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카슈랑스(Bankasurance·복합 금융상품)’, ‘사이버 금융회사’, ‘원스톱 금융’….

64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1, 2차 금융권 구조조정’으로 달라지게 될 한국 금융시장의 긍정적 미래상을 보여주는 단어들이다. 즉 IMF체제이후 진행중인 금융권 구조조정이 마무리되고, 한국의 금융산업이 바야흐로 세계 금융시장에 편입되고 난 뒤의 모습들이다.

금융기관을 이용하는 일반인들이 가장 먼저 구조조정을 실감할 수 있는 것은 ‘원스톱 금융’이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은행, 보험, 증권업무를 일일이 개별 회사를 찾아가 해결했으나 구조조정이 마무리되면 은행이나 보험창구에서 나머지 업무를 한꺼번에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이 1월14일 ‘금융회사 업무위탁 규정’을 제정, 은행과 보험·증권회사가 ‘비핵심업무’에서 제휴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은 ‘원스톱 금융’으로 향하는 중대한 첫 걸음이다.


구체화 될 금융의 겸업화

금감원의 이번 조치로 1월17일부터 은행은 예금에 보험상품을 가미하거나 보험회사는 시장금리에 따라 보험금액이 달라지는 변액상품을 개발, 판매할 수 있다. 또 은행점포에서 보험회사 직원이 나와 보험상품을 판매할 수 있고 증권회사가 은행점포 일부를 임대해 증권단말기를 놓고 주식매매 주문을 받는 영업소로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금감원은 은행법 등 현행 법률이 금융분업주의를 고수하고 있어 그 테두리내에서는 당장에 큰 변화가 어렵지만 이번 조치로 국내 금융기관들이 세계적 추세인 ‘금융의 겸업화’에 맞춰 사전대비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거래가 완전 전자화하는 것도 예상되는 변화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금융산업의 5대 트렌드’라는 보고서에서 금융 구조조정으로 전표, 인력, 점포위주의 금융거래가 전자매체를 통한 무전표, 비인력, 탈점포로 전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즉 금융거래가 ‘주고 받는(Give and Take)’개념에서 컴퓨터를 통한 ‘터치(Touch)’개념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금융거래의 전자화는 필연적으로 인터넷 금융거래를 확산시키고, 사이버 금융기관의 출현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전망이다. 이미 우리나라의 경우 인터넷 사이버증권 거래규모는 1999년 10월말 현재 408조6,000억원으로 전체 주식거래의 38.8%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사이버 증권거래 규모가 전체의 30%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세계 최고수준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또 이른 시일내에 사이버 금융서비스를 특화한 전문 금융기관들이 성행하고 은행, 증권, 보험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포괄하는 종합 사이버금융사가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업·금융기관이 증권사를 통하지 않고 사이버공간을 통해 자본을 조달하는 사례까지 나타난다는 것이다.

구조조정을 통해 한국에 상륙한 외국자본과 국내 토종자본의 경쟁도 일반인들에게는 금융 서비스의 수준을 높여주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은행권의 경우 제일은행을 인수한 뉴브리지 캐피탈이 전격적인 금리인상을 통해 토종자본에 대한 ‘일전불사(一戰不辭)’를 선언했는가 하면 토종은행의 대표주자인 주택은행은 IMG베어링, 동원·동부증권, 삼성화재 등과 전략적 제휴를 맺는 방법으로 외국자본의 진출에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권 구조조정이 긍정적인 측면만을 갖고 있지는 않다. 우선 ‘개인 신용도’가 떨어지는 중산층 이하 서민계층은 구조조정으로 제도권 금융기관으로의 진입자체가 더욱 어려워 질 가능성이 크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미국 금융기관의 경우 신용도가 떨어지는 고객에게는 대출은 물론 신용카드 발급까지도 원천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며 “IMF체제 이후 심화된 ‘부의 양극화’를 경험한 일반 서민들의 경우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부의 양극화 심화 부작용 우려도

한국 금융시장이 미국이 좌우하는 세계 금융시장에 완전히 편입됐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이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허용한 각종 외환거래 자유화조치에 따라 이미 주식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미국 금융시장에 대한 한국 금융시장의 동조화가 더욱 심해질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999년 4월 외환자유화 조치이후 홍콩·싱가포르 등 외국 금융기관들이 원·달러환율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즉 외환자유화로 역외선물환(NDF)시장에서 국내 은행의 외환거래가 허용되면서 NDF거래중 1개월 이내의 단기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이 78%까지 치솟았다. 한은 관계자는 “외국인들이 주로 거래하는 단기 NDF거래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원·달러환율에 대한 외국인들의 영향력이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한국 금융기관을 인수한 외국자본이 ‘선진 금융기법의 전수’라는 당초 목적과는 달리 고수익을 실현한뒤 단기간에 철수하는 것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제일은행을 인수한 뉴브리지 캐피탈이 인수시점으로부터 1년동안 발생하는 부실자산은 정부가 인수한다는 계약조건을 악용할 가능성도 매우 크다”고 말했다.

그는 “단기간에 고수익을 올려야 하는 투자펀드의 속성을 감안하면 뉴브리지 캐피탈로부터 한국경제가 얻는 것이라고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금융 패권주의

‘전세계 뭉칫돈이 미국으로 몰린다.’

세계적 금융 전문지인 ‘펜션 앤 인베스트먼트(Pension & Investment)’에 따르면 1990년 중반 이후 국제금융시장의 불안 가중과, 미국의 ‘강한 달러’정책 등으로 전세계 자본의 60%인 2조4,428억달러가 미국에 몰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일본(10.5%·4,144억달러)와 영국(9.1%·3,592억달러) 등의 미국의 6분의 1수준에 불과했다.

이처럼 미국으로의 자본집중이 심화하는 데에는 1990년대 이후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금융 패권주의’가 큰 몫을 하고 있다. 즉 세계에서 가장 많은 빚을 지고 있는 미국(1997년말 현재 미국의 대외 순채무는 1조달러, 총채무는 5조4,000억달러)이 자신들의 지고 있는 막대한 대외채무의 상환부담을 완화시키고, 수입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강한 달러’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세계경제의 기축통화로 미국 달러에 잠재적 경쟁상대로 떠오른 일본 엔화와 유로화(Euro)의 약세를 위해서도 인위적으로 미국 정부가 ‘강한 달러’정책을 펴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조철환·주간한국부 ch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