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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뿌리를 찾아] 청도(淸道) 김(金)씨

청도 김씨는 김알지(金閼智)계 254본 중의 일파(本)다. 9개 성씨가 김알지의 후손으로 전해지고 있다. 청도 김씨의 득관시조(得貫始祖)는 영헌공 김지대(金之岱)다.

김지대의 행적은 고려사 등에 기록되어 있다. 그는 시문에 능하고 선정을 한 고급관리로 정평이 나있는 인물이다.전라도안찰사, 경상도안찰사 재직시 공정하고 사심없는 판단을 한 것으로 유명했고, 서북지방에서는 백성들이 공덕비를 세워주기도 했다.

그는 고려 고종4년에 거란족이 침입했을 때 자진해서 군에 들어가 조충 원수의 측근에서 군무에 종사했다. 거란족을 격퇴시킨뒤 과거에 응시, 장원급제했다. 이후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여 정랑문학이부상서, 중서시랑평장사 등 높은 관직을 거쳐 왕의 고문직인 태부(太傅) 벼슬에 까지 올랐다. 그는 영헌공 시호와 오산군(鰲山君)이라는 군호(軍號)도 함께 받았다.

그의 상계는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은열(金殷說)공이 7대가 된다. 경순왕의 8세손이 되는 셈이다.

그는 오산군으로 군호를 받으므로 해서 본관의 시조가 되었는데 오산은 청도의 옛 이름이다.

김지대의 초명은 중룡이었는데 과거에 급제해 관직에 나갔을 때 형제들과 함께 지(之)자 항열을 써서 지대(之岱)라 한 것이다.

그는 군에 들어갈 때 ‘충효가쌍수(忠孝可雙修)’라는 명시를 썼고, 진주 촉석루를 창건했다.

시(詩)는 입영시 방패 머리에 입영의 동기를 짧막하게 시로 표현했던 것인데 일명 순두시(盾頭詩)라고도 한다. 시 내용이 당시 군 최고사령관이었던 조충원수를 놀라게 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많은 병사들은 대개가 방패머리에 무서운 짐승 그림을 그려놓았는데 김지대는 유일하게 충(忠)과 효(孝)는 함께 닦아야 마땅하다는 내용을 담은 시 한수를 방패머리에 썼던 것이다.

시의 내용은 ‘국환신지환(國患臣之患) 친우자소우(親憂子所憂) 대친여보국(代親如報國) 충효가쌍수(忠孝可雙修)’로 ‘나라의 근심은 신하의 근심이고, 어버이의 걱정은 자식이 걱정할 바이니라, 어버이를 대신해서 나라에 보답하면 그것은 바로 충과 효를 다같이 닦은 것이니라”라는 뜻이다.

김지대의 행적은 고려사, 고려사절요, 동국통감에 기록되어 있다. 또 동문선, 고천한시집에는 그의 시가 여러편 수록되어 있다.

그의 후손들 중 주요인물은 다음과 같다. △김인수(고려 충숙왕때 봉선대부 전객령을 역임) △김선장(고려 충혜왕때 대호군) △김한귀(고려 공민왕때 전공판서 동경도병마사 개성윤 등을 역임, 시호는 元貞公) △김한룡(공민왕때 태중대부 우간의 대부겸사관편수관 지제고 판전교시사 등 역임) △김인(공민왕때 정몽주와 함께 몽상대부 중서사인지제고 등 역임) △김희(공민왕때 정순대부 판전교시사, 보문각 제학 등 역임) ^김점(金漸)은 조선조 태종, 세종 3대에 걸쳐 15개 이상 주요 관직에 있었던 인물로 의정부 좌참찬, 형조·호조판서, 평안감사 등을 역임했다. 세조때 숨진후 호강공 시호를 받았다. 정주 한씨 가문으로 출가한 그의 딸이 아들 5명을 두었는데 모두 무반에 당상관 이상의 벼슬을 하여 나라에서 세미를 하사받은 것이 유명하다. 부인 권씨는 고려조 명신으로 유학의 대가인 영가부원군 권부(權溥)의 현손으로 숨졌을 때 세종이 관을 하사하기도 했다.

김흡은 조선 세종때 보문각 제학을, 김유손은 김점의 장남으로 세종때 절충장군, 가선대부, 나주목사를 각각 역임했다. 김점의 2남인 김의손은 성종때 예조참관을 지냈다. 김경손은 세조때 원종이등공신, 사직을 역임하고 아들 욱이 양녕대군의 사위가 됨으로 하여 양녕대군과 사돈지간이 된다.

김호우는 김점의 장손으로 성종때 전라도관찰사와 수군절제사를 역임하였다.

김영우는 조선조 연산군때 선공감정, 중종때 첨지중추부사를 지냈다. 김요산은 선조때 울산부사, 김의산은 선조때 충청좌병사를 각각 역임했다.

김난상은 조선 중종~선조인물로 대사성, 대사간에 올랐다. 학식이 출중하고 명필로 이름난 그는 퇴계 이황과 함께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섰다.

임진왜란 정유재란때 나라를 구하기위해 혼신을 다한 선조들도 많다. 김진선은 백의종군후 무과에 급제하여 김해부사 등을 거쳐 가선대부 병조참판으로 증직되었다. 김준신은 의병으로 참여한뒤 사헌부집의를, 김응은 백의종군한뒤 가선대부 호조참판을 각각 역임했다. 김극유는 정유재란때 양산군수를 지낸뒤 원종훈2등에 책록되었다.

김시성은 무과 급제후 소현세자 봉림대군을 호종한 공신으로 용천부사 상호군 함경도병마사 통제사 등을 지냈다.

대동여지도로 잘알려진 고산자 김정호도 청도 김씨다.

청도 김씨 대종친회 회장 김태우 전화 (051)868-5960, 회보 (053)753-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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