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의 선거운동이 4월의 16대 총선에서 선거판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의심하는 사람은 이제 별로 없다. 낙천·낙선 운동으로 대표되는 시민단체의 선거개입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을 형성해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한나라당 등 일부 정치권에서는 김대중대통령이 시민단체의 선거운동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나선 것을 시민단체 선거운동의 순수성과 연결시키며 제동을 걸고 있지만 흐름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인 느낌이다. 시민단체들이 기존 정치권에 대해 극심한 불신과 혐오를 표출하고 있는 일반 국민의 폭발적 지지를 받고있는 탓이다.

민주당과 청와대측은 총선시민연대와 경실련 등이 공개한 공천부적격자 명단을 공천에 적극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민주당의 김옥두신임사무총장은 취임일성으로 “공천과정에서 시민단체의 의견을 적극 참고하겠다”고 말했다.

자민련과 한나라당은 별로 내켜하지 않는 반응이지만 시민단체 활동에 대한 국민적 지지 분위기를 감안할 때 마냥 외면할 수도 없어 어떤 형태로든 낙천자 명단을 공천과정에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시민단체의 의견을 외면하고 공천을 강행했다가 공식선거운동기간에 낙선운동 표적이 될 경우 전국적인 총선전략에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그러나 시민단체의 선거운동 범위확대에 대해서는 일정한 선을 긋고 있다. 민주당은 정치권이 개폐협상에 착수한 선거법 87조외에도 58조와 59조도 손질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선거운동의 정의를 매우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58조와 사전선거운동 금지를 규정한 59조가 시민단체의 선거운동 범위 및 기간을 제약하고 있다는 근거에서다. 그러나 시민단체의 선거운동범위와 기간을 대폭 늘릴 경우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상대적으로 민주당에 비해 더 불리할 수 있기 때문에 58조와 59조의 개정에 소극적이다.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김대중대통령이 지난 주에 “시민단체의 선거운동을 법으로 규제할 수 없다”고 한 언급을 “불법을 조장하는 초법적 발상”이라고 격렬하게 비난하고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총재는 김대통령의 이 발언과 관련해 “김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해야 될지를 심각히 생각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자민련도 성명을 통해 “국민의 법질서 의식에 혼란을 야기시킬 수 있는 사안”이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여권내부에서도 김대중대통령이 너무 성급하게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김대통령이 시민단체의 활동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반발을 불러 일으켜 시민단체의 선거관련 활동자체를 정치적 논란거리로 만들 우려가 있다 것이다.


병역비리수사, 낙천자 명단과 더불어 또 하나의 ‘태풍의 눈’

반부패국민연대가 정치인 21명을 포함한 병역비리 연루 사회지도층 인사 200여명의 명단을 청와대에 전달한 것을 계기로 본격화하고 있는 병역비리 수사도 정치적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민주당과 청와대측은 “병역비리는 국가안보차원의 문제로 성역없는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이용될 소지가 있다”며 현 시점에서 대대적인 병역비리 수사가 시작되는 배경에 의구심을 표출하고 있다.

21일 출범, 27일까지 활동하게 돼 있는 선거구 획정위가 어떤 작품을 내놓을지도 비상한 관심사다. 민간인 출신 획정위원들은 여야가 줄이지 않기로 합의한 의원정수 재조정까지도 획정위에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마찰이 일어나고 있다. 또 획정위가 인구상·하선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지역구가 대폭 줄어들 수도 있어 정치권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민주당과 자민련의 내각제 갈등도 이번 주에 눈여겨 봐야할 정치풍향이다. 자민련 김종필명예총재는 지난 주 “내각제는 국민에 대한 약속이자 공동정권의 기반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민주당과 김대중대통령에게 거듭 강한 유감을 표출했다. 자민련내에서는 민주당과 공조를 파기해야 한다는 초강경파들도 적지 않다.

민주당과 자민련의 갈등이 더 깊어질 경우 4월총선에서 연합공천 등 선거공조는 완전히 물건너갈 공산이 커진다. 이것은 총선구도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김종필명예총재는 “내각제도 대국민약속이지만 2여공조도 대국민약속”이라고 못박아 일단 선거공조유지에 무게를 실었다. 연합공천의 무산이 자민련에도 결코 유리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이계성·정치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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