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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무기의 그늘] 전쟁도 아웃소싱… 용병에 맡긴다

강대국 분쟁개입 회피, 용병회사들 분쟁지역서 돋벌이

지난해 10월, 루마니아 동북부 도시 피아트라 니엠트의 시정부는 이색적인 계약을 맺었다. 골칫거리인 범죄를 척결하기 위해 러시아 몰도바 공화국 출신의 용병 2명을 고용한 것. 주인공은 아나톨리 라디우치와 이우리 사가이다치. 아프가니스탄과 체젠 내전에서 용병대장으로 참전해 용맹을 떨친 인물들이다. 이들이 맡은 역할은 피아트라 니엠트시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는 집시들을 몰아내는 것. 시정부는 지난 수년간 이들을 쫓아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손을 든 상태였다.

효과는 시정부가 기대한 이상이었다. 단시일만에 집시를 몰아내고 시의 평온을 회복했다. 용병대장 사가이다치는 현지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랑스럽게 떠벌렸다. “우리는 집시들을 때리지 않았다. 우리는 집시들이 법을 존중하도록 설득할 특유의 방법을 갖고 있다.” 용병들이 질서회복의 대가로 시정부로부터 받은 사례비 액수는 알려지지 않았다.


카슈미르분쟁에 회교용병 투입

냉전종식은 전쟁양식도 바꾸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아웃소싱(Out Sourcing)의 증가다. 자원을 외부에서 조달하는 기업활동 방식인 아웃소싱이 전쟁에도 도입되고 있다. 전쟁에서 대표적인 아웃소싱 방법은 용병 고용.

11년째 접어들고 있는 카슈미르 분쟁. 파키스탄으로 귀속되기를 원하는 잠무 카슈미르 지역 회교도와 이를 막으려는 인도정부의 소모전이 1만5,000명 이상의 희생자를 내며 계속되고 있다. 분쟁은 파키스탄 정부군이 개입하면서 국제전의 양상을 띠고 있다. 파키스탄의 개입은 정규군 투입과 함께 회교용병들을 고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잠무 카슈미르 지역 인도군 사령관인 빈드라 소장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정보보고를 인용해 파키스탄측의 용병투입을 강력히 비난했다. “회교도측 게릴라는 70% 이상이 해외 용병이다. 파키스탄 정부가 해외 회교도 용병들을 고용해 대리전쟁을 하고 있다. 현재 상황은 인도 정규군과 파키스탄측 용병간의 전쟁으로 진행되고 있다.”

범죄단도 용병을 고용하고 있다. 상당규모 사병집단을 양성하고 있는 중남미 마약 카르텔이 대표적이다. 1998년 2월 콜롬비아 법정에서는 이스라엘 출신 용병 4명에 대한 궐석재판이 뒤늦게 열렸다.

이스라엘 예비역 대령 야이르 클레인 등 4명이 대상이었다. 이들은 1987~89년 3년간 콜롬비아 최대 마약집단인 메데인 카르텔의 사병들을 훈련시킨 혐의로 최고 14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클레인 대령은 앞서 1991년 이스라엘 법정에서도 군사기술 불법 수출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벌금 4만달러를 낸 적이 있다.


분쟁국들 용병고용으로 수요늘어

이같은 개별적 용병활동은 90년대 들어 급격히 팽창하고 있는 용병회사에 비하면 ‘보따리 장사’에 불과하다. 미국과 영국, 이스라엘, 남아공, 프랑스 등에 본부를 두고 있는 용병회사들이 전세계 분쟁지역을 대상으로 돈벌이를 하고 있다. 남아공의 이그제큐티브 아웃컴스(EO), 미국의 군사자원전문회사(MPRI), 영국의 샌드라인 인터내셔널(SI)과 방위시스템사(DSL), 살라딘 시큐어리티(SI) 등이 대표적인 면면이다.

일반적으로 용병은 ‘(분쟁 당사국 국민이 아닌)외국인으로서 순수히 돈을 벌기 위해 전쟁에 참가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따라서 용병은 전통적으로 돈만 준다면 장소와 목적, 수단을 가리지 않고 전투력을 제공해 왔다. 용병이 ‘전장의 철새’로 불리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러시아 퇴역군인들이 돈을 받고 체젠반군측에 서서 러시아와 싸우고 있는 것은 용병의 속성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체첸반군측이 돈을 더 많이 주기 때문이다.

용병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와 궤를 같이 했다. 서로마 제국을 붕괴시킨 자는 게르만족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였다. 중세와 근대초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군대는 용병들로 구성됐다. 인도 식민지를 경영하던 대영제국의 해외군대도 상당수가 용병이었다. 18~19세기 각국이 국민개병제에 입각한 상비군을 양성하기 이전까지의 전쟁은 용병간의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 들면서 용병은 형태가 일신됐다. 민간기업 형태를 갖추고 합법적인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이같은 추세는 탈냉전에 따른 국제정세 변화와 맞물려 있다. 용병회사들의 활동무대는 내전을 겪고 있는 아프리카와 중남미, 아시아, 동유럽 지역의 저개발·신생독립국들이다. 질서유지능력(군사력)이 취약한 이들 국가들이 용병에 의존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됐다. 여기다 강대국들이 냉전기와 달리 타국의 내전에 개입하기를 꺼리면서 수요는 더욱 늘게 됐다.


퇴역군인들도 구성, 합법정부만 지원

용병 지원자는 각국의 퇴역군인들. 냉전종식에 따른 각국의 군사비 감축 과정에서 퇴출된 특수부대원 등이 인력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1969년 ‘용병들’이란 저서를 낸 앤터니 모클러는 용병들의 심리를 재미있게 분석했다. 전장에서 피를 보며 지낸 사람들은 사회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가 매우 어려운 정신상태를 갖게 된다는 것. 이들에게 전장으로 되돌아 가는 것은 마치 귀향하는 것처럼 가슴설레는 일이라는 설명이다.

1990년대 이후 기업형 용병집단이 생겨난 것은 인권을 중시하는 국제적 여론, 각국의 용병금지 정책과 무관치 않다. 용병회사들은 자신들의 유용성과 전문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신중한 ‘사업노선’을 내세우고 있다. 국제적으로 인정된 법적, 재정적 수단을 통해 사업을 영위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아울러 반군집단과는 일체의 거래를 않고 합법적인 정부만 지원함으로써 국제적 비난여론을 피해가고 있다.

대표적인 용병회사인 샌드라인 인터내셔널(SI)의 활동을 보자. SI는 1997년 남태평양의 파푸아 뉴기니 정부로부터 3,600만달러를 받고 부건빌섬에 있는 반군 토벌에 협력하기로 계약했다. 정부군을 훈련시키고, 토벌작전에 참가하는 것이 계약내용이었다. 파푸아 뉴기니 정부는 용병의 힘을 빌어 수출의 30%를 차지하는 부건빌섬 구리광산의 안정을 확보하려 했다. SI는 남아공의 용병회사 EO와 다시 하청계약을 맺어 사업의 상당부분을 이양했다.

영국 인디펜던트지에 따르면 용병회사들은 다국적 채굴회사와 결탁 의혹을 받고 있다. 자원 매장지역의 치안을 위해 해당국 정부와 다국적 회사, 용병회사가 협력하는 형태다. 1997년 영국 광산업체의 한 간부는 “안정없이는 투자없다”며 자사와 EO간의 용병계약을 정당화했다. 매장지역의 반군소탕과, 업체 간부 경호를 맡기는 대가로 수익 일부를 분배해 주는 계약방식이었다.


무기 판 뒤 용병시켜 교육

용병회사는 외교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미국 MPRI가 대표적이다. 버지니아주에 본부를 두고 있는 MPRI는 미 육군 퇴역장군들이 만든 고급 용병회사. 회사원 400여명에 1997년 수익이 4,800만달러에 달했다. MPRI는 1994년 크로아티아 정부와 계약을 맺고 정부군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전략에 따라 재편성·교육했다.

1995년 8월 크로아티아군이 ‘폭풍작전’을 통해 세르비아계가 장악하고 있던 전략거점 크라이나를 뺏을 수 있었던 것은 MPRI 덕분으로 평가되고 있다. MPRI는 그후에도 크로아티아를 지원해 세르비아군을 격퇴함으로써 미국이 데이턴 평화협정을 이끌어 내는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용병회사는 무기거래와도 연관을 갖고 있다. 미국 군수업체 SAIC는 사우디 아라비아 등에 무기를 판매하면서 무기조작 훈련은 용병회사에 대행시켰다. 영국 국방부는 아예 용병회사인 살라딘 시큐어리티(SS)로 하여금 오만 정부군을 교육하도록 위탁했다. 영국 용병회사들은 규모면에서 미국 회사들보다 적고, 서비스 내용도 한정돼 있어 대부분 민간기업 이익 보호에 치중하고 있다.

21세기 용병회사의 위상은 어떻게 될까.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데이비드 세어러 연구원은 용병회사들이 유엔평화유지군에 비해 훨씬 효율적이라고 분석한다. 용병회사들이 개입해 분쟁의 물줄기를 돌린 경우가 많다는 것.

EO는 1990년대 초 앙골라 내전과 시에라리온 내전에서 정부군을 도와 반군을 공격함으로써 반군을 평화협상 테이블로 이끌어 낸 경력을 갖고 있다. 당시 EO가 시에라리온 정부로부터 받은 계약금은 22개월간 3,500만달러. 유엔이 책정한 평화유지 활동비는 8개월간 4,700만달러였다.

물론 세어러는 효율성이 용병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유엔과 용병회사들의 행동양식은 전혀 다르다. 유엔이 분쟁 당사자의 협상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용병회사들은 일방의 전면적인 승리를 추구한다.

문제는 용병을 규제할 수단이 마땅치 않고, 실효성도 적다는 점이다. 1998년 만들어진 유엔 ‘반용병 협약’은 12개국의 서명을 받는데 그쳤다. 남아공 등 개별국가 차원에서도 반용병법을 실시하고 있지만 효과는 신통찮다. 용병회사와 보안회사를 구별할 기준이 분명하지 않은데다, 합법정부가 고용주이기 때문에 규제하기 어려운 것이다. 앙골라에만 80여개의 보안회사가 있다.

세어러는 일방적 규제보다는 용병회사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제3세계의 분쟁이 격화하고 강대국이 개입을 기피하는 한 용병시장은 규모가 커지게 마련이다. 용병의 전투력은 게릴라전을 비롯한 저강도 전쟁에서 특히 효과를 발휘한다.

강대국이 가장 꺼리는 전쟁이 바로 저강도 전쟁이다. 1993년 미국은 소말리아에 특수부대를 파견했지만 처참하게 패퇴했다. 미국인은 미군이 해외에서 죽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21세기 용병산업이 번창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배연해·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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