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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2차구조조정] 금융권에 칼바람이 다시 분다

한국 근대소설을 완성한 사람으로 꼽히는 빙허(憑虛) 현진건의 대표작은 ‘빈처(貧妻)’이다. 빈처는 일제의 문화침략이 한창이던 1920년대를 배경으로 돈없는 지식인인 주인공이 자신의 ‘가난한 부인’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을 사실적 문체로 표현한 작품이다.

대부분의 소설과 마찬가지로 ‘빈처’에도 인물간의 갈등구도가 설정되는데 주인공인 ‘나’와 갈등을 겪는 인물은 처형의 남편인 ‘T’이다. 현진건은 ‘T’를 ‘나’와는 반대로 경제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세속적인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경제적으로 성공한 인물로 등장하는 ‘T’의 직업이 ‘은행원’이라는 점이다. 요컨대 현진건이 살던 1920년대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경제적으로 성공한 대표적 직업은 은행원이었던 것이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은행원이라는 직업은 현진건이 ‘빈처’를 탈고하던 80년전은 물론이고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평생이 보장’되는 훌륭한 직업이었다.


‘은행불사’신화 깨지다

그러나 80년 넘게 이어져 내려오던 은행원들의 이같은 자부심은 1998년 ‘금융권 구조조정’이 이뤄지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외환위기로 국내 금융기관들의 숨겨진 부실이 드러나면서 ‘은행불사(銀行不死)’의 신화가 깨지고 2만명이 넘는 은행원들이 한꺼번에 거리로 내몰렸다.

1998년 6월 동화, 경기, 충청은행 등 5개 은행을 퇴출시키면서 시작돼 그해 9월 완결된 정부의 ‘1차 금융권 구조조정’작업은 엄청난 회오리를 몰고 왔다. 우선 결코 망하지 않을 것 처럼 보였던 은행중 5개 은행이 정리됐고, 상업·한일은행과 보람, 장기신용은행 등은 다른 은행으로 합병됐다. 종금사, 상호신용금고, 신협, 새마을금고 등 군소 금융기관까지 따진다면 1999년 3월말까지 모두 167개의 금융기관이 문을 닫았으며 이 과정에 42조6,000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그렇다면 새천년을 맞은 금융권은 다시 한번 옛 명성을 찾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오’이다. 1998년에 벌어졌던 구조조정 작업에 ‘1차’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2000년에는 ‘2차 금융권 구조조정’이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1998년 ‘1차 금융권 구조조정’을 진두 지휘했으며, 1월13일 개각으로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긴 이헌재 장관은 금융감독위원장 재직시절이던 지난해 12월 ‘2차 금융권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역설한 적이 있다. 이장관은 1999년 12월16일 금융연구원 초청 강연회에서 “정부가 나서서 강제하지는 않겠지만 은행을 포함한 금융기관의 추가 합병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장관은 “제2차 금융구조조정이 전개돼 합병바람이 다시 불 것이라는 풍문을 듣고 있지만 정부가 직접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제한뒤 “금융기관이 자력으로 시장의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자발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서야 하며 합병이 자율적으로 이뤄진다면 금융산업이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기관 추가퇴출 예상

사실 금융권에서는 2000년 ‘2차 금융권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대우사태에 따라 과도하게 부실채권에 노출된 몇몇 종합금융회사의 경우 이미 심각한 유동성압박에 시달리고 있다”며 “대우사태 처리과정에서 이들 금융기관의 추가적인 퇴출도 점쳐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올해 1월초부터 금융권에서는 일부 종금사의 자금난과 관련된 소문이 급속하게 퍼져 나가고 있다. 즉 대우그룹에 콜자금을 중개했던 모 종금사가 지난해 연말이후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으며 최근에는 사실상 ‘1차 부도’상태라는 것이다. 종금업계의 한 관계자는 “1월11일 오후부터 기관투자자 딜러들 사이에 ‘종금사 부도설’이 급속히 퍼지면서 이날 종금사 주가가 일제히 하한가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일부 종금업계가 겪고 있는 유동성 압박이 ‘2차 구조조정’의 외생변수라면 외국계 금융기관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국내 은행들의 추진중인 자발적 합병은 내생변수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제일은행을 인수한 뉴브리지-캐피탈, 소매금융 강화를 선언한 시티은행 등 외국자본과 경쟁하려면 우량은행 끼리의 자발적 합병이 필요하다는 것이 금융권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시중은행 합병과 관련해 수많은 소문이 퍼지고 있다”며 “그 중에서도 한빛-조흥, 외환-국민, 신한-하나-한미 등의 합병설이 가장 많이 떠돌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또다른 은행 관계자는 “최근 다른 은행과의 합병설이 나도는 H은행의 경우 ‘금융그룹’을 선언, 자산규모를 급속히 늘려가고 있는 것도 합병협상 과정에서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사전작업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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