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를 잘 타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막차를 잘못타면 목적지에 가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밤을 지새는 등 곤욕을 치르기 마련입니다. 막차를 잘타야 한다는 말은 은퇴할 연령층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들에게 곧 잘 인용되곤 합니다. 전자에게는 노욕을, 후자에게는 권력욕을 경계하라는 뜻입니다. 개인적인 욕심에 빠져 스스로를 그르치지 말라는 것이지요.

기자는 주간한국 1765호 이 란에서 ‘인간재활용’이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막차를 잘 타는 사람들이 많아야 사회가 평온하고 발전도 도모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였습니다. 인간재활용은 경륜을 제대로 활용하자는 것입니다.

인간재활용은 그래서 스스로가 해야 하고 사회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어야 합니다. 인간재활용을 하지 못하는 것은 당사자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손실입니다. 개인적인 욕심이나 떼거리 이익에 집착하는 부류들의 행태가 그 사례입니다.

새삼 인간재활용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것은 16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과 시민단체들간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상황들 때문입니다. 다름아닌 시민단체들의 낙천·낙선운동입니다. 정확하게 얘기한다면 정치풍토 바꾸기 운동입니다. 시민단체들은 현 정치풍토로는 새 천년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며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구속되는 것도 불사한다는 생각입니다.

왜 시민단체들이 현행법을 위반하면서까지 나서는가에 대한 성찰이 앞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권이 그 어느 분야보다 먼저 개혁돼야 한다는 것이 국민적 여망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시됐습니다. 정치권은 당리당략으로 날을 지새면서도 그들의 이익과 직결되는 사안은 똘똘 뭉쳐 ‘사수’ 했습니다.

국민의 여망을 짓밟고, 유권자를 참담하게 만드는 그같은 작태를 더이상 두고 보지 않겠다는 것이 시민단체들의 각오입니다. 낙천·낙선운동에 동참하는 시민단체가 400개를 넘었습니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시민 80%가 낙선운동을 지지했습니다. 정치풍토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 대세라는 얘기입니다.

대세는 시민단체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정치권이 원인을 제공한 것입니다. 정치권의 자승자박이지요. 모 방송의 낙선운동에 대한 토론에서 한 시민은 조금은 심한듯한 일침을 놓았습니다. 낙선운동은 ‘쓰레기 분리수거’라고. 그같은 말을 들어야 하다니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그 말에 공감하거나 통쾌하다는 생각을 한 사람들이 다수였다는 사실 또한 간과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정치권은 경실련의 ‘부적격자’ 명단 공개 이후 ‘선거법’을 앞세우며 발끈했습니다. 낙선운동 발단의 원인 중 하나가 바로 그 법입니다. 노동단체의 정치활동은 허용하면서 시민단체들에 대해서는 봉쇄한 것입니다. 시민단체들은 참정권을 제한하는 것이라며 반발했습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시민단체들의 정치활동이 합법입니다.

그런데 우리 정치권은 무엇 때문에 노동단체와 시민단체를 분리하는 사태를 연출해 바꿔치기의 대상이 되었을까요.

사회의 전반적인 발전과 함께 시민단체들도 질적·양적 성장을 했습니다. 과거의 관변단체들과는 활동양상이 판이합니다. 힘이 커진 시민단체의 감시 대상이 되는 조직은 껄끄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정당한 지적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조직에게는 눈엣가시일 것입니다. 시민단체의 대표적인 감시대상이 된 정치권은 그 가시를 법이라는 이름으로 뽑아보려 했던 것입니다. 정치개혁특위를 봅시다. 무늬만 ‘개혁특위’였습니다.

개혁다운 것을 이끌어 내지 못했습니다. 세상은 크게 변하고 있는데도 정치권은 달라질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정치인은 귀하고 보스와 당리당략과 사리를 앞세우는 정치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정치꾼들은 ‘팽(烹)’이라는 말을 사용하곤 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팽’은 야합의 결과였습니다.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국민이 ‘팽’시키겠다고 발벗고 나섰습니다.

정치꾼들이 스스로를 뒤돌아 보고 어느 차를 타야할 지를 곰곰히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 바로 지금입니다. 국민은 정치꾼들에게 물러날줄 아는 지혜와 용기를, 정치권에는 개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재활용의 기회를 주는 것이자,구태를 청산하자는 것입니다.

구태청산은 정치권과 유권자가 함께 이뤄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나 현실은 유권자에게 무게를 둘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기회는 흔치 않습니다. 유권자들도 차를 제대로 타야 정치풍토를 그만큼 빨리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정재룡 주간한국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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