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과 한미은행’

이들 두 은행은 공통점이 많다. 우선 두 은행 모두 ‘외자계(外資係) 은행’으로 출범했다. 신한은행은 1981년 재일동포 상공인들이 출자해 설립했고, 한미은행은 1983년 미국계 은행인 ‘BOA(Bank of America)’가 50%의 지분을 출자해 설립됐다. 신한은행과 한미은행은 또 금융권 구조조정 이후 ‘우량은행’으로 급부상했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하지만 불과 3년전까지만 해도 신한은행과 한미은행은 각각 ‘한국화에 성공한 은행’과 ‘그렇지 않은 은행’으로 비교될 정도로 극과극으로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신한은행은 초창기부터 ‘일본식 경영’ 특유의 친절함을 내세워 기존 시중은행을 급속히 따라 잡았지만, 한미은행은 ‘미국식 금융관행에 따른 보수주의적 대출심사로 한국 금융시장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금융시장에 미국식 패러다임 정착

그렇다면 3년전까지만 해도 국내 은행권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한미은행이 ‘우량은행’으로 갑자기 떠오른 이유는 뭘까. 결론부터 말하면 IMF체제로 한국 금융시장의 패러다임이 미국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같은 패러다임의 변화는 2000년 한국 금융시장에서 벌어질 ‘제2차 금융권 구조조정’의 방향 역시 미국에서 진행중인 ‘대형화’와 ‘겸업화’임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미국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1990년대 이후 ‘큰 것이 아름답다’, ‘중간규모 은행들은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라는 말이 성행하면서 대형 금융기관의 합병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대형 은행의 합병바람이 이어지면서 1997년도에는 그해 전세계에서 벌어진 10대 인수·합병(M&A) 사례중 4건이 금융기관의 합병일 정도였다.

‘대형화’추세보다는 뒤늦게 시작됐지만 금융기관의 ‘겸업화’추세도 지난해말을 계기로 급물살을 타고 있다. 1999년 10월22일은 미국 금융기관이 ‘업종분리’라는 족쇄에서 해방된 날이다. 이날 미국 의회 지도자, 행정부 및 연방준비은행의 고위관계자들이 은행, 보험, 증권사들이 서로 다른 업종으로 진입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시킨 ‘글래스 스티걸법(Glass Steagal Act)’을 개정하기로 의견일치를 봤다.

‘글래스 스티걸법’은 대공황 직후인 1933년에 제정된 법이다. 당시 미국 정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은 은행들에게 증권업무를 허용한 것이 대공황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증권인수업무를 병행한 은행들이 증권 투자자들에게 방만하게 대출하고, 주식투기를 일삼은 것이 1929년의 주가 대폭락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업종간 분리’에 따른 생산성 하락으로 유럽계 금융기관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며 지난 25년동안 3억달러의 로비자금을 뿌린 미국 금융기관들이 마침내 장벽을 무너뜨린 것이다.


선도은행 3~4개 정도로 정리될것

LG경제연구원과 삼성경제연구소는 미국 금융산업의 ‘대형화’,‘겸업화’추세는 한국에서도 그대로 답습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삼성경제연구소는 ‘금융구조조정 이후의 금융산업 변화 전망 및 대응방안’보고서에서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독자적 금융정책의 한계를 인식하고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기조를 전환, 장기적으로는 은행, 증권, 보험의 핵심업무를 동일한 금융기관에서 영위할 수 있는 유니버셜 뱅킹제도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한편 금융권에서는 ‘대형화’, ‘겸업화’가 진행될 경우 국내 금융시장은 은행, 종금, 증권, 보험업 등 각 권역별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대형 금융기관과 전문 금융기관 등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먼저 은행권의 경우 현재 시중은행, 지방은행으로 양분된 구도가 선도은행, 2선은행(Second Tier Bank), 지방은행 등으로 3분될 전망이다. 선도은행의 경우 한빛, 조흥, 외환, 주택, 국민, 신한, 하나, 한미은행 등 기존 대형은행들의 자발적 인수·합병으로 3~4개 정도로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2선은행으로는 선도은행에 진입하지 못한 기존 대형은행과 제일, 서울, 평화은행이 특화전략을 펼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방은행은 상당수 은행이 인수·합병을 거쳐 재편되어 2~3개 정도로 그 숫자가 줄어들 전망이다.


증권업계도 대형·특화로 양분

증권업계 역시 대형증권사와 전문·특화증권사로 양분될 것이 확실하다. 전문가들은 “IMF이후 증시열풍이 불면서 1999년 증권회사들의 수지가 크게 개선됐으나 이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며 “앞으로 증권업계는 규모의 경제와 영업력을 갖춘 소수 대형 증권사와 일부 특화업무만을 전문으로 하는 증권사로 양극화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1975년 증권사의 수수료가 자유화한뒤 수수료 인하경쟁으로 업계가 재편됐는데, 1970년 기준 ‘10대 증권사’중 1999년에도 살아남은 회사는 메릴린치와 골드만삭스 뿐이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보험업계와 신용카드·리스·할부금융 등 여신전문업계도 인수·합병과 퇴출작업을 거쳐 몇몇 대형회사만이 살아남는 형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반면 종합금융업계와 서민금융업계(상호신용금고, 새마을금고, 신협 등)는 업종자체가 소멸하거나 금융권내에서의 입지가 급격히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서민금융기관의 경우 은행이나 증권사에 비해 열세한 자산규모, 제한된 영업지역과 업무영역으로 다른 금융권에 비해 경쟁력이 절대적으로 밀리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조합원간의 유대관계를 통해 형성된 일부 조합형 금융기관을 제외하고는 ‘2차 금융권 구조조정’에서 자체 역량으로 생존할 수 있는 업체는 소수에 그칠 것이다.

IMF체제의 가장 큰 피해자인 종금업계는 업종자체가 소멸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기존 종금사들은 증권회사나 투자은행으로의 전환을 통해 생존을 모색하게 될 것이 확실하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조철환·주간한국부 ch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