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층 사이인데, 몸값이 1억원 이상 차이가 납니다”

LG정유, LG캐피탈, LG텔레콤 등 LG그룹 계열사들이 몰려있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LG강남타워’는 층별로 분위기가 크게 다르다. 18층부터 20층에 사무실이 있는 LG텔레콤 직원들은 얼굴에 희색이 만면하지만, 21~24층을 사용하는 LG캐피탈 직원들의 얼굴은 무덤덤하다.

똑같은 LG그룹 계열사이면서도 이처럼 분위기가 다른 이유는 뭘까. 결론부터 말하면 ‘돈’때문이다. 정보통신 관련업체들의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 상장조차 안됐지만 LG텔레콤 주식은 장외시장에서 15만원이 넘는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당연히 우리사주를 받은 LG텔레콤 직원들도 대부분 억대부자가 되었다. LG캐피탈의 한 직원은 “어쩌다 텔레콤 직원과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면 괜히 화가 난다”고 말했다.



계열사 다른 입사동기는 억대부자

평범한 ‘80% 샐러리맨’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깊어가고 있다. 똑같이 그룹공채 시험을 거쳐 입사했지만, 배치된 계열사가 틀리다는 이유만으로 자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재산이 불어난 입사동기를 바라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다.

평범한 샐러리맨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는 것은 계열사간의 주가차이뿐만이 아니다. 나이에 따라 월급을 주던 ‘연공급(年功給)’대신 능력에 따라 월급이 정해지는 ‘연봉제’가 실시되면서 같은 직급의 동료끼리도 월급이 평균 10%이상 차이가 난다.

실제로 1999년부터 연봉제를 도입한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평균 3,500만원을 받는 과장급의 경우 고과성적이 가장 우수한 직원과 가장 나쁜 직원의 연봉 차이는 약 700만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상대적 박탈감’이 평범한 80%의 샐러리맨들에게 정신적 스트레스를 안겨주고 있다면 구조조정으로 더욱 높아진 업무강도는 이들을 육체적으로 괴롭히고 있다.

J은행 영업부 K과장은 자신의 업무가 10년전과 거의 바뀐 것이 없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IMF체제 이후 대규모 인원삭감과 신규 채용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그전 같으면 말단 행원이 해야할 일도 직접 해야 하기 때문이다. K과장은 “10년전만 해도 은행 과장이 복사를 하고, 팩스를 보내고, 대출신청서를 직접 작성하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며 “옛날 생각을 하면 세상이 살기가 날로 어려워지고 있음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S그룹 계열사에 근무하는 A씨도 자신의 업무이외에 팀장의 컴퓨터 작업을 대신해주느라 녹초가 되어 퇴근하기가 일쑤다. IMF체제 이후 신입사원 채용이 끊겨 벌써 2년째 자료정리에서 복사까지 허드렛일을 하고 있지만 ‘컴맹’팀장을 모시고 있는 탓에 일거리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이다. 그는 “하루 12~14시간의 격무에 시달리고 나면 온몸에 힘이 쭉 빠진다”고 말했다.



좁아지는 승진기회, 업무환경 갈수록 악화


갈수록 좁아지는 ‘승진의 기회’도 회사에 남아있는 평범한 샐러리맨들을 좌절시키고 있다. 기업에 따라 약간씩 사정이 다르지만 과거에는 대리로 승진한뒤 7년에서 8년이면 과장으로의 승진이 보장됐지만 요즘에는 ‘조직 슬림화’로 상위직급이 대폭 축소되면서 완전히 다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L그룹 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대리로 승진한뒤 평균 10~11년이 흘러야 과장승진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또 “연봉제가 보편화하면서 인사고과도 까다로워져 업무외에 토익, 토플 등에서 일정 점수이상을 받지 못하면 승진은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평범한 직장인들의 업무환경이 갈수록 악화하면서 ‘미래가 보이지 않는’ 회사를 하루라도 빨리 그만두기 위해 일과후나 주말을 이용해 부업을 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이들은 궁극적으로는 창업을 목표로 선후배가 운영하는 벤처기업에서 일을 배우거나 회사 몰래 소규모 인터넷 사업을 벌이는 등 ‘샐러리맨 탈출’을 위한 반란을 준비하고 있다.

바야흐로 세상이 바뀌면서 한국에서 샐러리맨으로 살아가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조철환·주간한국부 ch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