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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지를 찾아서] 경기도 용인 영보자애원

갈곳없는 부랑부녀자들의 보금자리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 묵리에 있는 영보자애원(원장 양인숙 수녀). 용인시에서 45번 국도를 따라가다 묵리쪽으로 들어서 좁은 비포장길을 따라 들어가면 산기슭에 오록이 자리잡고 있는 ‘소외된’ 부랑부녀자들만의 공간이다.

이곳에서 정신 연령 2세 이하의 ‘큰 아기’ 19명이 생활하는 아가방 1층. 입소 15년째인 박두두(35·여)씨는 아직도 팔이 고무줄에 묶인 채 보모들이 떠주는 밥을 먹는다. 아니 그냥 삼킨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어려서 음식을 씹는 방법을 못 배웠기 때문이다.

간질환자인 박씨는 손끝으로 자신의 귀를 마구 후벼 피를 내는 습관이 있다. 밤에는 수면제를 먹고도 잠을 못이뤄 밤새 동료들을 밟고 지나가며 말썽을 피우기 일쑤다. 한달에 한번 정도 간질 발작을 일으키지만 그래도 박씨는 다른 원생들에 비하면 상태가 좋은 편이다.

같은 아가방 동료인 신강남(33·여)씨는 능숙한 보모들조차 다루기 힘들 정도로 증상이 심각하다. 보통 하루 3~4번씩 발작이 오는데 소리를 지르고 울며동료들을 물어 뜯는다. 걷지 못해 기어다니는데 웬만한 청년들도 다루기 힘들 정도로 심한 발작 증세를 보인다. 신씨는 일반인 같으면 반알만 복용해도 하루 이상을 깨어나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수면제를 하루 4~5알씩 먹지만 별 효과가 없다. 하지만 발작이 멈추면 보모들을 마치 어머니처럼 따르는 순한 양으로 변한다.


1,030명 생활, 수녀님들의 헌신적 사랑

영보자애원은 갈 곳 없이 ‘버려진’ 부녀자 1,030명이 생활하고 있는 그들만의 보금자리다. 이곳 식구들은 보모일을 하고 있는 수녀 25명, 남자들인 관리과 직원 27명, 정신질환과 장애를 가진 18세 이상의 중장년 여성과 할머니들이다.

보호를 받는 식구들은 정신분열증(391명), 시각·청각 및 지체장애(156명), 정신박약(143명), 치매(114명), 간질(76명), 불구(66명), 간질(76명), 피부병(58명), 알코올중독(24명), 결핵(2명) 등을 앓고 있는 장애인들이다.

원생들은 질병의 종류와 경중(輕重), 연령에 따라 분리돼 생활한다. 65세 이상의 노인이 기거하는 안나동, 지체장애인들이 사는 보나동, 그리고 정박아와 결핵 보균자들의 아가방, 중환자들이 요양하는 입원실 등 다양하다. 보통 한방에 5명에서 15명 내외가 생활하고 있다.

방은 3평에서 10평 정도의 크기이며 장농 이외에 별다른 가구는 없다. 통로와 연결된 방문 중앙에는 유리창 대신 구멍이 뚫려 있다. 원생 대부분이 정신 장애인이여서 자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끔 옥상에서 투신하는 경우도 있어 옥상 벽에도 높은 철조망이 설치돼 있다.


의료부문 열악, 가장 안타까운 일

이곳에서 변하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모든 것이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흘러갈 뿐이다. 한달에 한두명씩 세상을 뜨는 원생이 나오곤 할 뿐이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지만 그래도 식사 시간은 가장 즐거운 한 때다. 1,030명의 대규모 식사 준비에 할당된 인원은 단 8명. 불가능해 보이지만 그런대로 매일 끼니는 거르지 않고 이어간다. 때아닌 스산한 겨울비가 내렸던 1월13일. 이날 반찬은 배추된장국에 고등어자반 무생채복음 총각김치. 그런데로 괜찮았다. 이가 좋지 않은 노인들에겐 씹기 쉽게 잘게 다져서 준다.

서울시가 주는 보조금으로 운영하는 이 자애원에 한끼 식단 가격은 850원 수준. 그러다 보니 기름진 음식은 접하기 어렵다. 그래서 몇년전부터 일이 가능한 원생들을 상대로 종이붙이기 부업을 실시하고 있다. 점심시간이 끝나면 이곳은 온통 작업장으로 변해 버린다. 부지런한 노인들은 이것으로 번 쌈짓돈으로 과자 사탕과 같은 군것질을 하기도 한다.

영보자애원에 가장 시급한 것은 의료 문제다. 이곳에 수용된 사람들은 대부분이 보호가 필요한 정신지체자들. 그러나 상주 의료진은 단 한사람도 없다. 정신과 의사가 일주일에 3차례 찾아오는 것이 고작이다. 한달에 한두번 찾아오는 자원봉사 의사들은 큰 힘이 된다. 이같은 상황은 질병의 거의 대부분을 약으로 해결하게 만든다.

이곳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약은 정신질환 관련 의약품. 대부분이 신경안정제와 수면제다. 원생 절대 다수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기 때문에 정신병 관련 약품을 상습적으로 다량 복용한다. 그 약물 부작용으로 이 곳에선 얼굴등 피부가 온통 검게 변한 원생들을 다수 볼 수 있다. 수녀들이 가장 안타까워 하는 것도 바로 의료부문이다.


일반인과 똑같은 감성과 욕구 지녀

원생들은 소년원에서 만 18세가 넘어 전원조치돼 온 20대 초반의 여성에서 아흔이 넘은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다. 평균 연령은 40세. 외모는 중·장년의 여성들이지만 사고력은 유치원생 수준이다. 수녀들은 이들을 모두 ‘아가’라고 부른다. 원생들도 수녀를 ‘엄마’라며 따른다. 혹 외부에서 남자라도 방문하면 ‘오빠’라고 부르며 친근감을 표시한다.

자신의 나이도 잘모르는 정신지체인 박추자씨. 그는 수녀가 들어오자 “엄마, 어제 우리방에 큰 테레비 달았어요. 이젠 복도에서 테레비 안봐도 돼서 너무 좋아요. 엄마, 내 진짜 아빠, 엄마한테 전화좀 걸어주세요”라고 졸라댔다.

간질과 결핵보균 정박아 방을 전담하고 있는 김데레사(40)수녀의 말은 이곳의 상황과 안타까움을 잘 전해준다. “이곳 아기방에 있는 아기(원생)들은 아이큐 20 이하로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하는 유아와 똑같습니다. 어릴 때 부모한테 버려지는 바람에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교육도 못받은 정박아들입니다. 식사도 밥과 반찬을 한데 모아 잘게 쪼개서 보모들이 입에 넣어 줍니다.

몇몇 아기들은 발작이 심해 밥속에 약을 몰래 섞어서 주기도 합니다. 식사와 잠자리 목욕 소대변 등 모든 생활이 한 방안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가는데 이들을 돌봐줄 보모들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평균연령 40세, 사고력은 유치원생 수준

수녀 한명이 맡고 있는 평균 원생수는 50명으로 일반 장애인 시설기준(15명)을 훨씬 초과한다. 그나마 일을 해본 원생들이 있어 자기방을 청소하고 옷가지와 음식 설겆이도 도와줘 이끌어가고 있다.

지난 3일 자애원 강당에서는 원생들만의 장기자랑 행사가 있었다. 가장 인기를 끌었던 프로그램은 무대위에 올라가서 노래나 춤을 추는 코너. 그런데 노래자랑때 한 40대 원생이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다. 한시간 동안 수녀들이 찾아 다니다 발견한 곳은 다름아닌 강아지집. 쑥스러워 무대에 못나간 자신이 너무나도 안타까워 이곳에 숨어버린 것이다.

이날 하이라이트는 농아자의 수화 무대였다. 얼굴이 고와 한복을 입고 춤을 추도록 시킨 워리(40대 추정)씨가 아리랑 음악에 맞춰 춤을 추다 말고 마이크를 뽑아서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의 노래는 노래가 아닌 괴성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곳에 있던 수녀와 자원봉사자들은 일순간 숙연해 지지 않을 수 없었다. 듣지 못하는 설움, 그러나 그들에게도 일반인과 똑같은 감성과 욕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사건이었다. 워리씨는 이 일로 이날 대상을 수상했다.

송영웅·주간한국부 기자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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