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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내린 '차르 보리스' 시대

“나는 떠난다…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

보리스 옐친(68) 러시아 대통령이 20세기 마지막날인 99년 12월31일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옐친은 이날 낮 12시 창백하고 근엄한 표정으로 러시아 반국영 ORT TV에 등장, “금세기 마지막 날인 오늘 사임한다”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를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임명했다.



'새 인물이 새 밀레니엄 맞아야' 용퇴

옐친은 이와 함께 2000년 3월27일 대통령 선거를 치를 것이라고 발표했다. 러시아 헌법은 대통령 사임일로부터 90일 이내에 선거를 치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옐친의 사임으로 푸틴 권한대행은 당초 2000년 6월에서 3월로 앞당겨진 대통령 선거일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됐다.

옐친은 사임이유로 우선 ‘신세대론’을 내세웠다. 훌륭한 ‘젊은피’들이 많기 때문에 굳이 6개월여 남은 임기를 채울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는 새로운 정치인들, 또 지적이면서도 강력하고 정력적인 새인물들과 함께 새 밀레니엄을 맞이해야 한다”면서 “오랫동안 권좌에 있던 사람들은 물러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단 그의 사임은 용퇴(勇退)로 해석된다. 미국 등 세계 각국은 옐친의 사임발표에 아연 긴장했으나 급변사태가 아니라 자발적 퇴진으로 분석되자 푸틴이 지도하는 러시아와의 협력강화를 피력했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공산주의 해체와 민주주의 정착에 공헌한 옐친의 업적에 경의를 표한 뒤 “푸틴과 함께 일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옐친의 사임 발표 직후 러시아 주식시장의 주가는 전날보다 17%나 상승했다.

그렇다면 그는 왜 ‘명퇴’를 선택했던가. 그의 사임 직후 일부 언론은 ‘궁정 쿠테타설’등 권력투쟁에 의한 퇴장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사실 93년 보수회귀를 요구하는 의회를 포격하며 강제 해산하는 등 ‘권력의 화신’이었던 그의 사임을 단순히 세대교체론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그러나 음모가 있었다면 음모론의 주역은 옐친 자신이라는게 정설이다. 옐친은 건강악화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사안은 모두 자신이 직접 결정을 내려왔다. 그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 ‘크렘린의 돈줄’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조차 한때 경질하는 등 ‘집안단속’에 철저한 인물이었다. 옐친은 러시아 국민들의 표현대로 ‘차르(황제) 보리스’였다.



신변보장 염두에 둔 '게산된 승부수'

그가 ‘세기말 깜짝쇼’를 연출한 것은 사후 신변보장을 염두에 둔 ‘계산된 승부수’라는 게 유력한 분석이다.

옐친은 2000년 6월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의 정적이 당선되기라도 한다면 그동안의 권력남용과 측근의 부패 등에 대한 단죄를 각오해야 할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옐친이 지난해 후반기부터 건강이 더욱 악화돼 대통령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지금까지 버텨온 것도 이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옐친은 자신의 ‘가신’으로 평가되는 푸틴 총리의 인기가 체첸사태로 인해 급상승, 대통령을 사임해도 옐친파의 권력유지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푸틴당’으로 통하는 ‘통일당’이 구랍 19일 총선을 통해 대약진한 것이 결정적인 사임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옐친은 사임사에서도 구체적으로 푸틴을 지목하며 ‘그를 중심으로 단결 할 것’을 부탁했다. 옐친 자신은 이미 푸틴의 대선 가도에 부담이 되는 존재가 돼버렸다.

옐친은 결국 ‘안전한 퇴장’을 선택했다. 러시아는 레임덕 대통령 대신 ‘힘있는’ 대통령과 함께 새 천년을 맞았다. 옐친의 후계자 푸틴은 이날 옐친으로부터 러시아 전략핵미사일 암호가 든 ‘핵가방’을 인계받은 직후 옐친과 그 가족의 신변을 보장하는 법령과 옐친에 대한 면책과 형사상 또는 행정적인 조사 면제를 내용으로 하는 법령에 서명했다.

하지만 ‘포스트 옐친’ 시나리오가 옐친과 푸틴의 뜻대로 풀릴지는 아직 미지수다. 지난 총선에서 패배한 유리 루쉬코프 현 모스크바 시장 등의 대선경쟁자들이 옐친 사퇴를 계기로 생길 힘의 공백을 이용, 새 분위기 조성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옐친 연표

▲1931년 2월1일 : 스베르들로프스크주 부트카 마을에서 출생

▲55년 : 우랄종합기술대학교 졸업

▲68~76년 : 소련 공산당 스베르들로프스크 당 서기

▲76~85년 : 공산당 스베르들로프스크 당 제1서기

▲85~86년 : 공산당 중앙위 서기

▲85~87년 : 공산당 모스크바시당 제1서기

▲86~90년 :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임원

▲90년 5월∼91년 7월: 러시아 공화국 최고회의 의장.

▲90년 7월 : 소련 공산당 탈퇴

▲91년 6월 : 러시아 연방 대통령 당선

▲96년 7월 : 대통령 재선

▲99년 12월31일:대통령 사임

국제부·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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