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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반란] 정치가 뭐길래 금배지에 목 매나

정치인처럼 많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지망생이 쇄도하는 직업도 드물다. 나라와 시대를 불문하고 정치인이 국민의 신망과 사랑을 받는 경우는 손으로 꼽을 정도지만 가산을 탕진하면서까지 금배지의 꿈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들의 혐오감은 이미 인내의 한계를 넘었지만 정작 스스로 자리를 박차고 떠나는 정치인들을 찾기란 쉽지 않다. 얼마나 좋은 자리이길래 그렇게 욕을 얻어먹으면서도 공천을 받으려, 표를 얻으려 밤낮을 구분하지 않고 뛰는 것일까.



국정은 뒷전, 지역구관리에 생사걸어

한때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전직 정치인들은 국회의원은 보람있는 직업이라는 점과 그러나 정치풍토는 너무나도 척박하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서울고·서울대 문리대 출신의 탤런트 이순재씨. 동료였던 이낙훈씨의 권유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이씨는 13대 총선때 중랑갑에서 근소한 표차로 낙선했지만 14대 총선때 당선돼 4년간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다 미련없이 본업으로 돌아갔다. 이씨는 “국회의원은 직업이라고 규정하기 힘들 정도로 신성한 업무지만 현행 정치제도는 아무리 좋은 뜻을 가진 사람도 제역할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소선구제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소선구제하에서는 지역구 관리가 생명이기 때문에 국회의원이 너무나도 초라해질 수 밖에 없다. 매일 지역구민들의 경조사에 찾아다니고 수천명에 이르는 지역책임자들 관리해야되는데, 이게 다 돈덩어리다. 게다가 선거때만 되면 향우회다 동창회다, 왜그렇게 모임은 많이 생기는지…, 향우회라고 만들어지는데 그 사람들 고향이나 한번 가봤는지 의심스럽다. 소선구제하에서는 전부가 아니면 전무하다. 따라서 지역감정에 의지하려는 유혹을 뿌리치기가 힘들다. 공천부터 받아야 하니까 보스에게 충성하지 않을 수 없다. 구조적으로 국회의원이 제역할을 하기 힘든 것이다.”

이씨는 지역구민들의 경조사에 찾아다니다가 어떤 사람에게서 “국회의사당에서 정책을 개발하고 국정을 감시해도 시간이 부족할 사람이 여기와 있으면 어떡하냐”는 질책을 듣고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한다. 지역구관리에 시간을 대부분 소진하는데다가 유급보좌관 5명중 여직원과 운전기사를 제외한 3명으로 심도있는 정책개발은 아예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씨는 재선가능성은 있었다고 판단했지만 당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논리와 토론이 통하지 않고 보스를 의식해 몸싸움이 벌어지는 국회의 모습에 질려 본업인 연기자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씨는 “지방자치제가 시행됐는데도 국가차원에서 국정을 책임져야 할 국회의원이 지역구에 생사를 걸고 매달리게 만드는 소선구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몇차례나 반복했다.



“지역구 생각만 하면 정치할 맛 싹가셔요”

14대때 국회의원을 지낸 코미디언 이주일씨도 지역구 관리의 어려움이 정치권을 떠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토로했다.

이씨는 “처음에는 코미디언이라고 다른 의원들이 우습게 보고 무시하는 게 힘들었지만 그보다도 지역구관리에 데여서 하루 빨리 정치권에서 나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챙겨야 할 경조사가 왜 그렇게 많고 국회에 있다보면 당장 큰일이 날 것처럼 지역구에서 수시로 불러 내려 부랴부랴 달려가보면 그냥 행사에 얼굴이나 좀 비춰주고 같이 놀자는 것이다.

이씨는 “지금도 국회의사당 앞을 지날 때마다 정치에 대한 그리움이 생기고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지역구관리 생각만 하면 그런 마음이 싹가신다”고 말했다.

한국학술진흥재단 박석무 이사장의 해석은 조금 다르다.

박이사장은 13·14대 당선돼 줄곧 의정활동 상위권에 들었지만 15대때 국민회의행을 거부하고 민주당 이름으로 지역구인 전북 무안에서 출마했다가 낙선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박이사장은 “국회의원들의 자질과 정치제도도 문제지만 유권자들도 정치수준을 뒤떨어지게 만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공천을 엉터리로 하더라도 유권자들이 찍지 않으면 그만아니냐. 수준미달의 의원들을 국회에 보낸 유권자들도 바뀌어야 하고 국회의원의 부정적인 모습만 부각시키고 긍정적인 활동은 축소해온 언론도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박이사장은 선거를 직접 해보면 일부 유권자들의 혼탁한 모습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고 털어놓았다.



한번 맛 들이면 결코 뗄수없는것

“‘국회의원 후보는 선거때가 되면 불붙은 돌도 삼킨다’는 말이 있다. 하물며 유권자가 돈을 요구하면 그걸 어떻게 거부할 수 있겠나. 물론 자기가 나서서 돈을 돌리는 후보도 있다. 정치란게 정치인의 자질뿐만 아니라 유권자들의 자질도 함께 반영하는 거라고 본다. 의정활동을 하면서도 이익단체들의 극단적인 집단이기주의가 가장 힘들었다.”

이번에 국민회의가 주도하는 신당인 새천년 민주당에 무안지구당 조직책 신청을 한 박이사장은 “지역구가 지역구인 만큼 민주당에 신청을 하게 됐다”며“국회의원은 국민의 소리를 대변하고 법을 만들고 국정을 감시하는 등 잘만 하면 더없이 보람있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박이사장의 말대로 국회의원은 보람 때문이든, 권력 때문이든 매력적인 직업임에는 틀림없다. 정치지망생들은 수도 없이 많지만 지금까지 정계를 은퇴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나이나 건강, 공천탈락 등으로 더이상 버틸 수가 없어 반강제적으로 나간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 정치풍토에 염증을 느끼고 나간 사람은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다. 몇몇 연예인 출신들만이 그나마 스스로 정치권을 떠난 정치인들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정치인퇴출은 유권자들의 손에 달린 셈이다.

송용회·주간한국부 기자 songy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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