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에 불륜이 넘쳐난다.

1999년 연말 개봉한 <해피엔드>(명필름 제작·정지우 감독)와 <세기말>(태흥영화 제작·송능한 감독)에 이어 8일 개봉한 <거짓말>(신씨네 제작·장선우 감독), 15일 선을 보이는 <주노명 베이커리>(시네마서비스 제작·박헌수 감독)까지. 각각의 영화는 나름대로 다른 시선으로 불륜을 다루며 관객몰이에 성공하고 있다.

<해피엔드>의 불륜은 행복. 실직자 남편 최민식과 함께 두살난 딸을 키우고 있는 유부녀 전도연은 가정의 화목함과 편안함을 포기할 수 없지만 첫사랑인 주진모와의 달콤한 욕망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아내 전도연의 불륜을 알게된 최민식 역시 전도연이 돌아와 가정의 행복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반면 주진모는 10년째 손가락에서 빼지 않은 반지의 주인공 전도연이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바란다. 세 사람은 각기 다른 행복을 꿈꾼다.



아내의 불륜 <해피엔드> 벌써 50만

초점이 맞춰질 수 없는 세 사람이 바라는 행복의 마지막은 파멸. 아내에 대한 배신감과 증오에 가득 찬 남편 최민식은 결국 아내를 살해하고 교묘히 주진모에게 그 살인을 뒤집어 씌운다. 그렇다고 사회와 법의 잣대로 불륜녀를 매도하는 방식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의 전도연을 스크린 가득히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

결혼이라는 사회 제도가 아닌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전도연의 처지를 너그럽게 이해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두 마리 토끼를 쫓던 전도연의 꿈을 빼았는다.

<해피엔드>는 이미 서울 관객 50만명을 넘어섰다. 관객 몰이를 주도한 연령층은 다름아닌 불륜의 주체랄 수 있는 30_40대 중년들이다.

<세기말>은 불륜을 도덕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 바람둥이 대학강사의 이중성을 보여주기 위해 불륜을 끌어들인다.

총 4개의 챕터 가운데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강사 차승원은 강의실에서 지난 100년의 왜곡된 역사가 도덕관념이 없는 기성세대들의 책임이라며 시니컬한 어투로 아버지 세대를 싸잡아 비난한다. 하지만 그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너무나 도덕적인 강단위의 차승원은 문란녀로 소개되는 잡지사 기자의 대낮 정사 유혹에 기다렸다는듯이 기뻐하며 대답한다. “당신의 제안을 거부할 만한 물리적인 힘이 내게는 없네요.” ‘에로틱한 우정’이라고 부르는 정부와의 섹스에도 사랑은 없다.

결국 도덕군자처럼 행동하던 차승원의 위선은 법과 도덕적인 측면에서 단죄당한다. 술자리에서 선배들에게 자신의 바람기를 자랑하듯 떠벌리지만 아내로부터 간통죄로 고소당한 후 용서를 빌어보지만 비굴하기만 하다.



궁금해서 더 많은 관객 끌려

<거짓말>의 불륜은 단순한 유희. 두 번에 걸친 등급 보류끝에 개봉된 영화의 주인공은 30대 유부남 조각가와 여고생이 주인공. 폰섹스를 나누던 이들은 단지 섹스를 하고 싶어 만나고 섹스로 대화를 나눈다. 욕망은 점점 강도가 높아져야함을 증명하듯 이들의 섹스에는 회초리가 동원되더니 야구방망이와 도끼자루까지 등장한다. 국내 영화에선 금기시되던 새디·마조히즘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이들의 누드 정사신은 베니스 영화제의 주목을 받았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선 10만원이 넘는 암표가 팔리는 등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베니스 영화제의 관심이라는게 작품성도 인정을 받았지만 이보다는 당시 영화제의 주제인 섹스코드에 부합했고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실질적인 검열에 따른 ‘아직도 검열당하는 영화가 있는가’라는 세계 영화계의 의아함이 앞섰던게 사실이다.

또한 일반 관객들의 관심 또한 좋은 영화라는 관점보다는 ‘궁금한 영화’에 쏠리고 있다.

<주노명 베이커리>는 불륜도 로맨스일 수 있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옆집 남자 여균동과 사랑에 빠진 아내의 낭만을 지켜주기 위해 그 남자의 부인 이미연을 유혹하던 최민수가 사랑에 빠진다. 새로운 형태의 부부 스와핑이 소재다.

이 영화의 매력은 이 스와핑이 성적 만족을 위한 느낌보다는 로맨스 혹은 사랑이라는 점에 있다. 물론 말도 안되는 구도다. 어떤 남자가 아내의 한숨을 잠재우기 위해 딴 남자를 애인으로 용인할까. 하지만 영화는 현실과 유머를 잘 버무려 놓았다. 30대의 불륜을 유쾌하게 다루려 애쓴 노력이 잔잔하게 배어있다.

불륜 소재 영화의 범람은 지난 해까지만 하더라도 ‘세기말 증후군’으로 치부되어왔다. 하지만 새 천년 벽두에도 여전히 굵직굵직한 영화의 소재로 등장하고 있는 터여서 단순히 세기말 증후군만으로 몰아가기에는 모자라다.

물론 세기말에 기획되었던 영화의 세기초 개봉이라고 우긴다면 일면 타당성도 있어보이지만 사회의 전반적인 정서 변화와 각 영화가 불륜을 다루는 관점이 서로 다르다는 관점의 다양성에 무게가 실린다.


관객들의 심리 파고든 영화

지난 해 모 여론 조사에 따르면 30대 기혼자 가운데 30% 이상이 이성 친구를 가지고 있다고 답했고 SK텔레콤이 네티즌을 상대로 조사한 설문조사에서는 기혼자 가운데 29%가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의 사이버 결혼을 찬성했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의 불륜을 두려워 하면서도 자신은 불륜을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관객들의 마음을 영화는 다양한 관점으로 파고들고 있다. 예전처럼 천편일률적으로 불륜 행각과 행위의 불법성에 초점을 맞추는게 아니라 불륜의 접근방식에 많은 차이를 보인다. <해피엔드>, <세기말>, <거짓말>에 이어 <주노명 베이커리>까지 흥행이 이어진다면 불륜 영화의 전성기로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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