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바둑계는 태풍에 힙쓸린 느낌이다. 서봉수의 바둑에는 일종의 형언키 어려운 박력이 넘치고 있다. 그는 놀라운 존재다.”

한국일보는 19세 명인 등극을 1면에 커다랗게 실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바둑이란 종목으로 일간지 1면을 장식한다는 건 상상하지도 않던 일이었다. 한국신문역사상 바둑이 1면에 오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조남철은 하나 남은 타이틀을 앗긴 안타까움보다는 한국유일의 8단 최고단으로서 고단자의 자존심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심이 앞섰다. 어쩌면 그의 말대로 타이틀을 잃는 건 시대의 약속이요, 세월의 힘이니 ‘막대로 치려해도’ 이겨낼 도리는 없다. 그래도 심했나. 어찌 30세 연하의 천둥벌거숭이에게 이 고귀한 타이틀을 넘긴단 말인가.

“어쩐지 애당초 예상한 대로 된 것 같아요.”

명인에 오른 서봉수의 일성은 가관이었다. 이미 그 이전에도 지나친 자신감의 발로를 증명해 보여 설화를 겪었던 그는 명인에 오른 다음 더욱 기세등등하여 하고픈 얘기를 그대로 무삭제 상태로 내뱉었다.

아니, 예상을 하다니. 그럼 조남철이란 기봉을 이기고, 아니 그 이전에 김인을 이기고 그 이전에 강철민을 이기고 파죽지세로 올라온 것이 모두 예견된 일이었다는 것인가. 이런 시건방진 사내가 다 있는가. 교만이라면 교만이고 오만방자함이라면 오만방자함이다. 그 시절 서봉수는 그래야 그다웠다.

하기야 정상을 다해 전력하는 일이 천직인 승부사라면 사실 하등 이상할 게 없는 포효다. 링에 오른 복서가 상대를 잡아죽일 듯 노려보는 야수같은 눈빛은 당연한 것이고 바둑판을 놓고 ‘난 저 상대를 이길 수 있다’고 포효하는 행동을 나쁘다고 한다면 그건 구경꾼들의 이중성이다. 더욱이 임전소감을 묻는 질문에 자신있다고 대답한 기백이, 혹시 그가 패했다고 해서 전범재판을 요구하지 않는다. 당연히 승부에 임하는 자는 기백이 천길 만길까지 뻗쳐야 함으로.

호언장담-. 서봉수는 그의 예감대로 승부를 적중시켰고 그는 단번에 스타가 된다. 우승상금은 15만원. 서봉수는 그것으로 10만원짜리 전세방에 살던 어머니를 25만원짜리로 바꿔드렸다니, 온동네가 알아주는 스타가 되었다. 어찌 온동네 뿐이랴. ‘주간한국’에도 ‘통기타를 즐기는 명인’이라는 제목의 표지사진이 실린적이 있었으니 가위 서봉수는 천하를 얻은 장수의 포만감을 누리고 남음이 있었다.

조남철이 정신적 지주로 활약하던 당시 바둑계에서 실질적인 실력자는 김인이었다. 타이틀도 남들보다는 꼭 하나는 더 갖고 있었으니 일인자로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그뒤를 이어 일본에서 돌아온 윤기현이 국수전 기왕전 도전자로 나서 김인을 공격했고 부산의 강타자 강철민도 최고위를 따내 정상의 일각으로 올라선다. 그리고 여기 서봉수. 그들은 훗날 이름이 붙어지는 4인방 체제같은 정상구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중 서봉수가 가장 간단한 이력서를 가지고 있다. 68년 8월 한중일 고교생대회 선발전 우승. 69년 1월 전국 고교생대회 우승. 70년 한중일 고교생 대회 파견. 70년 9월 입단. 71년 10월 2단. 그리고 72년 5월5일자로 명인. 이런 만화같은 이력도 다 있는가. 서봉수는 이렇게 한국바둑계를 태풍으로 휩쓸며 나타난다.

유창혁이 소년시절 아마대회를 제패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금세 프로가 된 바도 없고 프로간 된 이후에도 이렇게 빨리 올라오지는 못했다. 이창호는 일찍부터 연구생에 들어왔으니 아마대회를 참가한 경험조차 없다. 다만 그도 이렇게 최단시간에 정상을 올라본 적은 없다.



뉴스와 화제

ㆍ앙팡테리블 조혜연, 최강여류 꿈꾼다

2월14일 예내위와 결승에서 자웅

‘꿈꾸는 초보’조혜연이 세계정상을 꿈꾼다. 지난주 한국기원에서 벌어진 제1회 흥창컵 세계여류바둑선수권대회 4강전에서 14세 조혜연은 중국의 2인자 화쉐밍 8단을 누르고 당당히 결승에 올라선 것.

결승에 오르기까지 조혜연의 성적은 겨코 운이 작용한 흔적이 없다. 오히려 지독한 불운이라고 할 정도로 대진운은 나빴다. 1회전에서 중국의 실력자 양휘를 꺾었고 2회전에선 일본의 여류본인방 4연패에 빛나는 요시다를, 그리고 8강전에서는 흥창컵의 전신인 보해컵 우승자인 중국최고실력자 평원을 냅다 꽂아버린다.

조혜연의 돌풍은 실로 예상밖이다. 그녀는 국내에서도 정상급이라고 보기엔 무리가있던 신인이기 때문이다. 통산전적도 5할이 채 안돼는 ‘초보’로서 깜짝쇼를 연출한 것. 오히려 바둑가에선 그런 ‘싱싱함’이 이번 연출의 동인으로 보고있다. 작년 최강 예내위를 꺾은 적도 있는 조혜연은 다시금 그녀와 2월14일 결승3번기에서 재회한다. 14세 최강여류가 등장할 지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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