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120세까지 살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여성 74세, 남성 69세인 점에 비춰보면 꿈같은 얘기다. 오래 살기로 이름난 일본인 평균수명 84세, 스칸디나비아반도 3국의 84세도 못 미치기는 마찬가지다.

대부분 질병에 걸려 ‘잠재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사망하고 만다. 게다가 일본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특정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 유전자 변이를 가지고 있기까지 하다. 하지만 자신이 언제 무슨 병에 걸릴지 알 수 있다면 잠재수명을 채우는 것이 꿈만은 아니다. 예방의학의 목표에 다가가는 길이 조금씩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몇해 전 시카고의 한 병원에서 MEM2라는 암 관련 유전자 변이에 양성반응을 보인 여성인 패티의 갑상선을 없앴다. 갑상선 암을 앓은 아버지로부터 변이된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가 자식에게 변이된 유전자를 물려줄 확률은 50%, 의사는 패티와 그 형제들에게 유전자 검사를 받도록 했고, 그 결과 패티는 변이된 유전자를 보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의사는 갑상선 제거를 권유했다. 수술과정에서 확인 결과 패티의 갑상선에는 작지만 치명적인 암이 이미 자라고 있었다. 그뒤부터 패티는 갑성선 호르몬을 대신하는 알약을 하루에 한알씩 먹으며 건강하게 살고 있다.

최근 미국 의학계에 보고된 이 사례에서 유전자 검사를 통한 예방의학의 빛을 볼 수 있다. 현재 알려진 유전성 질환은 4,000여종. 이중 유전자 구조가 밝혀진 것은 730여종이다. 이에 대해서는 유전자 검사를 실시할 수 있다.

이중 80여가지는 이미 미국에서 임상에 이용되고 있다. 자신에게 유전질환이 있을 수 있다는 의심을 품은 사람이 유전자 검사를 받으면, 질병에 걸릴지 미리 예측할 수 있는 유전성 질환의 수가 80여가지나 된다는 뜻이다. 90년 시작된 ‘인간게놈프로젝트’(The Human Genome Project)는 그 수를 점점 늘려나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암은 유전자 검사를 통해 유전자 변이가 발견되면 80~90%이상이 발병된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질병의 유전자 변이가 밝혀졌다고 해도 예방법과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유전자 검사가 예방보다는 조기 치료를 가능하게 한다고 보면된다. 대장암을 조기 발견하면 수술부위를 암세포가 퍼진 곳만이 아니라 처음부터 넓게 잡아 재발가능성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대장 안에 수백개의 작은 혹이 관찰되는 가족성 요종증이 발견되면 대장암 발생 확률은 100%에 이르는데, 조기 수술은 대장암 예방의 지름길이다.

외국에서는 대장암 유전자 변이가 발견된 사람에게 채식을 권해 발병을 막는데 성공했다는 임상보고도 나오고 있다. 특히 채식을 하되 반은 생것으로, 반은 익혀서 먹으면 효과가 더욱 크다고 한다.

유방암의 경우 85%이상이 유전되는 질환으로 밝혀진지 오래다. 재미있는 사실은 미국의 한 임상에서 딸의 직업이 스튜어디스이고 담배까지 피운다면 유방암에 걸럴 확률이 거의 100%에 이른다는 점이 보고된 것이다.

유방암의 유전자 변이가 200명에 1명꼴로 나타나는 점에 비춰, 담배를 피우거나 스트레스가 심한 여성은 유전자 검사를 한번쯤 받아보는 것이 좋다는 게 유전학자들의 충고이다. 간암과 만성신부전, 남성 불임증도 가족중 걸릴 적이 있을 경우 다른 가족들에게 나타날 확률이 높은 것으로 유전자 검사결과 밝혀졌다.

치매(알츠하이머) 역시 부모가 치매 유전자를 갖고 있으면 자식도 90세 이전에 90%이상이 치매에 걸린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유전자 검사가 이룬 쾌거의 하나는 대머리와 심장병의 유전자변이 구조가 거의 똑같다는 사실을 발견한 점이다. 한 임상보고에 따르면 대머리 남성이 55세 이전에 심장병에 걸릴 확률은 그렇지 않은 남성보다 20배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가족이 심장병을 앓았던 적이 있는 대머리 남성은 더욱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질병의 유전자 변이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해도 어떻게 예방할 것이냐는 문제가 남는다. 아직까지 기존치료법을 대체할 수 있는 혁신적인 유전자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유전자 검사는 만능이 아니라, 정확한 연관성은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임상 결과 상당한 효험이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동양의학 등과 접목해야 한다는 의견이 높아지고 있다.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