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둔 노동계, 임금투쟁 깃발 올려

최근 노동계가 IMF 외환위기 이후의 임금 삭감분 회복과 생계비 보장을 내걸고 두자릿수 임금인상 요구율을 제시, 임금인상이 올 노사관계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외환위기의 영향권에 들어있던 지난 두 해 동안 고용안정에 매달려 사실상 임금을 포기했던 노동계가 최근 경기회복에 힘입어 고용불안이 상당 부분 해소되자 “빼앗긴 것을 되찾겠다”고 생각하는 노동자들의 열망을 등에 업고 임금인상에 최대 역점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경기 회복에 따른 임금인상은 이미 각 기업별로 상당 부분 이루어지고 있다. 노동부가 최근 발표한 ‘1999년 11월 임금·근로시간·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 해 초부터 11월까지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한 근로자들의 실질임금은 월평균 130만2,000원으로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11월까지의 실질임금 131만7,000원에 비해 1.1% 못 미치는 수준까지 회복됐다.


두자릿수 인상요구, 임투준비 시동

IMF위기이후 계속 감소하던 임금동향이 99년 2월부터 증가세로 반전, 계속 상승 추세를 타 11월까지 전년에 비해 10.6%까지 오르면서 임금 총액이 크게 늘어났다는 것이 노동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노동계는 이같은 정부 통계가 실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것이라고 보고 있다. 민주노총 손낙구 교육선전실장은 “정부통계에는 경제성장률이 반영되어 있지 않고, 10인이상 사업장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IMF로 소득이 크게 줄어든 소규모 기업 근로자 등 저소득 근로자가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기업 현장에서는 IMF위기 당시 입은 피해의 원상회복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어 두 자릿수 임금인상 요구는 불가피하다는 것이 노동계의 입장이다.

이런 상황 인식을 배경으로 노동계는 예년에 비해 한 달 정도 이른 지난 주에 임금인상요구율을 제시하는 등 임투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5월 춘투 시기에 임금인상 요구 분위기를 최대한 고조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노동계가 요구한 임금인상률은 한국노총이 13.2%, 민주노총이 15.2%.

한국노총은 “생계비 부족분 확보와 IMF이후 임금 양보분 원상회복 등을 위해 지난해 상여금을 제외한 통상임금(110만4,470원)기준 13.2%(정액 14만6,259원) 정도 인상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민주노총은 “조합원 1가구(평균 3.6인) 표준생계비는 256만원인데 초과근로수당을 제외한 임금총액은 178만2,120원으로 생계비의 69.5%에 머물고 있다”면서 “생계비의 80%선을 확보하기 위해 15.2%의 임금인상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김종각 한국노총 정책국장은 “올해 경제성장률은 한국개발원(KDI)예측으로 7.8%, 정부예측으로 7%에 이르고 물가상승률도 3% 정도는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이 것만 고려해도 임금이 10%이상 올라야 한다”고 두자릿수 임금인상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재계, 노동계 인상요구에 난색

재계는 두자릿수 임금 인상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김영배 경총 상무는 “우리 경제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두자릿수 임금인상은 부담스럽다”면서 “지나친 임금인상이 오히려 경쟁력및 수익력 약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기가 좋은 일부 업종과 기업들은 어느 정도 임금 인상이 가능하다는 점을 재계도 인정하고 있다. 김정태 경총 조사2부장은 “워크아웃 대상기업이나 화의절차를 밟고 있는 기업등 등 상황이 나쁜 경우에는 한자릿수 임금 인상도 힘들지만, 이익이 많이 나고 있는 전자 석유화학 철강 등의 업종과 4대 그룹 소속 기업들은 임금인상이 꽤 이뤄져도 충분히 소화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총은 임금인상에 대한 업계의 의견이 호황업종, 불황업종에 따라 크게 엇갈리고 있어 현재 의견을 수렴중이며, 그 결과가 나오는 대로 이 달 말이나 내 달 초에 임금교섭지침을 만들어 회원사에 알릴 계획이다.


임투·총선투쟁 연계가 최대 관심사

올해는 16대 총선이 치러지는 시기와 임·단협 시기가 겹쳐 있어 노동계의 임투와 총선투쟁의 연계 여부가 관심사로 대두했다. 사실 노동계 내부에서는 효과적인 임투를 위해 총선을 활용하자는 의견이 적지않아 임투 집중시기를 4월 총선에 맞추는 문제가 거론됐으나 여러 여건상 연계투쟁이 불리하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한국노총 최대열 홍보국장은 “관행상 5월 이후에 집중돼 있는 여러 단위 노조의 임투시기를 한꺼번에 앞당기기가 어렵고, 총선을 앞두고 총파업을 강행할 경우 사회불안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노동계가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 총선과 임투를 직접 연계하는 전략은 채택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노동계는 대신 총선 결과가 임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총선에서 노동계 후보의 당선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의 선전에, 한국노총은 노총 후보 당선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노동계의 임투 일정은 예년처럼 5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노총은 3월 중순 단체교섭 개시, 4월 조정신청및 쟁의행위 신고, 5월초 총파업 수순을 밟을 예정이며, 민주노총은 2월말 기업별 임금인상요구안 제시, 3월초-4월말 교섭, 5월 초·중순 조정신청및 쟁의행위 신고, 5월말 총파업의 일정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노동계는 두자릿수 임금인상에 대해 비교적 낙관하는 분위기이다. 두 노총 관계자들은 “올해 공무원 급여가 올해 9.7% 정도 인상될 것으로 알려졌는데 민간기업이 두 자릿수 임금인상을 하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라면서 호황업종을 위주로 임금인상 요구가 상당 부분 수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남경욱·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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