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 감독이 마침내 2시간14분짜리 영화‘춘향뎐’을 완성시켰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첫 설날 그는 우리들에게 춘향전을 펼쳐 읽어준다. 그의 춘향전을 듣고 보며 두가지 ‘왜?’가 고개를 쳐든다.

왜? 춘향전인가. 왜? 이제서야. 이 두가지 의문은 한국영화가, 새로운 세기에 우리 문화가 어떻게 자리매김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임권택 감독은 거장이기도 하지만 우리식 영화감독이다. 그는 유럽의 새로운 영화미학도, 할리우드에서도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감독이다.

당연히 그가 지향하는 영화세계는 한국의 전통정서나 역사, 문화일 수 밖에 없고, 때론 그것이 시대흐름에 맞지 않거나 작가주의적 관점이 부족해 실패하기도 하지만 그는 것을 고집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임권택 감독이 지금껏 우리의 고전이자 명작인 춘향전을 영화로 만들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이미 13번이나 만들어져 더 이상의 새로운 언어를 창출할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영화에서 소재는 꼭 새로울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것을 얘기하는 언어는 시대성, 사회성에 민감하게 움직인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먹혀든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춘향전도 이런 신세대적 감각의 언어와 가치와 스타일로 다시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불행하게도 이미 그런 시도는 영화와 방송에서 있었고, 실패했고, 임권택 감독에게는 그런 재주가 없다. 그렇다고 춘향전을 외면할 수는 없고, 길은 보이지 않고. 93년까지 그랬다. 그러다 명창 조상현이 35세때 부른 춘향가 완창을 들었다. 그때가 ‘서편제’를 찍는다며 전국을 돌아다닐때.

임권택 감독의 말을 빌면 그것은 “충격’이었다. 크고 기품있는 보성소리에 실린 춘향가는 그속에 리듬이 있고, 스토리가 있고, 감정이 흘러 넘쳤다. “이 소름 끼치는 느낌을 영상으로 담을 수만 있다면…”

자괴감도 들었다고 한다. “소리는 이런데 그동안 우리 영화는 뭘 했어. 지금까지 영화가 정말 춘향전의 맛을 살려낸 것이 아니었구나. 감독이 판소리를 한번이라도 다 들어봤으면 한동안 춘향전을 외면할 수 있었을까”하고. 그 사이 다른 우리의 전통을 찾겠다고 돌아다니고 시간을 보냈지만 계속 안에서 춘향가가 치밀고 올라왔다고 한다.

그때 이미 임권택의 ‘춘향뎐’은 시작됐다. ‘춘향뎐’이 가야할 길이 정해졌다. 어설픈 변주나 모방 보다는 소리의 원형을 살리고, 그것에 실려가는 ‘춘향뎐. 춘향전을 모를 사람이 어디 있으랴. 내용을 바꾼들, 스타일을 바꾼들 얼마나 달라질까. 그래서 내린 그의 결론은 ‘판소리에 충실하자. 단 판소리에 먹히지는 말자’는 것이었다.

그의 ‘춘향뎐’은 기교가 없다. 판소리를 따라 영상이 펼쳐지고, 감정이 표현되고, 인물이 나타난다. 파격보다는 판소리 가락 안에서 그 맛과 멋을 더더욱 온전히 드러내고자 했다. 심지어 사또 부임이나 암행어사 출두 까지 판소리 묘사에 따른 고증으로 재현했다. 어줍잖은 파격이나 이데올로기를 집어넣지도 않았다.‘춘향뎐’을 보다보면 편안해진다.

그것은 눈을 감고 춘향가를 들으며 머리속에 그 상황을 그려보는 것과 같다. 그 그림을 임권택 감독은 정일성 촬영감독의 혜안을 빌어 최대한 아름답게 그려간다. 감정과 리듬은 이미 판소리 가락에 있으니. 그 리듬을 살린 영화‘춘향뎐’은 그래서 성공적이다.

‘서편제’가 이야기와 한을 통해 소리에 대한 관심을 일깨웠다면 ‘춘향뎐’은 리듬과 아름다운 영상으로 소리의 맛을 더욱 진하게 만든다. 그것으로 임권택 감독은 만족한다. 이것이 그가 2000년 아침에 ‘춘향뎐’을 툭 던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가 하나로 묶일수록 문화적 개성, 전통, 독창성이 소중하다. 젊은세대들이 ‘춘향뎐’을 보고 판소리가 이런 좋은데도 있구나라고 느끼면 목적달성”이라고 했다. 꼭 임권택 감독이란 거장이 영상으로 전해 야만 우리는 우리 소리의 가치와 멋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가. 벌써 두번째이다.

이대현·문화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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