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외교적 대상은 누구일까.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합창하고 있는 러시아? 국가통일의 마지막 숙제인 대만? 그러면 일본?

아니다. 중국이 가장 노심초사하는 외교대상은 탈냉전기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이다. 극동에서 갖고 있는 전략적 무게와 중국에 대해 행사하는 경제적 영향력 등에서 미국을 능가할 나라가 없다.

미국만큼 자국의 전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방국의 지지를 동원할 수 있는 나라도 없다.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위해 미국과 13년간 샅바싸움을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러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이런 점에서 미국과의 보다 큰 거래를 위한 지렛대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건설적 동반자 관계유지 원해

미국은 중국에게 ‘밉지만 어쩔 수 없이 손을 잡아야 하는 대상’이다. 21세기에도 이러한 관계의 틀은 변하기 어렵다. 지난해 12월15일 인민일보는 탕지아쉬엔(唐家璿) 중국 외교부장을 회견하고 장문의 기사를 실었다. 99년 중국외교를 돌아보고, 21세기 외교방향을 전망하는 기사였다. 이 기사는 중국과 각국의 관계를 대미, 대러시아, 대유럽, 대일본 등의 순으로 엮었다. 이중 대미관계에 관한 기사분량은 대러시아 관계의 3배에 달했다.

唐부장의 말. “21세기를 전망할 때 중·미관계는 기회와 도전을 동시에 맞고 있다. 건전하고 안정, 발전적인 중·미관계를 구축하는 것은 양국 국민들의 근본이익에 부합할 뿐 아니라 세계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데도 유리하다. 21세기 양국이 건설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란 목표를 달성하고, 계속적인 진전을 얻기 위해서는 쌍방이 장기적인 전략적 견지에서 관계를 처리해야 한다. 아울러 미국은 지금까지 중·미간에 서명된 외교적 공약을 준수해야 한다.”

덕담같이 들리는 이 말속에는 두가지 시사점이 함축돼 있다. 우선 양국의 협력이 필연적이라는 점이다. 또 하나는 미국이 ‘하나의 중국’원칙을 약속한 ‘상하이(上海)코뮤니케’등을 준수하지 않는다면 양국의 협력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미국은 과연 이같은 중국의 희망을 만족시킬까. 미국의 큰 틀은 이미 짜여져 있다. 클린턴 대통령이 추진해 온 ‘포괄적 개입정책’은 중국을 적이 아닌 동반자란 기반 위에 서있다. 이 정책은 미국의 주류를 이루고 있고, 흐름은 21세기에도 크게 바뀌지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의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올 3월 대만 총통선거와 올 연말 미국 대통령선거가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동북아 지역에 배치하려는 전역미사일방어(TMD)체제도 중국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


부시2세는 대미정책의 걸림돌

지난해 7월 리덩후이(李登輝) 대만총통의 ‘양국론’발언으로 재개된 양안긴장은 총통선거를 전후해 어떤 양상으로 비화될 지 알 수 없다. 여기다 미 대선전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조지 부시 텍사스 주지사가 대중 강경노선을 피력하고 있다. 부시 후보의 태도에 고무된 대만이 예상외의 강수를 두고, 중국이 여기에 강경대응하면 어떻게 될까.

미국은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다. 또다시 항공모함을 대만해협으로 파견하는 시나리오가 재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이 가장 싫어하는 ‘하나의 중국’원칙을 미국이 다시 깨고 나오는 상황이다.

그래서 중국에게는 부시 2세가 내심 고민거리다. 부시 후보는 클린턴 대통령의 대중국 정책이 지나친 양보로 일관했다며 공격하고 있다. 반면 대만에 대해서는 동정적인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물론 선거운동 기간의 발언들이 집권 후 연속되리란 보장은 없다. 대중국 강경론자였던 과거의 클린턴 후보가 온건론자로 돌아섰던 예도 있다.

동아시아에 TMD가 배치될 경우 중국은 전략적으로 크게 위축된다. 제한적인 미사일 전력의 보유효과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특히 TMD가 대만에도 배치된다면 중국은 좌시할 수 없다. 미국이 대만문제에 대한 개입의사를 분명히 한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중국 지도부는 경제발전에 국가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영토주권이 보장된 전제하에서다. 중국이 영토주권을 위해 경제발전을 희생할 수 있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 따라서 대만문제는 21세기에도 중·미 관계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로 남아 있을 것이다.


협력, 대립 양손에 쥔 정책

지난해 12월30일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지는 21세기 중국군의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함축적으로 보도했다.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이 “중국군은 강대국과 첨단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고 중앙군사위원회가 이에 자신감을 피력했다는 것.

이 신문은 또 ‘중국군 지도부가 2010년까지 중국군 전력을 미국, 러시아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끌어 올리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중국이 미국과의 협력 뿐 아니라 대립에 대해서도 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1980~90년대 20년간의 중·미관계는 21세기 양국관계를 조망할 수 있는 거울이다. 89년 천안문 사태와 인권문제, 지적재산권 해적행위, 군사기술 스파이 행위 등을 둘러싸고 곡절을 겪었지만 양국관계는 전반적으로 발전했다.

그 과정에서 양국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포커판에 거는 판돈의 규모를 늘려 버렸다. 중국이 세계경제에 합류하는데 미국의 도움은 필수적이라면, 미국기업에게 중국시장은 놓칠 수 없는 뉴 프론티어가 됐다. 21세기 양국관계가 때때로 긴장되더라도 판이 깨질 수 없는 이유다.

배연해·주간한국부 기자


배연해·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