 국민보건 의료 체제의 근간을 흔들 7월의 의약 분업 시행을 앞두고 소용돌이 치고 있는 의료계의 변혁을 진단한다.

서울 종로구 원남동에서 임약국을 경영하는 약사 임준형(56)씨는 요즘 하루하루가 괴롭다. 그는 지난 30여년간 동네 사람들의 건강 상담역이자 간이 주치의로 끈끈한 인간 관계를 맺어오며 나름대로 약국을 운영해 왔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지난해 의약 분업이 사회적 논란을 빚으면서 약사들이 마치 ‘약물 오남용의 주범’인듯 인식되면서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임씨는 올 6월말 이전에 35년간 청춘을 묻었던 약국 문을 닫을 예정이다. 7월1일 의약 분업이 실시되면 매출이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도 포기를 결정한 또 다른 이유다.

임씨외에 벌써 이 일대에는 지난 2~3개월 동안 5개의 약국이 사라졌다. 임씨가 폐업할 경우 인근에는 길 건너 서울대병원 정문 앞에 있는 대형 약국 단 2개만이 남는다.

임씨는 “의약 분업을 하면 약국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욱 심해져 동네의 작은 약국 상당수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30여년간 해온 일을 이렇게 접게돼 찹찹하다”고 자조적 푸념을 털어놨다.


약국들 대형화·기업화 추진

전국 약사들의 모임인 대한약사회는 정부 당국과 함께 그간 의약 분업을 강하게 추진해 온 두 축의 하나다. 하지만 임씨의 경우 처럼 일선 소규모 약국들은 오히려 의약분업을 눈앞에 두고 불안에 떨고 있다.

이들은 지금까지 소규모 동네 약국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쉽게 약을 구입할 수 있는 ‘편리함과 인접성’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약 분업이 전면 시행되면 의사의 처방전이 반드시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같은 이점이 사라질 것이라고 본다. 가장 큰 수입원인 약 조제 자체가 불가능해 매출액과 마진이 동반 하락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병원 외래환자를 받기 위해선 처방전 수용 교육외에도 다양한 전문 의약품과 통신 설비 등을 추가 구비해야 한다. 한마디로 많은 노력과 자본이 절대 필요한 위기 상황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는 약국도 있다. 대학 병원이나 의원 인근에 위치한 약국들은 병원 외래환자를 고스란히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엄청난 매출 증가를 예상하고 있다. 특히 수술환자를 상대로 한 고가의 특수약 판매가 급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런 수요 증가에 맞춰 이들 약국들은 발빠르게 대형화, 기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정문앞에 있는 한 대형 약국은 이미 97년에 법인으로 등록,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약사만 5명인 이 약국은 의약 분업을 초대형을 호재로 여기고 있다.

이 약국의 한 관계자는 “의약분업 실시에 따른 구체적인 준비는 아직 없지만 솔직히 거는 기대는 크다”며 “특수 의약품이 필요한 환자들의 경우 동네 약국보다는 공신력이 큰 대형 병원을 선호하기 때문에 매출은 지금보다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약국의 대형화, 체인화 추세는 앞으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 보고 있다.


병원 수입 30%가량 줄어들 듯

의약 분업으로 가장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쪽은 당연히 의사와 병의원들이다. 대형 병원의 경우 외래환자에 대한 약 판매금지로 병원 총 수익의 30% 이상이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소규모 병·의원들도 35%에 달하는 수입 감소가 불가피해 폐업이 속출하는 위기 상황이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진료과목중에서는 의약품 비중이 큰 일반 내과 의원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병원 박경호 약무과장은 “서울대병원의 경우 매달 약 판매로 발생하는 매출이 약 135억원 정도인데 11월15일 정부의 실거래가 인상 조치로 당장 45억원의 수입 감소가 불가피하다. 우리 병원의 경우 총 매출중 약가 비중이 그래도 작은 편인데도 타 병원의 경우 타격은 더욱 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의약분업으로 사라질 조제실의 인력을 입원환자에 투입할 경우 의료 서비스의 질 개선에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며 “유휴 인력을 활용해 그간 4~5일 단위로 이뤄졌던 입원 환자에 대한 약력 관리를 1일 조제 관리시스템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고 의약분업의 장점도 설명했다.


제약회사 영업행태에 큰 변화

의료계의 한축인 제약회사에도 큰 바람이 일고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남 번화가에는 100평 규모의 선진국형 드러그 스토어(Drug store) ‘올리브 영’이 문을 열었다. 대기업인 제일제당이 개설한 이 점포에는 약은 물론 화장품 액세서리 문구 장신구 식음료 등 1만여점의 각종 생활용품이 가득 진열돼 있다.

약국이 이제 단순히 약만 파는 곳이 아니라 선진국처럼 모든 일상 용품을 함께 취급하는 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적인 생활용품 유통업체인 미국 월그린, 메디슨 숍과 영국의 부츠사도 이런 형태로 국내 진출에 진출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또 국내에 1,300여개 약국과 메디팜이라는 프랜차이즈를 맺고 있는 조아제약은 삼성의료원과 협력 관계를 맺는 전략적 제휴를 추진중에 있다. 이 병원의 외래환자들을 전국에 있는 메디팜 약국으로 유도한다는 생각이다.

이밖에 보령제약, SK제약, 종근당, 동화약품 등 유수 제약회사들도 기존 마케팅 방식으로는 살아남기 힘들다고 보고 자체 판매망 구축과 새로운 유통 체계 개선을 모색중이다. 제약회사들은 그간 의사와 병원에 대한 로비 비용에 투입했던 자금을 신약 개발과 생산에 주력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간 도매상 통한 다품종 소량 판매

의약 분업은 중간도매상의 입지도 변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대형약국은 말할 것도 없고 동네 소규모 약국들도 의사 처방전을 소화하기 위해선 다양한 약품을 구비하고 있는 중간도매상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수 제약회사에 의존하는 소품종 다량 방식의 약 공급체계가 이제는 중간도매상을 통한 다품종 소량 방식으로 바뀌게 될 수 밖에 없다. 이럴 경우 약국들은 신속히 다양한 종류의 약품을 공급 받을 수 있는 중간도매상에 더욱 의존하게 된다.

정부는 의약분업에 대해 변함없는 실천을 공언하고 있지만 4월 총선등 아직 넘어야할 산이 많이 있다. 그때까지 이들 의료계 각 이익집단의 이해득실을 조율하는 작업이야말로 의약 분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첫 단추가 될 것이다.

송영웅·주간한국부 기자


송영웅·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