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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지를 찾아서] 부대끼는 삶, 황혼이 서러운 노인들

인연의 끈은 얼마나 질기고, 또 황혼의 삶은 얼마나 서러울 수 있을까. 재가(在家)노인과 독거(獨居)노인들이 그 답을 들려준다.

서울 노원구 하계동 주공아파트 906동 113호. 현관문을 밀고 들어가자 김옥희 할머니 모녀가 마침 저녁식사를 끝내려는 참이었다. 12평 아파트의 안방. 할머니가 병원용 침대에 앉아 딸 김미향씨의 도움으로 마지막 숟갈을 뜨고 있었다 . 김 할머니는 올해 74세. 96년 척추이상으로 수술을 받은 후 아예 기동을 못하고 있다. 미향(35)씨가 수발을 들고 있지만 그도 선천성 정신박약으로 2급 장애인이다. 수발이 변변할 리 없다.

“내가 물을 봐주면 밥이 제대로 되는데, 그렇지 않으면 진밥 아니면 고두밥이다.” 미향씨가 쌀을 앉힐 때 밥솥을 가져다 자신에게 보여주지 않으면 삼층밥이 된다는 할머니의 얘기다. 하지만 미향씨는 김 할머니에게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다. “미향이가 내 손발이다. 어릴 때는 내가 십자가를 졌더니, 이제 딸이 십자가를 진다.”



수발들어주는 장애인 딸이 보배

김 할머니는 재가노인이다. 재가노인은 양로원 등 복지시설에 가지않고 자택에서 생활하는 영세노인을 이른다. 독거노인은 재가노인 중 가족없이 홀로 생활하는 노인이다.

김 할머니 가족의 한달 수입은 정부지원금 15만원이 전부. 아파트 관리비 10만원을 내면 5만원이 남는다. 교회에서 가끔 쌀과 밑반찬을 가져다 준다. 부산에 아들이 살고 있지만 일정한 직업이 없다. “1년에 한 번 올까말까. 자기도 벌어 먹어야 하니까…” 할머니는 아들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들이 가끔 전화해 ‘(모시지 못하는 게 죄스러워)엄마 어떻게 사시나 묻지도 못하겠다’고 말하면 억장이 무너진다.

미향씨의 소원은 배불리 먹는 것. “그래도 엄마하고 같이 사니 좋다”는 그의 얼굴은 진지해 보인다. 요즘 근처에 사는 열살 아래 장애인 남자친구가 생겼다며 웃는다. 할머니의 건강은 보건소에서 방문간호해 보살핀다. 집안청소는 자원봉사 도우미들이 일주일 3번 찾아와 해준다.

한 동 건너 908동 210호. 윤순례(77) 할머니가 아들 유준(47)씨와 살고 있다. 윤 할머니는 지난해부터 약간의 치매를 앓고 있다. 유준씨는 교통사고 1급 장애인이다. 후유증으로 말이 어눌하고, 허리가 아파 잘 걷지 못한다. 아직 결혼을 못했다. “누가 시집오겠나. 장애인과 결혼하면 더 문제다. 내가 장애인 둘을 먹여 살려야 할 판인데….” 할머니의 한숨이다.

한숨을 쉬는데는 이유가 있다. 생활보조금 24만원과 자신이 성치않은 몸을 이끌고 취로사업에 나가 버는 약간의 돈이 수입의 전부다. 아들은 돈을 벌지 못한다. 아파트 관리비 매달 10만원, 아들과 자신의 약값 등을 제하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다. “그나마 밑반찬은 지원을 해주고, 1주일에 한번 성당에서 식사를 제공하니 끼니는 근근히 때운다”는 게 할머니의 말이다.

유준씨는 병원갈 때를 제외하곤 하루종일 방안에서 지낸다. 병원은 소방서 119차량을 타고 간다. 목욕도 2~3주에 한번씩 오는 무료 이동목욕차량에서 해결한다. 병원갈 때 부축해주고, 세금을 대신 내주는 건 구청에서 매주 두번 파견하는 가정 도우미의 몫이다.

할머니는 98년 큰아들을 잃었다. 역시 교통사고로 장애인이었던 큰아들은 길가다 넘어지는 바람에 죽었다고 한다. 할머니에게 남은 희망은 없다. 다만 작은 아들이 불쌍할 뿐이다. “저런 아들 남겨놓고 먼저 죽어야 하는게 한스럽다. 쟤를 바라보면 죽을 수도 없다.”그러면서 할머니는 우울증 치료에 좋다는 의사의 권고에 따라 얻어온 강아지를 안고 연신 쓰다 듬는다.



정부보조금ㆍ취로사업으로 생계유지

노원구 중계동 9단지 영구임대 아파트는 모두 2,634세대. 이중 1,100세대가 60세 이상의 재가노인이거나 독거노인이다. 대부분 정부 보조금이나 취로사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양로원을 가고 싶어도 자녀들(상당수 장애인등)과 같이 살 수 없기 때문에 못간다.

일부는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양로원 보다는 자유로운게 좋다며 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양로원이 아닌 임대주택에 산다는 이유로 소외돼야 한다. 생계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연말연시면 오는 이웃돕기에서도 비켜나 있다.

보호가 필요한 재가노인은 서울에만 2만5,152명(97년말). 치매환자가 5,312명, 중풍 1만2,492명, 와상(臥床·침대에 누워 생활해야 하는 상태) 노인이 7,348명이다. 독거노인은 5만2,922명. 이중 할머니가 4만1,962명에 이른다.

노원구 상계3동 노인의 집. 95세 최봉신 할머니와 김분임(80), 윤희옥(68) 세할머니가 모여사는 곳이다. 서울시 예산으로 주택을 전세내 할머니들을 살게한 곳이다. 각기 방 하나씩. 식사는 각자가 해결하고 전기세와 수도세 등은 분배해서 낸다.

최 할머니는 생활보조금 15만원과 노령수당 5만원, 그리고 취로사업에 나가 버는 돈으로 살아간다. 아들이 병으로 죽는 바람에 있던 재산 모두 털어넣고 떠돌다 여기로 왔다.

그의 취로사업터는 이웃 동네 주택가의 간이 공중화장실. 하루에 한번씩 나가 청소한다. “가까이서 휴지 주우면 아는 사람 만나 부끄러운데, 다른 동네서 화장실 청소하니 조용하고 좋다. 방안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 행복했던 시절과 비참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사라지곤 한다. 그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한 세기를 온통 살고, 이제 새 세기를 맞는 최 할머니는 피곤해 보였다. 기자는 이것 저것 더 묻는 것이 죄될 것 같아 새해인사를 드린 뒤 슬그머니 빠져 나와야 했다.

배연해·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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