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고속도로나 강원 산간을 잇는 도로를 타고 평창군에 진입할 때 꼭 보게 되는 광고판이 있다. 평창군의 표어인 ‘해피 700 평창’. 처음 보는 이들은 의미를 알 수 없다. ‘700’은 평창군의 평균 해발고도가 700m라는 뜻.

이 고도에서는 인간의 바이오리듬이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고, 병의 원인이 되는 해충이나 세균이 서식하기 힘들며, 사람에게 이로운 각종 동·식물이 잘 자란다고 한다. ‘해피 700 평창’은 ‘살기좋은(행복한) 고장, 평창’이라는 의미이다.

정말 그럴까. 강원도 비탈중에서도 평창은 가장 험한 곳. 경작지는 좁고, 날씨는 춥고, 눈은 많이 오고…. 수십년전만 하더라고 평창은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은 아니었을 듯하다. 메밀, 감자, 옥수수 등 구황작물이 이 지역의 산물을 대표했다는 점만 봐도 ‘풍요’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절대빈곤이 물러간 후 다시 바라본 평창은 ‘정말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곳’이다. 옛날 평창 사람들을 괴롭혔던 각종 불리한 조건은 이제 완전히 얼굴을 바꿔 이 곳 사람들의 행복이 되고 있다. 맥주의 원료가 되는 호프로 시작해 여름철에 배추, 무우를 대도시로 공급하는 고랭지농업이 발달했고, 배고플 때 끼니를 때우기 위해 텃밭에 심었던 메밀은 성인병예방과 다이어트에 좋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이 곳의 명물이자 훌륭한 관광자원이 됐다.

바람이 심해 벗겨진 산등성이는 젖소들이 풀을 뜯는 목장으로 변했고 주민을 고립시켰던 엄청난 강설량은 국내 최초이자 최고의 스키장을 이 곳으로 불러들였다. 더불어 오대산, 흥전계곡, 대관령, 울창한 삼림등 빼어난 자연경관은 한반도에서 가장 사랑받는 여행지가 됐다. 백두대간의 정기가 평창에 쏠리는 듯한 느낌이다. 명실상부 ‘해피 평창’이다.

특히 겨울철에는 이 정기를 한껏 머금은 명물이 평창의 가장 높은 곳에서 영글어간다. 황태이다. 바다에서 잡은 명태를 햇볕에 1주일 정도 급속건조시키는 것이 북어라면, 황태는 추위와 눈발 속에서 적어도 4~5개월 보내며 천천히 말린 것이다.

황태 건조작업은 주문진이나 묵호항 어민들의 할복(割腹) 작업으로 시작된다. 할복작업은 내장을 꺼내고 바닷물에 씻는 것. 큰 트럭에 실려 높은 산으로 올라온 속이 빈 명태는 다시 횡계천의 얼음 밑에서 하룻밤 정도를 지낸다. 얼음물에 말끔하게 씻긴 명태는 두마리씩 묶여 덕장에 걸린다.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노랗게 익어가는데 추위가 풀리는 3월이 되면 덕장에서 내려와 전국에 팔려나간다. 마른 황태는 살이 통통하면서도 폭신폭신하고 깊은 맛을 낸다. 황태의 대표적인 산지는 강원 인제군 용대리와 이곳 평창군의 횡계리 부근이다. 모두 매서운 추위를 자랑하는 곳이다.

황태는 맛으로도 가치가 있지만 황태를 말리는 덕장은 훌륭한 관광자원이기도 하다. 지금 횡계 일대는 수천, 수만평의 황태덕장이 고원을 메우고 있다. 굵직한 나무를 엮어 사람 키 두 배 정도의 높이로 건조대를 만들고 이를 수백m씩 연이어 놓았다. 덕장에는 아이 팔뚝만한 것부터 어른 종아리만한 것까지 동해의 맑은 물에서 올라온 명태가 하늘을 바라보며 노랗게 익고 있다.

황태덕장은 깊은 골짜기에 숨어있지 않다. 횡계 일원에 지천으로 널려있다. 규모도 규모이지만 눈이 곱게 쌓인 덕장의 아름다운 장관은 고원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기쁨이다. 곳곳에 황태를 살 수 있는 특산품점과 황태구이나 황태국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이 많다.

생활과학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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