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선 얼굴, 틀 깬 시도로 폭발적 인기

대학로에서 유행하던 공연 형식의 개그를 TV에 본격적으로 정착시킨 KBS 2TV <개그 콘서트>가 99년도 현직 PD들이 뽑은 ‘올해의 가장 재미있는 쇼 오락 프로그램’으로 선정됐다. 지난 해 7월 파일럿 프로그램(일종의 실험용 프로그램)으로 첫 선을 보인 이후 폭발적인 성원에 힘입어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인기 비결은 말할 필요도 없이 코미디 프로그램의 목적인 ‘보고 즐거워야 한다’는 요소를 골고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 생활의 긴장과 스트레스를 풀기에 웃음보다 효과적인 요소는 없다. 한번쯤 프로그램을 시청한 사람이라면 빠른 전개로 펼치는 ‘사바나의 아침’ ‘스크림 개그’ ‘상황 아가씨’등에 몰입하게 된다. 역동적인 출연자의 몸짓과 기상천외한 발상들이 시청자의 욕구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는 것이 대다수의 평이다.


역동적 인기, 기상천외한 발상

<개그 콘서트>는 개그를 콘서트화한 특이한 프로그램이다. 콘서트라면 가수들의 공연으로 생각하는게 일반적이다. 통념을 깨고 새롭게 시도한 모험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4명의 공로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개그맨 전유성, 김미화, 백재현과 박중민PD 등 4명이다.

개그우먼 김미화는 지난해 6월 무대용으로 만들어진 공연물을 정형화한 TV 속으로 끌어들이자는 제안을 했다. 새로운 것만 살아남는다는 벤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전유성이 ‘앙코르 개그’를 더했다. 특히 ‘가수들도 앙코르를 하는데 개그맨이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는 과감한 기존의 틀깨기가 있었기에 성공이 가능했다.

개그맨 백재현과 박중민PD도 눈에 띄지 않는 일등 공신들이다. 백재현은 98년 대학로에서 <개그 콘서트>에 바탕이 된 콘서트를 이끌어왔다. 첫 방영의 내용 대부분이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프로그램이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폭넓게 뿌리 내릴 수 있는 토양을 마련했다.

백재현은 웃음이 될 만한 모든 소재들을 이리 저리 찾아다니는 방송가의 아이디어 뱅크로 통한다. 92년 KBS 특채로 입사해 빛을 보지 못해 방송을 포기하고 대학로로 갔다. 지난해 7월 3년간의 암중모색 끝에 내놓은 <개그 콘서트>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화려하게 방송에 복귀했다.

박중민PD. 머릿속은 오로지 ‘어떻게 하면 웃길 수 있나’로 가득찬 코미디PD다. 웃길 수만 있다면 국적을 가리지 않고 코미디 소재를 가져왔다. 단 조건이 있었다. ‘흉내를 넘어 그들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연기자 자신들만의 독특함이 없으면 설 땅이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시청자들 "이런 건 처음이야"

공개방송에 참여한 방청객들은 대부분 “이제까지 TV에서는 볼 수 없었던 코미디 프로그램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그리고 이와는 상반되게 타방송사 예능PD들과 개그맨들은 “이같은 레퍼토리는 이미 대학로에서 오래전부터 공연하고 있었던 내용이기 때문에 그리 참신한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펼친다.

하지만 대학로에서 공연하고 있든 몇년전 유사 프로그램이 있었든 이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가장 유효적절하게 다수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느냐가 관건이다. 시청자들이 진정으로 ‘이런 건 처음이야’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또하나 성공의 비결은 새로운 얼굴의 과감히 기용이다. 신인들은 낯설다. 어색하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다음 대사와 행동을 예측하기 힘들다는 점이 시청자들에게는 일종의 청량제 역할을 했다.

기존의 인기 개그맨을 출연 시켰다면 지금의 개그콘서트는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점이 시청자들에게 ‘의외성’으로 어필했다. 다음 대사와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코미디의 생명은 끝이다. 다음 대사가 나오기 전에 시청자들은 채널을 돌려버리기 때문이다.

<개그 콘서트>는 심현섭(30)과 김영철(26)이라는 걸출한 신인을 둘씩이나 배출해 냈다. 심현섭은 이미 ‘사바나의 추장’이라는 별명으로 더 알려졌다. 녹화당일 방청객으로 찾아온 초등학생 최형필(13)군은 “토요일 저녁 <개그 콘서트>를 안보면 월요일 등교해서 아이들과 할 말이 없다”며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봐야한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프로그램 녹화를 위해 제주도를 찾은 심현섭도 “나를 향해 몰려드는 학생들을 보면서 마치 내가 서태지가 된 기분이었다”고 아직 인기를 실감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리둥절하다고 말했다. 심현섭은 96년 프로그램 녹화전에 방청객 분위기를 띄우는 ‘바람잡이’로 방송을 시작한 후 눈물겨운 무명 시절을 거쳐 4년만에 정상에 올랐다.


심현섭ㆍ김영철은 개그맨 스타

‘미안합니다’라는 유행어의 주인공 김영철(26)도 인기 개그맨 대열에 합류했다. 옷로비 청문회가 한창이던 지난해 9월 <시사터치 터치파일>의 막간 코너에 활용한 배정숙(강인덕 당시 통일부장관 부인)씨의 “미안합니다”를 경상도 억양으로 코믹하게 흉내냈다.

김영철이 개그맨 시험에 응시할 때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KBS 관계자는 “잘 정리되지 않은 외모로 인해 뽑을까 말까를 수없이 고민했다”고 말했다. 김영철 자신도 가능성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했다.

하지만 방송이 나간 후 김영철이 고향인 울산에 내려갔을 때 동네 꼬마들이 모두 모여 “미안합니다∼”를 외치는 모습을 보고 감격했다. 이후 114 안내원을 흉내내면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8일과 15일 KBS, MBC 보도국은 비상이 걸렸다. 선거가 90여일 앞으로 다가온 상황이었고 선거법과 관련된 문제가 세인의 관심을 끌었던 주말이었지만 양 방송사 뉴스의 시청률은 12.2%(KBS), 10.2%(MBC)에 불과했다.

같은 시간대에 방송된 <개그 콘서트>(21.2%) 때문이었다. 전국 시청률 조사회사 TNS MEDIA KOREA에 따르면 이 시간대의 채널 점유율도 뉴스가 18.8%(KBS), 15.7%(MBC)에 불과했고 <개그콘서트>는 32.4%에 달했다.


끊임없는 아이디어가 판건

코미디 연출 15년의 어느 PD는 우리나라의 코미디 프로그램의 현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 코미디만큼 웃기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나라는 없습니다. 섹스와 정치를 배제한 소재만 가지고 이만큼 웃길 수 있다는 것은 오히려 우리나라 코미디 프로그램이 그만큼 양질의 내용을 제공한다는 말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개그 콘서트>의 인기는 작은 성공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벌써 변덕심한 시청자들은 소재의 진부를 말하고 있다. 색다른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한다.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은 그만큼 허술하게 꾸미면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태수·일간스포츠 연예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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